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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수석, 국편 위원장에게대응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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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의혹 제기…모철민 수석 “만났지만 지시한 적 없다”


박세열 기자,곽재훈 기자 


민족문제
연구소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뤄달라는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의 주문이 있은 후 청와대의 수석비서관이 국사편찬위원장 등 학술 기관 단체장을 불러 <백년전쟁>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9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국사편찬위원장 등 정부 산하 기관장을 지난 3월 말 청와대로 불러서 <백년전쟁>과 관련해 적절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박한용 연구실장은 “이 같은 지시의 맥락에 주목하고 있다”며 “북한 문제로 국내외 정세가 복잡한 상황에서 민간 단체가 만든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국가 안보에 직결된다고 하고, 청와대 수석 쪽에서 학술·역사 관련 3개 기관장을 불러 <백년전쟁>에 대해 ‘무리가 있다’고 얘기하며 어떤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박 연구실장은 “청와대 수석이 그런 얘기를 한 것을 간접 확인했다”며 “(청와대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3월 13일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게 “(<백년전쟁>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하겠다”고 주문했다. 이후 4월 16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백년전쟁> 동영상은 국민 통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며 “한국의 정체성이 지켜지고 역사관이 올바로 설 수 있게 문제에 대응해 나가겠다”고 했다. (관련 기사 : 이승만·박정희 다룬 <백년전쟁>이 국가 안보 문제?) 그 중간인 3월 말 무렵 청와대 수석이 학술 기관장 등을 불러 “대처”를 지시했다는 것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대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언급된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 자리에서 “독재도 때에 따라 필요하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또 교과서의 ‘민주주의’ 문구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것을 추진해 학계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학술 기관 등의 유관 수석은 청와대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이다. 이러한 의혹 제기와 관련해 모 수석은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이태진 위원장 등 학술 단체 관련 인사를 만났고, <백년전쟁>과 관련된 얘기가 오간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 수석은 “청와대가 ‘대응해야 한다’며 지침을 줬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저희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나. 정부 산하 기관들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연구 기준에 따라 연구하시는 분들”이라며 “‘지시’ 등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또 “극우 매체 등의 보도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함께 변호인단을 꾸려 향후 법적 대응을 강구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뉴라이트 계열인 시대정신 측이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토론을 제안한 것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합리적인 토론 상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적인 대응 문제 등을 매듭지은 후 토론 관련 논의에 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민족문제연구소 기자회견 모습 ⓒ민족문제연구소

“<백년전쟁>은 왜곡 다큐” 주장에 145페이지 분량 반박 사료 내놓아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보수 언론의 집중적인 문제 제기로 불거진 <백년전쟁> 1편(‘두 얼굴의 이승만’)의 이른바 ‘왜곡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53페이지 상당의 반박문과 이 반박문을 뒷받침하는 145페이지 분량의 사료집을 배포했다. 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 이승만연구소 상임고문이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등을 고발하며 고발장에 인용했던 보수 단체와 보수 언론 등의 주장과 관련된 것으로, 총 9가지 쟁점에 대한 반박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몇 가지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먼저 <백년전쟁>에서 이승만이 일제의 고문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표현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이승만포럼 등은 “이승만은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일제의 고문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그런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백년전쟁>은 이승만이 구한말 독립협회와 관련해 5년 7개월 동안 투옥됐고 이는 독립운동 또는 일제에 의해 투옥됐다는 당대의 소문과 무관하다는 것을 사실로 확인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승만 스스로 일제의 고문을 받았다고 말했다는 증언과 달리, 실제 이승만은 일제 강점기 이전에 투옥된 적이 있을 뿐 일제 강점기에는 투옥 자체를 당한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승만이 일제의 고문을 받았다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이승만포럼 등은 1912년 11월 18일 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중 이승만이 “지난 3년, 한국은 낡은 인습이 지배하는 느림보 나라에서 활발하고 떠들썩한 산업 경제의 한 중심으로 변모했다”는 한 부분에서 “지난 3년”이라는 말을 “한일합방 이후”로 표현하는 등의 방식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이승만포럼 등은 문제의 <워싱턴포스트> 기사는 없으며 올리버 박사가 쓴 <이승만 전기>를 재인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문제의 기사를 공개했다. 김승은 자료실장은 “기사는 지금도 <워싱턴포스트> 아카이브에 들어가면 찾을 수 있는데, (이승만포럼 등이) 찾지 못했을 뿐이며 기사 내용에 대해서도 오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당시 ‘지난 3년’은 인터뷰 시기상 당연히 한일합방 이후를 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김 자료실장은 전체적인 기사의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서도 “이승만은 ‘미국 개신교계 헌금의 결과로 (조선이) 산업 경제의 중심이 됐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이승만포럼 등이 반박을) 하지만, 이승만은 당시 인터뷰에서 ‘전차 레일이 깔리고 도시마다 전기 불빛이 들어오고 공장과 백화점이 곳곳에 생기고 있다’는 발언도 했다. 이게 어찌 미국 개신교계 헌금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박했다. 연구소는 “당시 독립운동가 가운데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오직 이승만 한 사람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셋째, 이승만포럼 등은 <백년전쟁>에 소개된 내용 중 “1918년 하와이 법정에서 이승만이 박용만에 대해 ‘일본 군함 이즈모호가 입항하면 폭파하려는 계획을 세운 위험한 인물’이라고 밀고하는 증언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증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문제의 내용은 당시 주요 사료인 <신한민보>와 ‘국민회 공고서’, <재미오십년사>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이후에도 이승만이 다른 독립운동가를 공산주의자 등으로 모함했다는 기록이나 증언, 연구도 있다”고 반박했다.

