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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영향력 벗어난 독립기구 만들어 역사문제 다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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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박태균 서울대 교수(오른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정병욱 고려대 인문한국 교수,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정리를 맡은 최원형 기자, 이동기 서울대 인문한국 연구교수가 ‘새로 들어설 박근혜 정부와 역사 문제’를 주제로 삼아 좌담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새 정부의 역사 정책 현안들과 관련해, 국가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근혜 정부와 역사정책’ 좌담회

다음달 출범할 박근혜 새 정부의 무거운 짐 가운데 하나는 역사 문제다. 박 당선인은 선거 과정 동안 ‘역사 문제’와 관련해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고, 집권 뒤에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사교과서, 과거사 청산 등 현안들을 계속 풀어야 할 숙제로 안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31일 서울 공덕동 사옥에서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박태균 서울대 교수, 이동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교수 등 역사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새 정부의 역사정책과 과거사 해법 등에 대한 좌담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지난 대선이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로에 대한 고민 없이 ‘박정희-반박정희’ 등 옛 구도에 기대어 치러졌다는 데 우려를 드러내면서 ‘개인의 삶에 밀착한 역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교과서 검정, 역사박물관 운영 등 새 정부의 역사정책 현안들과 관련해 국가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박태균(이하 박) 탈냉전 이후 ‘지금 한국 사회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장기적 시계열’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 이번 대선도 ‘87년 체제’ 구도처럼 ‘민주-반민주’ ‘박정희-반박정희’로 치러지고 말았다. ‘민주·진보’ 진영이 제대로 구도를 잡지 못했다. 물론 그 책임의 일부는 인문학자, 특히 역사학자들에게도 있다고 본다.

이동기(이하 이) 자유주의-자본주의 체제는 새로운 위기국면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적인 사회안전·복지·분배·평등·정의·공동체 연대 등을 말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이 없었다. 인문학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논의되지 못한 것이다.

정병욱(이하 정)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공동체가 깨어지는 가운데 복지나 상호연대와 같은 대응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이번 대선은 한국이 그런 흐름과 어떻게 만나는가가 화두가 됐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런 화두나 흐름이 보수적·반동적인 틀에 갇히고 말았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선거전의 ‘박정희-반박정희’ 구도가 유권자들의 상황을 정확히 대변했는지는 의문이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교수
대선서 한국사회 방향 논의 못하고
‘민주-반민주’ 87년체제 구도에 갇혀
‘세계화-반세계화’ 아닌 냉전틀 부활


김민철(이하 김) 지금까지 민주-반민주 구도에서는 ‘정치적 독재’ 하나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문제의 핵심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성공 신화다. 이명박 집권도, ‘좌파는 무능하다’는 비판도 여기에 연결된다. 그렇다면 경제적 차원에서 박정희 신화가 정말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이뤄졌어야 한다. 그런 논의가 전혀 없지 않았지만, 시대의 변화를 말하는 담론과 선거 구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시대의 변화를 말하는 담론이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그동안 역사학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경제사·정치사·사회구조사 중심이던 연구가 탈국가·기업·미시사·생활사·개인사·구술사 등으로 다양해졌다. 큰 범주만 보다가 인간 개인들에 대한 접근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를 사회적 차원으로 옮기지 못했다. 예컨대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목소리에 대해 ‘개인안보가 모여서 국가안보가 된다’고 말할 수 있었어야 한다. 안철수 현상은 그런 흐름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산업화 세력’은 학문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한 기괴한 개념이지만, 독재를 포장했을 뿐 아니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을 하나로 지시·호명했다. 반대로 진보 역사학계에서는 ‘민중’ 이후 대중들을 지시·호명하는 개념과 서사를 잃었고, 이분법적인 대립 전선만 남게 됐다. 폭로·규탄을 앞세우는 규범적 비판이 아니라, 대중들이 자기 시대와 세대에 대한 정체성과 그에 연결된 역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역사학이 끊임없이 보조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냉전 체제가 깨지고 나서 오히려 보수 쪽에서 위기에 대한 의식으로 뉴라이트라는 흐름이 나왔다. 이로부터 세계화가 진행됐고 그에 대응하는 반세계화 흐름을 불렀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는 세계화 세력과 이를 비판하는 세력의 구도가 됐어야 하는데, 오히려 냉전시대의 틀이 들어왔다. 그런 가운데 역사학이 그동안 개척해왔던 개인과 소수자의 문제, 다수결 민주주의의 한계 등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정병욱 고려대 HK 교수
정병욱 고려대 HK 교수
학계·정부 교과서 싸움 예상돼
당선인 진정한 통합 바란다면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사과 필요


