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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처럼 되살아나는 ‘독재자’와 ‘요괴’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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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시기에 차기 집권세력을 결정짓는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일본의 중의원 총선거 투표가 12월 16일에 진행되며 3일 뒤 12월 19일에는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이 결정된다.

투표의 시기만 비슷한 것은 아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 공교롭게도 한일 양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와 총리 후보는 각각 부친과 외조부를 매개로 기묘한 인연을 맺고 있다.











▲ 박정희 만주국군 견습사관 시절의 박정희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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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선 1차 방송토론이 열리던 12월 4일 밤.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을 오르내리던 일본 이름이 있었다. 다카키 마사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의 입을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진 이 이름의 주인공은 박정희 전 대통령. 바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아버지다.

중의원 선거 투표를 이틀 앞둔 14일 <아사히신문>은 자민당이 480석의 중의원 의석 중 최대 297석을 획득할 것으로 전망했다. 분석대로라면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가 차기 일본 총리대신으로 선출될 것은 기정 사실이다. 아베 신조는 56~57대에 걸쳐 전후 일본의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박근혜와 아베 신조의 기묘한 인연

각각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한국과 일본의 대권 후보들은 선거기간 동안 ‘정치적 거물’인 부친과 외조부를 둔 탓으로 혹독한 정치적 검증을 받아야 했다. 박 후보는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대한 입장과 아버지가 강탈한 부일장학회를 전신으로 하는 정수장학회와의 연관성 문제 등 역사인식과 관련된 의혹에 시달렸다. 

아베 신조 역시 선거 막판 민주당이 제기하는 ‘세습정치’ 비판에 직면했다. 일본은 아버지가 국회의원인 경우 아버지의 후원회, 지명도, 정치자금을 활용하여 손쉽게 자식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는 ‘세습정치’의 폐해가 심각하다. 그 폐해는 정치신인의 신규진입을 막는 정치적 독과점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치이념의 무비판적 계승으로 이어진다. 그 대표적 세습정치인이 바로 아베 신조다.   











▲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책표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책과 함께) 강상중 현무암 공저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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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후보와 아베 신조의 뿌리인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기묘한 인연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를 짚어내는 책이 있다. 동북아 관계 전문가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와 현무암 훗카이도대 교수가 함께 쓴’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책과 함께)다.

책의 부제는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 다. 제목에서처럼 책은 만주국을 통해 박정희가 일본제국의 충성스러운 신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밝혔다. 이와 함께 박정희가 만주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한 반공과 유신독재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그늘도 조명한다. 책에 나온 만주국의 설계자이자 일본제국의 엘리트 관료 기시 노부스케와 식민지 조선의 야심가 박정희의 인연은 가히 충격적이다.

조선정벌을 주장한 일본 제국주의자를 동경한 박정희

우리 젊은 육군 군인들이 군사혁명에 나선 것은 구국의 일념에 불탔기 때문인데, 당신들의 선배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같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나섰다.

5.16 직후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는 기시 노부스케에게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가 모범으로 삼은 요시다는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의 팽창적인 침략주의 정책을 주창했다. ‘쇼와의 요괴’로 불리던 기시 노부스케 역시 요시다의 “군신일체의 황국사상”에 매료되어 혁신적 국가개조를 꿈꿨다.











▲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만남 1961년 11월, 일본 수상 관저에서 만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왼쪽) 오른쪽은 이케다 하야토 당시 수상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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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따르면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는 냉전이라는 전쟁의 그림자 뒤에 숨어 친일파와 제국주의 전범이라는 자신들의 과거를 각각 ‘민족중흥의 기수’와 ‘전후 일본의 설계자’로 세탁했다. 뿐만 아니라 내면 깊숙이 미국에 대한 반발을 품고 있으면서도 대미의존의 반공정책을 자신들의 권력 강화 수단으로 삼기 위해 반소 냉전의 안보동맹을 중시했다. 

