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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실린 작가 이름이 ‘우르르’…모두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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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임종국의 <친일문학론> 교주본 발간 즈음에



윤대석 명지대 국문과 교수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낀 분노와 부끄러움을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당시에도 그리 흔치 않던 세로쓰기로 된 <친일문학론>이 나열한 그 긴 작가의 목록과 그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자극적인 언어는 고등학교 때까지 품어왔던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생각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 목록이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의 작가 목록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그들 작품의 노골성 때문에 교과서적 지식에 대한 반감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는데, 아마 그것이 문학회 신입생 세미나 교재로 <친일문학론>을 선택한 선배들의 의도였을 터이다.

광주항쟁의 실상과 비슷한 충격 임종국의 <친일문학론>

최소한 나에게 그 책은 광주항쟁의 실상을 알게 되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구국의 영도자’ 전두환, ‘보통사람’ 노태우가 살인마였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과, 위대한 시인ㆍ소설가들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동격이었고, 그것은 사고의 전도를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그러기에 ‘자화상(임종국 선생이 <사상계>를 통해 1960년 발표한 시-편집자주)‘을 서문으로 책 앞머리에 붙인 임종국과 마찬가지로 “나를 그토록 천치로 만들어 준 그 무렵의 일체를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고 임종국 선생 ⓒ민족문제연구소

동시대에 나온 김지하의 시 ‘오적’이 권력 엘리트들의 치부를 드러냈다면, <친일문학론>은 문학 엘리트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1966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 책은 너무 오랫동안 홀로 이러한 계몽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임종국의 ‘외로운 열정‘은 바다를 건너 오무라 마스오(번역), 사에구사 도시카쓰(연구)의 공명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이 땅의 연구자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외면은 역설적으로 공감의 결과이기도 했다. <친일문학론>이 외면당하던 시기에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치고 작가론을 쓰면서 자신이 다루는 작가의 일제 말기 행적을 알기 위해 이 책을 뒤적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일제 말기의 ‘친일문학’이 주체 상실의 문학이라는 임종국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 자가 있기나 했을까.

<친일문학론>이 연구자들의, 공감이 아닌 공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민주화’라는 계기가 필요했다. 1980년대 후반, 김병걸과 김규동이 편집한 <친일문학 작품 선집>(1986)이 두 권으로 발간된 것을 필두로 ‘친일문학’에 관한 여러 연구 논문과 연구서,학위논문 등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국어교육계에서 <교과서와 친일문학>(1988)이라는 책으로 화답한 것도 이 무렵이다. 또한 임종국의 유지를 받들어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됨(1991)으로써 그러한 공명이 문학 외적인 분야로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정작 당신은 당신의 ‘외로운 열정’에 대한 화답과 공명을 다 보지 못한 채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버렸다.(임종국 선생은 1989년 지병으로 타개했다-편집자주)