넷째, 이승만포럼 등은 “<백년전쟁>은 외교 독립 노선을 부정하고 무장 독립 의열 투쟁만을 인정하고 있다. 이승만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무장봉기론에 맞서 장기적인 외교 독립론을 주장했던 것으로 노선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외교 노선 자체를 부정하는 학자는 없는 게 상식이다. 다만 이승만의 외교 노선이 유달리 무장 투쟁, 의열 투쟁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는 점은 학계의 상식에 속하며 <백년전쟁> 또한 이를 거론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연구소는 관련해 “우리 형편상 전쟁 준비는 국민들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국내외 일반 국민들은 각자 직업에 종사하면서 여가 시간에 병법을 연마하라. 무기도 각자 구하라. 그러다 좋은 시기가 오면 일제히 나가서 싸우자”고 한 1921년 이승만의 상해 임정 대통령 연두교서 내용을 소개했다.

다섯째, 독립운동 자금을 둘러싼 상해 임시정부 내 갈등과 관련해 이승만포럼 등은 “당시 싸움은 독립운동 노선 투쟁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이승만은 재정 문제를 자신이 직접 관할하면서 임정 요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며 “1924년 상해 임정 개혁파가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하려 하자 (이승만은) 임정으로 보내던 소규모의 독립운동 자금마저 끊어버렸다. 이는 이승만의 독단적 행정 처리와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한 갈등이지 노선 투쟁으로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실제로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냈지만 재정 문제 등에 얽혀 탄핵을 당한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여섯째, 이승만포럼 등은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교육 운동을 헌신적으로 전개했으며 그 결과 8년제 남녀공학 기숙학교인 한인기독학원이 탄생했다. 이승만은 영수증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재정 보고서도 투명하게 공개했다. <백년전쟁>에 나온 것과 같은 횡령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소는 이에 대해 “이승만 측은 부동산 구입 자금 출처, 연 8% 이자, 교육 시설 운영 자금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발생한 차액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입증 자료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학교 터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그 대출금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회계 기록이 없다면 그 재정을 운용한 자는 당연히 횡령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반박했다.







▲ 이승만 전 대통령 ⓒ연합뉴스

이승만·김노디가 ‘함께 있었다’고 한 여성은 당시 미국에 없었다?

이승만과 김노디의 미국 ‘맨법(Mann Act)’ 위반 문제에 대한 반박에서 연구소는 새로운 자료를 공개했다. 이승만포럼 등은 “이승만과 김노디는 무고하게 고발당했고 무혐의 처리된 사건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뽀샵’을 동원하고 ‘기소했다’는 표현을 하는 식으로 불륜으로 몰아갔다. 이는 이승만과 김노디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인격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이승만과 김노디의 관계를 불륜이라고 한 적 없다.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의문 제기”라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그간 주목을 받지 못해왔지만 이승만포럼 등과 함께 보수 언론이 적극 반박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은 이승만과 당시 22세 여대생 김노디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까지 3박 4일간 주의 경계를 넘는 장거리 여행을 했고 결국 ‘맨법 위반 혐의’를 받게 됐다는 내용에서 시작한다. 여기까지는팩트다. 당시 ‘맨법’은 기혼자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주의 경계를 넘는 것을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미궁 상태다. 이승만포럼 등은 “기소는 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처벌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을 <백년전쟁>이 언급하지 않아 마치 범법자처럼 그려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연구소 측은 처벌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이날 새로운 사료를 제시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와이 이민국이 이승만과 김노디, 두 사람이 같은 섹션의 침대칸에 동승하지 않았다고 본 결정적인 이유는 고데트라는 여성의 증언 때문이었다. 이승만과 김노디가 침대칸에 동승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서 이승만과 같은 침대칸에 동승한 인물이 고데트라고 증언한 것이다. 관련해 연구소 측은 “고데트라는 여성의 여권 기록을 확보했는데, 살펴본 결과 이승만과 김노디가 열차를 타고 여행할 당시 고데트가 파리에 머물렀다는 정황이 나왔다. 결국 ‘합리적 의심’은 더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이승만과 김노디는 명백히 맨법 위반 용의자였고 특히 이승만은 ‘럭셔리 호텔‘에 묵고 백인 여성들에게 돈을 물쓰듯 했다. 이에 근거해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에서는 추방 절차에 돌입해도 좋다는 허가까지 내려졌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당시 용의자로 조사받던 이승만이 위증을 했다는 정황 사료도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하와이 이민국 조사관은 이승만이 “한일병합 전에 이혼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혼한 적이 없으며, 이는 이승만이 위증을 해서 당시 상황을 모면한 것일 수 있다는 게 연구소 측의 주장이다.

이승만포럼 등이 주장하는 ‘뽀샵’에 대해서도 연구소는 “<백년전쟁>은 두 사람이 장거리 여행으로 맨법 위반의 용의자가 됐다는 사실을 풍자하기 위해 영화의 패러디 기법을 사용했다. 실제 용의자 사진을 찍은 것처럼 조작해 관객을 속이려고 했다면 왜 1930년대 용의자 사진이 아니라 1990년대 영화 <유주얼 서스팩트>에 등장하는 장면을 합성 사진의 배경으로 사용했겠느냐”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만약 이런 패러디 부분을 문제 삼는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레시안>20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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