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과오 동시 알려…”역사 교육자료로 활용”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을 보인 전 강원도지사 이범익(1883∼?)의 공적을 칭송하는 글과 잘못을 비판하는 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24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정선문화연대 등에 따르면 강원도 정선아라리촌에 조성된 10여개의 비석군(群) 가운데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됐던 이범익의 공적비 옆에 그의 친일 행적을 알리는 단죄비가 이번 3·1절에 세워진다.
1932년 당시 정선군수 김택림이 세운 공적비는 1929∼1935년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범익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앞면에는 ‘강원도지사 이범익 각하 영세불망비(江原道知事 李範益 閣下 永世不忘碑)’, 뒷면에는 ‘우리 이후(李侯·이범익 지칭)시여 이 고을에 어찌 이리도 늦었는고…백성 위해 노고하며 사랑으로 돌보기를 다하셨네…많은 사람 칭찬하니 두터운 은혜 영원히 칭송하네…’등이 새겨져 있다.
당시 정선군 동면에서 생산한 금을 서울로 옮기려고 닦은 신작로 등 기간시설 완공행사에 강원도지사 이범익이 정선을 찾았고, 이를 기념해 비석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범익이 ‘간도특설대’를 창설하는 등 대표적 친일 인물이란 점.
일본 이름이 기요하라 노리에키(淸原範益)인 그는 춘천·김해 등의 군수를 지낸 뒤 조선총독부 사무관을 거쳐 황해도 내무부장과 동양척식회사 감사직 등을 지냈다.
1937년 간도(間島) 지역의 고위 공무원으로 임명돼 간도특설대 창설을 제안, 항일세력 토벌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간도특설대는 1930년대 후반 조선인 항일세력을 가장 강력하게 탄압한 조직 중 하나로, 이들이 살해한 항일운동가와 민간인 등이 172명에 달한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단죄비 설립 움직임은 2011년부터 있었지만 정선군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지연돼왔다.
단죄비는 “세월이 흘러 이 비석이 먼지가 될 때까지 기억하고 기억하자”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와 함께 이범익과 공적비 제작 당시 정선군수 김태림의 친일행적, 비석 해석문, 단죄비 설립 동기 등에 관한 설명이 들어간다.
정선문화연대 관계자는 “비 건립기금은 시민의 성금으로 마련됐다”며 “비석을 깨부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과거를 묻어버리기보다는 비석의 주인이 어떤 인물인지 기억하자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청산되지 않은 친일 역사의 교육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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