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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기적’이 아니게 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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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부락민차별철폐운동에 앞장서온 사회운동가로 한국 전문 저명 저널리스트인 가와세 슌지(川瀨俊治) 선생이 한겨레신문 창간 25돌을 맞아 ‘참언론의 길’에 관해 특별기고한 글을 전재한다. 가와세 선생은 우리 연구소가 편찬을 추진 중인 재일조선인단체사전 나라지역 집필위원이며 한겨레 20년사를 일본에 번역 소개한 바 있다. -엮은이



모두가 잠든 새벽,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의 ‘한겨레’ 로고는 꺼지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진실을 찾아내려는 한겨레의 노력은 어떤 어둠 속에서도 지속될 것이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 창간25돌] 청년언론, 공감세상
‘한겨레 20년사’ 일어번역 가와세 슌지가 본 ‘참언론의 길’

한겨레를 처음 방문한 1992년
함께 불고기를 먹으며 들었던
자유언론 수호투쟁 이야기…
언론 자유란 싸워서 얻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해온 게 기적”이라는
편집인의 말을 되새기며
이젠 기적이 아니게 될 그날을
우리는 기대하며 주시한다 

내가 한겨레신문사를 처음 방문한 것은 서울시 마포구 새 사옥이 지어진 이듬해인 1992년이다. 한겨레신문사 첫 국외번역 서적 <발굴 현대사 인물>(일본 해방출판사) 간행 건 때문이었다. 이때 애를 써준 분이 당시 논설위원 이인철 선생(작고)이었다. 그 뒤에도 한국 정치, 언론상황에 대해 가르쳐준 은인이었다.

김명걸 사장과 출판 계약서를 맺은 뒤 이 선생, 그리고 <동아방송>을 거쳐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가한 윤활식 선생과 새 사옥 앞의 정육점 안에서 불고기를 대접받았다. 이 선생에게서는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시작된 <동아일보>의 언론투쟁에 대해 들었으며, 윤 선생에게는 ‘자유언론’ 수호투쟁으로 투옥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는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투쟁은 책을 통해 알게 된 역사의 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들의 이마에 새겨진 깊은 주름은 눈에 강렬하게 아로새겨질 정도로 생생한 만남을 동반했다.

신문사를 그만두는 것도 모자라 투옥으로 이어지면서까지 지향하는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 언론은 전후 ‘헌법’을 사시로서 내걸고 ‘언론의 자유’를 수호해온 것에 비해, 한국은 강력한 국가폭력을 배경으로 한 군부독재정권에 대결해 획득한 것이었다. 일본과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 수호가 태생적으로 다른 것이다. 한국에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공권력 감시와 비판’이라는 ‘평시’ 저널리즘이 ‘언론의 자유’의 제1주의가 되었지만, 원점은 어디까지나 ‘언론의 자유’란 싸워서 얻는 것, 쟁취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한국은 헌법에 ‘언론의 자유’ 유보규정(제21조)이 있고, 국가가 정한 신문법제가 ‘해방’ 뒤 일관해서 존속하고 있다. 일본 헌법에서는 ‘언론의 자유’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은 국가로부터의 규제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핵발전소(이하 원전)와 관련해서 일본은 도쿄전력 등 사기업이 운영되고 있지만 한국은 한국전력이라는 공영전력회사가 있다. 언론에 대한 규정이라는 문제와 관련해 생각하면 국가가 방패가 되어 경제력의 약함을 커버해온 일면도 있다.

그러나 선진국인 한국의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대한민국 헌법의 ‘언론자유’ 유보규정을 개정할 만한 ‘체력’은 충분히 붙어 있다. 한겨레가 사반세기 동안 보여온 행보를 바탕으로 자신을 가지고 도전해야 할 큰 테마일 것이다. 일본도 역사적 책임이 있는 분단극복의 길이 유보규정 개정을 촉진하는 두 바퀴임은 자명하다.

‘공권력 감시와 규제’는 보편적인 신문의 테마이지만, 한겨레를 논하는 데 특별히 거론하지 않아도 좋다고 할 것이다. 한겨레의 ‘사내 민주제’야말로 특필해야 한다. 경영모체를 재벌, 대기업이 아닌, 국민주주제도로 출범한 것은 ‘사내 민주제’를 낳고, 경영진이 편집진에 압력을 가하는 조직상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해소했다. 따라서 ‘공권력 감시와 비판’이 종횡무진 전개돼 왔다. 그사이 국민주주제도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한겨레를 지탱하는 토대는 지속돼 왔다.

2005년 2월 대표이사 선거에서 평기자인 양상우(현 사장)가 출마했다. 사내 계급구조에 속박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전 사원에 의한 직접선거제도는 1999년 대표이사 선거제도부터 시작됐는데 입후보자는 ‘공약집’을 발표해 토론회를 열어 사원에게 자기의 정책을 호소해왔다. 한겨레가 2008년 ‘촛불집회’, 2011년 ‘희망버스’에 지면을 할애해 크게 보도한 것도 ‘사내 민주제’로 키운 시각이 민중의 움직임에 강하게 공명했기 때문이다.

