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 다룬 <백년전쟁>이 국가 안보 문제?
‘백년전쟁’은 현재 진행형…이승만기념사업회 vs 민족문제연구소
박세열 기자[프레시안]
지난해 말 공개돼 유튜브 조회 수 200만 건 이상을 기록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백년전쟁>은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해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배포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총 6편으로 기획됐다. 지금까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프레이저 보고서’ 등 두 편이 지난해 11월 먼저 공개됐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 3월 13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시작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사회 원로급 인사 12명이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인호 전 주러 대사가 입을 열었다. <백년전쟁>을 언급하며 “역사 왜곡이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하겠다”며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 전 대사의 ‘성토’를 경청하고 일일이 메모한 뒤에 “잘 살펴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단체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총리실 산하에 ‘건국60년기념사업단’을 만들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단체였다.
이 전 대사가 특히 지적한 것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두 얼굴의 이승만’이었다. 그의 지적이 있은 후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문제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비판 사설을 앞다퉈 내놓았다. 결국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가족이 지난 2일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등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백년전쟁’은 현재 진행형…이승만기념사업회 vs 민족문제연구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이자 유족 대표인 이인수 이승만기념사업회 상임고문은 2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보수단체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편에 대해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인격 살인”이라고 규정하며 “유족들은 <백년전쟁> 관련자들을 이승만 박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고 밝혔다. 이 상임고문이 고소한 인사는 임헌영 소장, 김지영 <백년전쟁> 감독 등 3명이다.
이 상임고문은 검찰에 접수한 고소장을 통해 “(<백년전쟁>) 동영상에서는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명망이 절대적이었던 고 이승만 박사를 인격적으로 살해하는 황당한 주장을 펴기 위해 ‘하와이 깽스터’, ‘악의 탄생’, ‘똑바로 뽑아라’, ‘상해의 결투’ 등 선정적인 (소)제목을 정했다”며 “독립투사로서 고 이승만 박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방대한 양의 직접 사료와 연구 결과들은 완전히 무시하고, 편향되고 날조된 주장들만으로 고 이승만 박사를 비하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다큐멘터리가 제시한 12가지 사례 및 에피소드에 대해 “11개의 사례는 완전 조작된 것이고 1개의 사례는 영어 원문을 지나치게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오는 9일 환경재단에서 이 상임고문 등이 고소한 것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6일 밝혔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년전쟁>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100여 년 전의 역사를 두고 이승만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법정 안팎에서 ‘전쟁’에 돌입한 모양새다.
“치안 담당 장관이 ‘대응하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
역사적 사실을 두고 법정에서 다투는 것과 별개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도 감지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 살펴보겠다”고 발언한 이후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객관적인 검증이 없는 <백년전쟁> 동영상은 국민 통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며 “한국의 정체성이 지켜지고 역사관이 올바로 설 수 있게 문제에 대응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이인호 전 대사가 <백년전쟁> 문제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경찰청을 외청으로 두고 있는 안전행정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그 무게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역사 다큐멘터리 문제인데 교육부나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안전행정부장관이 ‘대응하겠다’고 한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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