온 국민이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마저) 거리로 나와 반대했던 한일협정을 기어이 성사시킨 것은 박정희의 고집이었다. 이는 33만 명이나 되는 일본 국민이 총리 관저를 둘러싸고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결국 미일안보조약 재개정을 강행한 기시 노부스케의 몽니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로써 양국은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교두보 역할을 자임한다.

또한 책은 만주제국에서 시행한 국가주도의 통제 경제정책의 ‘실험’이 이를 경험한 박정희에 의해 한국에서도 재현된다고 지적한다. 박정희 정권의 몇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관료에 의한 의사결정과 자원배분 권한 독점, 수출일변도의 총동원정책 등이 ‘만주국 산업계발 4개년 계획’ 등 기시 노부스케가 입안한 국가주도의 통제경제의 아바타임을 밝혀낸 것이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만주제국 역사의 시작과 끝”이 아니다. 책은 박정희에 과도하게 부여된 ‘조국 근대화의 영웅’ 신화에 의문을 제기한다.  

최빈국으로 허덕이던 대한민국을 신흥 산업국가로 발전시킨 박정희의 ‘돌격적 근대화’의 이면에 총력안보와 산업화의 제단에 바쳐진 민주주의와 노동자들의 피땀이 있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박정희의 자산만 계승한 ‘이기적 정치 스타일’

야권 후보에 의해 일본 이름까지 드러나는 수모를 당했지만, 박정희는 박 후보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오늘날의 박 후보를 만든 8할은 대구경북 중심의 보수 정치권과 산업화의 주역인 60대 이상 중장년층의 박 후보에 대한 ‘묻지마 지지’다. 가난으로부터 조국을 구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그 바탕에 있다. 

하지만 박 후보는 박정희의 정치적 자산만을 승계하고 정치적 과오에는 눈 감는 이기적인 정치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관련된 역사인식 검증요구에 “좌파세력의 발목잡기”라는 입장으로 일관하는 박 후보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박 후보는 2007년 유신독재 치하 사법살인이라고 평가받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 최종 무죄판결에 대해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며 평가절하 했고 2012년 9월에는 라디오 인터뷰 도중 ‘인혁당 2개의 판결’ 실언으로 무지한 역사인식을 드러냈다.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에 대해서도 “최선의 선택”이라고 평가하며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이러한 상황을  “지금도 그들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 마치 발 달린 망령처럼 되살아나 ‘독재자’와 ‘요괴’의 자식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예견했다.

아베 신조의 자민당 집권이 현실화된 일본의 향후 진로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꿈꾸던 국가개조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신조의 핵심 공약은 국민방위군 창설이다. 군대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를 재해석하여 일본을 군대를 보유하는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지를 담은 자민당의 총선 슬로건은 “일본을 다시 되돌리자”다. 대동아공영을 꾀하던 제국주의 일본으로 되돌리자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박근혜의 정치적 목표는 박정희의 명예회복?

“아휴, 이렇게 억울하게 그동안 당하셨는데 이걸 어떻게 벗겨 드려야 되나 그런 생각으로 꽉 차 있기 때문에”

1989년 박 후보는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출연하여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정희 사후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은 개인의 영달과 장기집권을 위한 독재”였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한 불만이었다. 

물론 20여 년이 지났는데 박 후보에 대한 과도한 경계가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박 후보는 역사인식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제기되자 결국 9월 24일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이 헌법가치를 훼손했다”고 박정희 정권의 과오를 인정했다. 또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하여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함은 남는다. “유신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100%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만든 국민통합위원회의 김경재 기획특보 등 핵심 인사들은 “부산 출신 노아무개가 호남을 차별했다”며 박정희 정권이 잉태한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막말을 일삼으며 국민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

게다가 몇 달 전 박근혜 후보의 ‘측근’이라고 알려진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의 실언을 떠올리면 박 후보의 집권이 유신독재의 부활이 될 것이란 우려가 가시질 않는다. 김 의원은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박 후보가 정치를 하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솔직해진다). “박 후보가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 때문”이라는 김 의원의 말이 술 취해 내뱉은 헛소리 이길 바란다.

일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선 투표를 앞둔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오마이뉴스>201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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