2005년 대표이사 선거에서 표명된 것이 멀티미디어 기업 노선이었다. 도산 직전까지 악화된 경영상태를 구조개혁 단행으로 극복하려 했지만 함께 싸운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다. 내가 날카로운 필봉에 주목해 번역 출간했던 <언론개혁>의 저자인 손석춘 논설위원(현 동국대 교수)도 그 1인이었다. 이후 한겨레는 흑자전환했다. 한겨레신문사의 분수령은 2005년이라 할 것이다.

2005년 개혁은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신문 취재에서 부정적인 면으로도 작용하는 게 인터넷 시대이다. 눈앞의 컴퓨터로 대강의 기사는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걸어온 길 중에는 조계종총무원장 보도(1994년), 김현철 부정사건 보도(1994년), 시리즈 ‘심층해부, 언론권력’(2001년), 재벌 ‘삼성’의 비자금 문제(2007년) 등 심층탐사보도가 2005년을 기점으로 줄어든 것인가, 늘어났는가? 이 검증은 중요하다. 취재력의 바로미터이다. 만약 줄어들고 있다면 분명히 한겨레의 위기이다. 탐사보도의 충실함은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결정타’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원전노동자(울산) 인터뷰를 일본잡지 <부락동맹>에 지난 3월 게재했다. 그러나 한국의 신문은 이런 종류의 기사를 보도한 적이 없다고 한다. 원전에 관한 탐사보도도 읽지 못했다. 일본에는 있는 (원전 관련) 내부고발 기사도 듣지 못했다.

후쿠시마 이후 어떤 신문보다 탈원전을 제기하며 사설, 투고를 많이 게재한 한겨레에서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한국의 경제부흥, 발전의 상징이었던 원전을 탐사보도의 대상으로 처음부터 삼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차별을 구조화시킨 원전의 현상을 추인하지 않는다. 일-한 양국은 원전을 지방에 집중시켜 대도시에 전력을 보내는 불평등사회(에너지 부정의)를 양산하고, 피폭노동자를 허드렛일 노동자로 강요하고 있다.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핵 쓰레기) 처리에는 몇 만년이나 걸린다. 우라늄 채굴 노동자의 피폭이나 저준위 방사능에 의한 건강피해는 이미 보고되고 있으며, 한번 거대 사고가 일어나면 공동체 파괴, 토양·대기·해양 오염, 나아가 유전자 피해 등은 되돌릴 수가 없다.

1975년 미국 핵규제위원회(NRC)의 보고서를 보면 희생자 확률이 자동차 사고 3만분의 1, 비행기 사고의 900만부의 1에 비해 원전사고 확률은 200억분의 1이라고 밝혔다. 보고서 위원장은 연설에서 원전의 거대 사고 확률을 “양키 스타디움에 운석이 낙하할 확률보다 낮다”고 언급했다고 한다(이헌석 <핵발전, 우리가 잊고 지냈던 불편한 진실들> 중). ‘절대적 안전선언’이다. 그런데 4년 뒤에 스리마일섬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다시 2년 전에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일어나 ‘절대적 안전선언’은 와해됐다.

미국 전력회사는 경제적으로 채산성이 없다며 1980년대 초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동결했다. 우라늄 광물의 고갈도 언젠가 찾아온다. 이 객관적 사실 앞에서 ‘핵 없는 세계’를 어떻게 실현해갈 것인가? 일본과 한국 모두 공유하는 과제이다. <희망으로 가는 길-한겨레 20년의 역사>에서는 현재의 한겨레 보도의 기둥은 절차 민주주의 감시(‘공권력 감시와 비판’)에 덧붙여 경제적 민주화의 내실을 따져묻는 것이라고 했다. 원전 보도가 하나의 기둥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안의 구체화를 실현해가면서 보도의 깊이를 더하기를 바란다,

한겨레는 올해 5월15일 사반세기를 맞이 한다. <희망으로 가는 길-한겨레 20년의 역사> 일본어판 ‘해설’에서 공동번역자인 모리 도모오미 리쓰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은 “여기까지 해온 것은 기적이다”라고 평한 권태선 한겨레 편집인의 증언을 소개했다. 민중이 한겨레를 지탱하고 한겨레는 기사로 답해왔다. 권 편집인이 말한 ‘기적’이 아니게 될 날은 언제일까. 우리들은 기대하며 주시하고 있다.





















가와세 슌지

저널리스트. 1947년 태어나 오타니 대학 졸업 뒤 1971년 나라신문사 입사. 1984년 부락해방동맹을 모태로 한 출판사 ‘해방출판사’로 옮겨 편집자로 일함. 2005년부터 프리저널리스트. 오사카경제대학 아시아연구소, 리쓰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지냄. 덴리대학 강사. 저서 <또 하나의 현대사 서설-조선노동자와 대일본제국>, 번역서 손석춘 저 <언론개혁>, 공역 <희망으로 가는 길-한겨레 20년의 역사 일본어판> 등.


<한겨레> 201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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