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역사학 논쟁에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구시대 잔재

590





[인터뷰]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해까지 학술단체협의회 상임의장을 지냈고, 지금도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을 만큼 사회참여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5.18민중항쟁을 앞두고 직접 만났을 때 한 교수는 예상과 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대체로 역사학자는 사회활동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에 자꾸 나오면 ‘저 친구는 공부 안하고 정치하려나’ 생각할 정도로. 연구 외 다른 일 많이 하면 선생님들에게 공부 안한다고 혼나고 그랬다.”

그는 올해 60세로 정년퇴직을 5년 앞두고 있다. 연구 열심히 해서 좋은 논문 남기고 싶다는 한 교수는 바람과 달리 상아탑 안에 앉아있지를 못했다.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

덕성여대 사학과 한상권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조각도 못한 채 전쟁 위기 맞았는데 ‘백년전쟁’ 이야기하고 있다니”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라는 이인수씨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나온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관계자들을 고소했다. 앞서 지난 3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원로인사 오찬에서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백년전쟁’을 국가안보 차원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고, 이어 청와대 모 수석이 국사편찬위원장 등 학계 인사 3명에게 ‘백년전쟁’을 언급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흥미로운 역사물이었던 ‘백년전쟁’은 보수와 진보의 전선(戰線)이 됐다.

한상권 교수는 청와대와 보수진영의 대응을 강하게 성토했다.

“(청와대 발언 나온) 그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 조각도 못할 때다. 북한 문제로 전쟁 나느냐 마느냐 하는, 국가 생존이 걸린 위기였다. 그 시점에 원로라는 이가 ‘백년전쟁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도 그냥 ‘알겠다’고 그칠 것이지 수첩에 적었다. 청와대에서 역사단체장을 부르고, 안전행정부 장관이 국회 나와서 시비를 가리겠다고 하고… 소 잡는 칼로 모기 잡는 격이다.”

최근 한상권 교수가 몸담고 있는 역사정의실쳔연대 등 역사학 단체가 ‘백년전쟁’ 고소를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한 교수는 “고소야 사인 간에 시비를 가리면 될 일이지만, 일련의 흐름은 학문·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판단됐다”며 “(백년전쟁에) 반대한다면 이승만 미화하는 동영상을 만들어서 올리고, 그걸 이쪽에서 반박하면서 발전하는 것이지 역사문제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서는 것은 구시대 잔재”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해방 대신 ‘건국 60년’을 대대적으로 선포하는 등 임기 내내 ‘역사전쟁’을 벌여 학계와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신상 털기, 학자에 대한 비난, 종북 공세 등 최근의 역사 문제 갈등은 이전 정권보다 더 큰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한 교수는 “‘백년전쟁’에 인터뷰한 학자들도 이렇게 이슈가 될 줄 모르고 프로그램 만든다니 응한 것”이라며 “학자들 사진에 엑스자 치고 인터넷에 올렸다는데, 공부만 한 학자들이 얼마나 충격 받았겠나.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토론을 차단하겠다는 것은 유치하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진보운동을 넘어 학계, 연예계 등을 향해 무차별로 진행되는 ‘종북’ 공세 역시 사상과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한 교수는 “백년전쟁 문제로 기자회견할 때 대한변협 회장까지 지내신 박재승 변호사가 ‘전쟁나면 나는 처형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농담으로 알고 웃었는데, 박 변호사는 실제로 잠이 안 온다고 진지하게 말하더라. 4.3과 보도연맹 당시 살았던 이들에게는 예비검속이 실제 느껴지는 문제다. 종북이라는 말은 ‘너는 빨갱이다, 공동체에서 배제돼야 하는 인물이야’라고 낙인찍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래 한곡 부르지 못할 만큼 자신감이 없나”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

덕성여대 사학과 한상권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최근 왜곡·폄훼 논란이 일고 있는 5.18민주화운동도 대화에서 빠지지 않았다. 

한 교수는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하려는 흐름은 반드시 ‘광주’를 부정하고 전두환을 미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며 “그러나 이런 퇴행적 시도는 겉보기에 거칠긴 해도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새로운 근거나 자료도 없이 자극적인 이야기를 자꾸 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어서 그렇다. 유신이 얼마나 자극적이냐. 정당성이 있으면 낮은 목소리로 해도 스며든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성숙해져 퇴행적 주장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한 교수는 “80년대 광주에 대해 ‘빨갱이’ ‘폭도’라고 언론이 얼마나 썼나. 5.18이 민주화운동이 됐으니 그럼 빨갱이가 민주화 시켰나. 얼마나 웃긴가. 이런 걸 부끄럽게 생각하고 ‘옛날에는 외압 때문에 제대로 보도 못했다’라고 사과해야 하는데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역사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에 대해 한 교수는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할 만큼 정권이 자신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논란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노래까지 부르지 않더라도 일어서서 예의 갖추면 뉴스가 되고, 인기를 더 얻지 않겠나”라며 청와대의 ‘정치력 부재’를 비판했다. 

보수세력은 왜 유독 33년 전의 ‘5.18’에 집착하는 것일까. 한 교수에 따르면, 과거사를 바로잡는 데는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상, 정신계승, 재발 방지 등 5단계가 있다. 마지막 5단계는 독일에서 나치를 지지하거나 홀로코소트를 부정하면 처벌받는 예 등이 있다고 한다. 5.18민주화운동은 이중 4단계까지 해결돼 한국현대사 중 가장 높은 수준에 올라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이미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경제민주화가 보편적 상식이 되는 수준까지 왔고, 보수세력도 거절할 수 없게 됐다”며 “이런 거대한 흐름의 씨앗을 광주가 뿌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헌법이념에도 독립운동과 419정신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으로 찾는다”며 “헌법이 인정한 저항정신을 실천한 것이 5.18민주화운동이기에 이를 부정하는 것은 반헌법적 태도”라는 비판도 덧붙였다.

비록 궁극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민주정부 10년을 거쳐 축적된 역사학적 성과를 흔들려는 시도와 이로 인한 혼란에 학자들의 위기감은 크다.

한 교수는 이달 30일 역사 관련 국회 토론회를 계기로 역사학계가 현 사태를 공동으로 대응하는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미 한 달 전에 한 차례 논의가 진행됐다”며 “역사학계로서는 상시적인 공동대응을 한다는 것이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 들어 더 거칠어지고 있는 비합리적인 역사공세에 대해 학계가 걱정이 크다는 것이다.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


덕성여대 사학과 한상권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민중의소리>2013-5-20


 


[기사원문보기] “역사학 논쟁에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구시대 잔재”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