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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친일발언이 실린 ‘워싱턴포스트’는 조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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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화 (민족문제연구소 기록정보팀장) 


백년전쟁 Part1 ‘두 얼굴의 이승만’ 편은 이승만이 진정한 독립운동가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숱한 반증의 하나로 이승만의 친일 성향 발언이 담긴 워싱턴포스트 1912년 11월 18일자 기사를 인용했다.










   
▲ [캡쳐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화면에 나와있는 자막은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이승만의 발언이다. 그는 “3년도 지나기 전에 한국은 낡은 인습이 지배하는 느림보 나라에서 활발하고 떠들썩한 산업경제의 한 중심으로 변모했다 … 전차 레일이 깔리고, 도시마다 전기 불빛이 들어오고, 공장과 백화점이 곳곳에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3년이란 한일 강제병합 이후 3년으로 해석되므로 이러한 발언은 일제가 주장했고 뉴라이트가 계승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본이 낡은 조선을 발전 시킨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 백년전쟁은 바로 이 부분을 주목한 것이다.


그런데 논쟁은 뜻밖의 영역에서 터져 나왔다. 사료의 역사적 의미나 해석에 대해서가 아니라 조작 여부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승만 쪽은 워싱턴포스트의 해당 기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팟캐스트 <정규재TV>에 패널로 참석한 뉴데일리 박성현 주필은 “백년전쟁은 있지도 않은 기사가 있는 것처럼 뽀샵으로 조작했다”고 폭로했다. 뒤이어 건국이념보급회 김효선 사무총장은 자신이 “이미 없다고 말했는데 왜 굳이 찾아보냐”며 핀잔주듯 박성현의 주장을 거들었고, 또 다른 패널인 류석춘 연세대교수는 “혹시 못 찾은 것 아니냐”며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수긍하는 듯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덧붙여 김효선 사무총장은 “워싱턴포스트 본사뿐만 아니라 미국회도서관에도 해당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 문제의 발언은 백년전쟁 관련 기자회견 프리젠테이션 ‘논쟁3’에 속하며 위 동영상 시작후 6분경에 나옴.

이 와중에 박성현은 뉴데일리 주필이라 신분을 밝히고 자신의 이름을 걸겠다며 재차 문제의 워싱턴포스트는 없다고 단언했다. <정규재TV>를 통해 엽기적인 폭로가 이루어진 뒤 인터넷 공간은 민족문제연구소와 백년전쟁을 “조작의 달인”, “뽀샵민족주의”라 비난하는 수많은 기사와 게시물, 블로그 포스팅, 트윗으로 도배가 되었고, 여기에 보수일간지와 종편방송이 가세하면서 점차 이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갔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수구언론들이 이를 기사화하여 확대재생산하는 전형적인 여론조작이었다.


이 같은 수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지원혈서 기사(「血書·軍官志願, 半島の若き訓導から」, <滿洲新聞> 康德 六年(昭和 十四年) 三月 三十一日, 日本 國會圖書館 所藏 마이크로필름)가 조작이라는 주장으로, 지금도 인터넷에 대대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박정희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분명히 결론이 났음에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시민들은 극우세력의 상습적인 선동임을 한 눈에 알아채고 이를 무시해 버리지만 의외로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 백년전쟁에 대한 성토장이 되다시피 하고 용인하기 힘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연구소는, 지난 9일 뉴데일리와 이승만연구소가 입주해 있는 환경재단의 레이첼카슨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년전쟁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자리에는 청와대 원로회동에서 “백년전쟁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주의해야 한다”고 고자질하여 연구소에 대한 마녀사냥을 촉발시킨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비롯한 이승만 쪽 관계자 10여명도 대범하게(?) 참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기자회견 중간 이승만 측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프리젠테이션에서는 문제의 신문자료 이미지 영상도 공개됐다.










   
▲ 1912년 11월 18일자 워싱턴포스트지 관련기사 (해당기사는 유료임). [캡쳐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자료실장은 브리핑에서 “우리 연구소는 현존하는 자료는 반드시 찾는다. 또 입증자료 없이 주장하지 않는다. ‘백년전쟁’을 비난하는 쪽에서도 제발 증거를 제시하면서 반박해 달라”고 항변했다.


연구소가 기자회견을 통해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자, 자신의 이름을 걸겠다고 했던 박성현 주필이 서둘러 뉴데일리에 칼럼을 썼다(2013.5.9. 22:53). 제목은 “민문연과 역사업자들, 영어공부 다시 하고 덤벼!”이다. 유치한 내용이 대꾸할 가치도 없는 글이지만, 칼럼의 중간쯤 이런 황당한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전략) 오늘 <민족문제연구소>가 뿌린 유인물에는 [실체적 근거]가 있는 듯 보이는 항목이 단 하나 있다. 이 항목은 내가 <정규재TV>에 출연해서 『백년전쟁』을 비판했던 발언을, <민족문제연구소>측이 다시 공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좀 내용이 길고 복잡하지만, 자세히 다루어 보자.『백년전쟁』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만든 <생명의 길>에서 이 부분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그 자세한 사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규재TV>에 출연해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발언한 적이 있다. “<백년전쟁>은 우남 이승만이 1912년 11월에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일합방 후 3년 동안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이승만은 그 같은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내 이름을 걸어도 좋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에 대해 오늘 기자회견 장에서, “<뉴데일리> 박성현 주필이 자기 이름을 걸어도 좋다는데, 정말 이름을 걸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비아냥거렸다. 좋다. 이름을 걸겠다. 그러면 <민족문제연구소>는 무엇을 걸을 텐가?


착오가 있었다고 인정하면 그만일 터인데 왜 이렇게 동문서답 좌불안석일까. 우선 박 주필에게 그렇게 떠벌리는 얄팍한 수준의 영어 이전에 국어공부를 제대로 하기를 권고한다. 무엇보다도 명색이 주필인데 억지 논리를 세울지라도 사실에서 출발하는 기본은 지키기를 바란다.


그가 <정규재TV>에서 발언한 내용은 분명히 “워싱턴포스트 기사는 없다”이다. 덧붙여 40달러나 들여 워싱턴포스트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살펴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민족문제연구소가 증거를 제시하자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이 시기에 이승만은 그 같은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내 이름을 걸어도 좋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치 <정규재TV> 출연 당시 그 기사를 보았고 내용과 정황에 대해 언급한 정도였다는 해괴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뭇사람들은 자신의 신념 약속 결백 등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나 사랑하는 가족 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경향이 있다. 그 중에서도 당사자의 이름 석 자를 거는 행위는 실명으로 명예를 건다는 점에서 책임이 따르는 자못 비장한 결단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자신의 이름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이들이 줄을 서고 있다. 막말을 서슴지 않는 다수의 극우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박 주필에 이어, 얼마 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기자회견에서 다음 날 들통날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이름 석 자를 걸었다. 참을 수 없는 ‘이름’의 가벼움을 지켜보면서 영화 황산벌에 나오는 기억할만한 대사를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다. “호랑이는 가죽 땜시 ×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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