현실적 과제들을 말해보자. 한국에서 역사박물관이 개관한 26일, 공교롭게도 프랑스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국립프랑스역사박물관의 건립 중단이 결정됐다. 두 박물관은 국가성공사관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았다. 현재 역사박물관은 지금까지의 지배체제를 정당화하고 민주화운동이나 국가폭력, 역사의 파괴, 노동운동과 노동자의 삶 등은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연구자들은 지난해 계간 <역사비평>과 <한겨레>에 연재한 ‘역사정책’ 시리즈를 통해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 역사정책의 기반을 강조한 바 있다. 역사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주체의 측면에서 국가에서 민간 주도로, 아마추어에서 전문가 중심으로 가는 것을 요구했다. 내용에서는 역사의 생활화·문화화를 추구했는데,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이 기준을 중심으로 해 요구하고 바꿔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

정부 쪽에 학자들의 요구가 제한적으로 수용될지라도 현대사 연구자들이 집단적으로 논의를 벌여줬으면 좋겠다. 그런 수정 요구에 시간이 걸리고 결과가 여의치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현재 역사박물관에 대한 비판적인 책자, 학술서와 대중서, 편람, 독본, 안내서의 발간이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면 그때 잘해야지’라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작은 규모의 대안적인 역사전시 프로그램들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시민역사관’이 이런 통로가 될 수 있다.

역사박물관 운영에 대해 노동조합에서 전경련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라고 요구해야 하고, 밖에서 감시와 견제를 계속해야 한다. 지금 정권 때 역사교과서 문제에서 보듯 역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데에 대한 패배적인 태도가 있었는데, 이를 극복해야 한다.










이동기 서울대 HK 연구교수
이동기 서울대 HK 연구교수
정권 바뀌면 잘해야지 생각 버리고
역사박물관 비판책자 발간부터 시작
작은 규모라도 대안적 활동 기획을


국가가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게 독립성이 보장된 기구 안에서 역사교과서 검정, 역사박물관 문제 들이 논의되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큰 틀에서 변함없이 추진되어야 할 이슈들이기 때문이다.

과거사 청산의 경우 ‘진실화해위원회’가 종료된 뒤로 5년 동안 손을 놓은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실제 피해자의 5~10% 정도만 진상이 규명된 수준이다. 추가적인 기구의 설립과 배·보상에 대한 법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이명박 정권은 역사 문제에서 퇴행이라기보단 (역사 자체에) 적대적인 수준이었는데, 이번에 들어설 박근혜 정부는 자기에게 돌아올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과연 그렇게까지 할까 싶다.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하나는 박근혜 당선인이 선거 국면에서 제한적으로나마 과거사에 대한 사과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새누리당 중심의 지배세력 안에 세 가지 세력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반공주의로 뭉친 이른바 극우 세력과 뉴라이트 세력, 그리고 ‘중도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세력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 세 집단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고, 그 속에서 경쟁·경합·갈등·혼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과거사에 대해 어떤 부분은 수용하고 어떤 부분은 무시하고 어떤 부분은 아예 중단시키는 등 선별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결집된 보수 내부에 있는 다른 입장들을 잘 알고, 압박을 통해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과거사 청산 5년동안 사실상 방치
추가적인 기구 설립·재보상법 필요
박근혜 정부 역사퇴행 쉽지 않을듯


전교조에 대한 박 당선인의 강한 불신을 보면, 역사교육 분야는 ‘손을 볼 것’이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교과서가 존재하는 한 아무리 역사를 손보고 싶어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교과서를 둘러싼 정부와 역사학계·민주화 세력의 싸움이 중요해질 것이다. 당선인이 진정한 통합을 바란다면, 유신 때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과와 후속조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과서 문제는 지배세력의 총체적인 대응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의 역사인식을 공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런 걸 가능하게끔 하는 제도에 대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곧 ‘당신의 역사인식이 틀렸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를 통해 그런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


정리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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