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1. 뉴라이트 성향의 학회인 한국현대사학회의 회장(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과 교과서위원장(이명희, 공주대 교수)이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교학사가 발행하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지난달 10일 국사편찬위원회 역사교과서 검정심의위원회의 검정 본 심사를 통과하였다고 한다. 8월 30일에 최종 합격 여부가 결정되지만, 지금까지 검정 본 심사 통과 후 탈락한 교과서가 없었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이번 한국사 교과서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2. 한국현대사학회의 한국근현대사 왜곡과 교과서 집필 움직임은 그 뿌리가 깊다. 저들은 2005년 한국현대사학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교과서포럼’을 만들었다. ‘교과서포럼’은 창립기념 심포지엄에서부터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몰아세우는 이념공세를 벌였다. 이어 2008년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대안교과서)를 펴냈다. 이 책이 출간되자 ‘조중동’ 수구언론은 이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며 교과서논쟁에 불을 붙였다. 게다가 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와 국방부까지 가세해 교과서 수정을 요구했고, 이명박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에 대해 수정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얼마 전 대법원 판결을 통해 그 부당성이 확인된 이 지시에 대해 저자들이 거부의사를 밝히자, 출판사가 저자 동의도 없이 교과서를 뜯어고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역사교육을 파행으로 이끈 정치적 이념 공세 뒤에 저들이 있었던 것이다.
3. 2011년 5월 20일 ‘교과서포럼’의 핵심 인사들은 한국현대사학회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출범한 지 2개월도 안된 7월 4일에 「2011 역사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한국현대사학회’의 건의」(건의서)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에 올렸다. 건의서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명시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역사교육연구회, 한국근현대사연구회 등 10개 학회와 많은 연구자들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이며,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민주주의를 축소시키면 안 된다”며 반대하였다. 그러나 교과부는 권위 있는 학술단체와 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갓 출범한 신생학회의 주장을 전폭 수용해 8월 9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했다. 한국현대사학회가 ‘자유민주주의’를 고집한 것은 이승만, 박정희가 강력한 반공정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켰다는 논리를 펴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 헌정질서를 짓밟고 독재정치로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복권시키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들 입맛에 맞게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을 고쳐놓고, 이제 와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것이다.
4. 한국현대사학회와 교학사는 현재 검인정 심의 중이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때문에 이들이 작성한 교과서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와 비판 기회조차 차단되어 있다. 그러나 2008년에 출간된 <대안교과서>와 2011년 역사교육과정 개정안 ‘건의서’ 등을 통해 드러난 생각들을 종합해 볼 때 이들이 역사 교과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첫째, 우리 사회가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힘들게 성취한 민주주의를 왜곡, 축소시키고 있다. 저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반공주의일 따름이다. 민주주의를 반공 차원에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독재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반공의 도구로 이용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같이 정치적, 법률적으로 민주주의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실질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제헌헌법은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가 약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고, 실질적·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채택하였다. 이는 제헌헌법이 표방한 민주주의가 독립운동의 전통을 반영한 역사성이 있는 민주주의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둘째, ‘반공’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다보니 <대안교과서>에서는 남북한 역사를 함께 서술하는 방식을 버리고 북한 역사를 보론으로 다루었다. 민족사의 차원에서 남북한 역사를 병렬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버리고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써야 하며, 북한은 비정통적이고 불법적 국가이므로 배제하거나 보론에 넣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족간의 대립 갈등을 조장하는 냉전적인 역사의식으로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인 평화통일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7.4남북공동선언 직후에 마련된 유신헌법에서 평화통일의 책무를 민족의 지상과제로서 헌법상 의무화하였다. 평화통일이 대한민국 통일의 기본원칙인 이상, 민족사적 관점에서 공존과 상생, 호혜와 평등에 입각하여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역사서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친일독재세력을 대한민국 건국세력으로 둔갑시키려는 어처구니없는 수작이다. 저들은 이명박정부 내내 1945년 ‘해방’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시키고, 단죄되어야 마땅했을 친일파를 ‘건국’ 세력으로 부활시키려는 흑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건국절’ 논란을 통해 항일독립투쟁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격하하고, 친일파를 건국 공로자로 둔갑시키는 한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5·16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으로, 박정희를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등, 우리 헌법에 명시된 3·1운동 정신과 4·19혁명 이념마저 부정하는 위험천만의 역사쿠데타를 감행하고 있다.
5.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민주혁명의 저항정신을 국가 정체성으로 선언한다. 친일세력과 독재세력을 배격하는 게 헌법의 기본 이념이자 정신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9차례나 개정되었지만,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다”는 전문 내용이 부정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 근현대사는 항일 독립운동과 반독재 민주화운동 그리고 분단극복 통일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역사의 중심에 놓고 서술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현대사학회의 주장은 기억의 공공화와 역사정의의 정식화를 파괴하는 반민족·반민주·반통일적인 역사관이다.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는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끝>
2013년 6월 7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상임대표: 한상권(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공동대표: 김정훈(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신태섭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양성윤(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직무대행)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정동익(사월혁명회의장)
[논평] ‘뉴라이트 교과서’검인정 통과에 대한 논평 (2013.6.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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