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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맞서 색깔공세 조선일보, 넉달 지나 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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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원로 오찬때 거론되자
“악질적 반한문건” “좌파 악선전”
일주일간 기사·칼럼 쏟아내며
‘좌파 딱지 붙이기’ 확대재생산

근거 빈약한 감정적 공격 치우쳐
“비판은 사료 대 사료로 해야” 지적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이 현대사에 대한 논란 키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200만명이 넘게 본 현대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불쏘시개가 됐다. 그러나 <백년전쟁>을 “좌파의 영상물”로 규정하고 “좌편향 역사 교육”을 배경으로 언급하는 등 색깔 공세를 반복해 폭넓은 공감은 얻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년전쟁>은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동영상으로 한국 현대사를 ‘저항 세력과 부역 세력의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했다. 전체 6편 가운데 ‘두 얼굴의 이승만’과 ‘프레이저 보고서’ 두 편이 만들어져 지난해 11월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됐다.

그런데 넉 달이 지난 시점에 조선일보가 이 동영상을 대대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 신문은 15일치에 ‘원로들이 우려한 좌파의 인터넷 다큐 <백년전쟁>’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 이틀 전 박근혜 대통령과 원로 인사들의 오찬에서 “<백년전쟁>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 뒤 일주일 동안 조선일보는 <백년전쟁>을 비판하는 기사와 칼럼을 거의 매일 내보냈다. 16일에는 ‘류석춘 교수가 제기한 좌파 영상물 <백년전쟁>의 문제점’이란 기사에서 “<백년전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고, 19일에는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 인터뷰와 ‘<백년전쟁> 대표적 5가지 왜곡’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22일에는 청와대 오찬에서 <백년전쟁>을 언급한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백년전쟁>에 대해 “터무니없는 악선전”, “학교에서의 역사 교육이 전교조 등의 영향으로 좌편향됐기 때문”이라고 말한 게 인터뷰로 실렸다.

칼럼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다. 18일에는 “이런 의도적 왜곡들은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위중한 사안”이라고 했고, 19일에는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왜곡한 악질적인 반한(反韓) 문건”이라고 맹비난했다.

조선일보의 움직임은 이명박 정부 때의 교과서 논란과 같은 ‘역사 전쟁’을 일으키고 진보 세력에 ‘좌경 용공’의 딱지를 붙이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뉴라이트가 역사 문제를 제기하고 보수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패턴이 계속되고 있다. 친일·민족 문제를 모두 좌파의 공작으로 몰아붙이려는 시도야말로 역사 왜곡”이라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친일인명사전>을 만들며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김성수 전 동아일보 사주 등을 포함시킨 일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조선일보 쪽은 이 일로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사실상 패소하기도 했다. <백년전쟁> 포스터에도 방 전 사장의 모습이 나온다.

대대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좌파’를 강조하는 감정적 공격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미국에 의한 것’이라는 <백년전쟁>의 내용이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대사학자인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요새 세계 학계는 기존의 ‘발전국가’ 이론에서 벗어나 경제 성장의 외부적 요인을 주목하는 추세”라며 “외부적 요인만 강조한 것에 대해 ‘편중됐다’는 지적을 할 순 있어도 ‘왜곡했다’고 말할 순 없다”고 짚었다. 그는 “<백년전쟁>이 한쪽 입장을 강조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철저하게 ‘사료 대 사료’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백년전쟁>이 이승만을 풍자하려고 동원한 영상 기법에 대해서도 “사진 조작”이라는 비판을 가한 바 있다.

<백년전쟁>에 인터뷰가 나온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조선일보는 이승만을 비판하는 얘기만 해도 ‘좌파’이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승만 독재 시절 ‘반민특위’를 ‘좌경 용공’으로 몰아간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다.

<백년전쟁>에 대한 보도를 한 김진명 조선일보 기자는 “(<백년전쟁>에 대해) 정부 출범 초기에 청와대에서 우려가 제기된 사안인 만큼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실질적인 팩트를 다루는 부분이 별로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제기된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 핵심적이라고 판단되는 부분을 기사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201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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