한국 문학 연구자들, 임종국과 진지하게 대면하기 시작하다

1980, 90년대가 <친일문학론>이 공명의 대상으로 이 땅에 군림한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한편으로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이나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등으로 공명의 대상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격투의 대상이 된 시대였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들은 이제 비로소, 출간 30년을 훌쩍 넘은 그의 ‘외로운 열정’과 진지하게 대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 말기의 ‘친일 문학’이란 덮어두어도 좋을 과거의 일시적 오류가 아니라, 현재의 문학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그렇기 때문에 진지하게 공과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의 논리를 새로운 시대에 맞도록 갱신하고자 했던 것이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25일 <친일문학론> 교주본(원본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어려운 내용에 주석을 단 책)을 최근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임종국 저, 이건제 교주, 민족문제연구소 편, 신국판, 640면, 35000원 ⓒ민족문제연구소
그러한 갱신은 <친일문학론>이 기대고 있는 저항 민족주의가 과연 2000년대에 어떠한 의미를 가진 것인가를 묻는 데서 시작되고 있는데, 김재용은 ‘친일/반일’을 전세계적인 반식민주의 입장에서 ‘저항/협력’으로 고쳐 읽는다(협력과 저항, 2008년, 소명). 또한 김철(문학 속의 파시즘, 2001년, 삼인)을 비롯한 탈근대주의, 탈민족주의적 연구는 ‘친일’을 주체 상실이나, 자발적인 동조로 보지 않고 식민지 규율권력에 의한 훈육적 주체 형성의 결과로 보았다. 그 외에도 젠더적 시각에서 하위 주체의 ‘내부 식민지’ 문제를 다룬 연구나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만주 문제까지 고려한 연구 등은 <친일문학론>이 시대적 한계 때문에 다루지 못한 부분을 보충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2000년대에 꽃 핀 ‘친일문학’ 연구는 ‘친일문학’이 무엇이었던가를 묻지 않고서는 우리 문학, 나아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는 <친일문학론>이 던져둔 화두와 진지하게 대면하면서 전개되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친일문학론>은 과거에 존재했던 유물이 아니라 현재적ㆍ비평적 의미를 갖는 담론으로서 격투와 공명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 책이 이렇게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인용되고 적용되거나 또 비판과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문학론>은 이제 격투와 공명의 대상을 넘어 연구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엄밀한 학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김명인 주장(김명인, 친일문학 재론, 2008)에 이어 임종국만을 다룬 논문(이혜령, 인격과 스캔들, 2012)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친일문학론>의 자잘한 오류를 고치고 이해하기 쉽게 주석을 붙인 교주본이 출간되었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가 <친일문학론>을 엄밀하게 다루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생명을 지니고 살아 있는 비평적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친일문학’ 연구에 오랫동안 종사하고 또 그 꼼꼼한 실증성을 높이 평가받아 온 교주자 이건제 선생의 노고에 경탄하면서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또 한 시대가 지나갔구나” 하는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친일문학론>을 분노와 전율의 감정 없이 읽어갈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들은 과연 어떠한 ‘친일문학론’을 전개해 나갈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이러나 저러나 교주본의 출간은 ‘친일문학’ 연구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오기 바로잡고 한자 풀어낸 <친일문학론> 교주본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 이듬해인 1966년 7월 출간돼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던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이 한층 정교해진 내용으로 다시 선보였다. 초판이 발간된 지 거의 47년만에 사실상의 개정판이라고 할수 있는 교주본이 발간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친일문학론>은 친일문제 연구의 단서를 연 기념비적 저작으로 문학은 물론 각 분야에 두루 영향을 끼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친일문학론>이 없었다면 ‘친일’이라는 금기의 영역은 여전히 깨지지 않은 채 온전한 성역으로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교주본은 원저의 골간을 건드리지는 않으면서, 전면적인 검증을 거쳐 오류를 바로잡고 읽기 쉽게 재구성한 것이라고 조 사무총장은 설명했다. 조 사무총장에 따르면 이번 교주본은 △책에 언급된 원자료와 대조하여 오기와 오역, 착오 등을 바로잡았고 △어려운 한자말이나 당시 용어를 알기 쉽게 풀이했다. △한자어, 인명, 지명 등을 가능한 한 한글화했다. 378명의 한자 표기 일본인명을 각종 근거를 찾아 일본어 발음으로 풀어낸 것도 특기할만한 성과로 꼽는다.

조 사무총장은 “초반에 이 작업에 착수했을 때 여러 사정으로 지지부진했는데, 일본에 체류 중인 문학평론가 이건제 박사가 활력을 불어넣어줬다”며 “이 박사의 ‘재능기부’로 2년간에 걸친 치열한 작업 끝에 마침내 올해 초 교열 및 주해작업을 완료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사무총장은 “최근 일본의 노골적인 우경화는 선각자로서 임종국의 대일 경계가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하며 “일제지배 긍정론의 대두나 친일파 추종세력의 공공연한 역사왜곡 등 국내의 우려스런 현상도 임종국의 작업이 시효가 끝난 것이 아님을 방증해준다”고 덧붙였다.

임종국 선생은 누구?

1929년 경남 창녕군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59년 <문학예술>에 시 ‘비(碑)’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1960년대 초반 사화집 동인으로 시작 활동을 했다. 1965년 6월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일본의 한국 재침탈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일제침략사와 친일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1966년 8월 일제말 전시체제기의 동원정책과 그에 부역한 친일문인, 또 그들의 작품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친일문학론>을 펴내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이후 <한국문학의 사회사>(1974) <정신대 실록>(1981) <일제침략과 친일파>(1982) <일제하의 사상탄압>(1985) <한국문학의 민중사>(1986) <일본군의 조선침략사> 1ㆍ2 (1988, 1989) 등 의미 있는 저서들을 연이어 내놓았으며, 친일문제 전반을 다룬 <친일파총서>(전 10권) 발간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려던 중, 1989년 11월 폐기종으로 타계했다.

사후인 1992년 <친일문학론>과 <일제침략과 친일파>가 제6회 심산상 수상도서로 선정되었다. 2005년 10월 15일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프레시안>201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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