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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뉴라이트-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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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떠나는 두 역사학자 ①]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1>


 

한국 사회에서 현대사는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졌다.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현대사의 진실을 아는 걸 원치 않았다. 또한 두려워했다. 그래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움직임을 힘으로 눌렀다.

그런 탄압을 딛고 진실의 문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적잖은 현대사의 실체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 이들 중 두 사람이 2013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을 떠난다. 서울대 국사학과 동문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와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다. 안 교수는 30년 넘게 한국사를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한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 전문가다. 서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히며, 진보적 역사 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를 오랫동안 이끌었다. 

<프레시안>은 안 교수와 서 교수를 11일과 13일 차례로 만났다. 올해 들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역사 관련 사안들에 대한 견해와 퇴임 이후 계획을 들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각각 2차례씩, 모두 4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아래는 안 교수 인터뷰 앞부분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올해, 역사 문제와 관련해 많은 일이 있었다. 이승만·박정희를 다룬 <백년전쟁> 논란, 한국현대사학회와 역사 교과서 논란, 종합편성채널(종편)들의 5.18 왜곡 방송,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논란, 전두환 추징금 문제까지 굵직한 사안들이 이어졌다.

안병욱 : 그 문제들이 한 축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 후) 초기에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을 때 이승만·박정희 등이 나와서 독재를 했다. 권력자들이 법을 벗어나서 사적으로 폭력을 행했고, 그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공권력의 행태처럼 됐다.

그래서 과거에 거의 모든 사람이 민주화 운동과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해 (윤리적으로) 딴죽을 걸 수 없었던 것이다. 유일하게 있었다고 한다면 반공, 국가보안법, 북한 문제와 관련해 자기들의 입장을 변명하거나 이데올로기적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정도였다. 노동권을 내놓고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사람들이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인정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반독재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1987년엔 독재가 없어지면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 사회처럼 갈 것 같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6월항쟁을 기점으로 형식적·제도적 측면에선 분명히 과거처럼 무자비한, 일종의 조폭 같은 국가의 폭력은 상당 부분 없어졌다. 형식적인 법과 제도에 사회가 점차 적응하고 권력을 쥔 사람도 그 틀 내에서 행동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제도 밖의 폭력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 힘을 가진 사람과 힘없는 사람들의 대립이 구조화된 측면이 있다.

예컨대 1987년 이전엔 독재 정권이 없어지면 언론 자유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다수가 상식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 지금은 언론 자유가 형식적으로는 있는 것 같지만 아주 교묘하게, 아래로부터 철저히 걸러내는 환경이지 않나. 경제적 측면에서도 1 대 99 사회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제도화돼 있는 구조적인 틀 내에서 비민주적이고 차별적인 요소가 확립돼 있다는 말이다. 지난번 대선을 보면, 적어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그 틀에 반발하지 않았다. 여러 통계로 볼 때, 국민의 3분의 1 이상은 그렇게 차별화된 구조를 신념으로, 전적으로 지지하고 그게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구조 속에서 사상적인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들이 아주 무섭게 우리 사회를 대립과 갈등 구조 속으로 끌고 가고 있다.

옛날엔 박정희가 독재자라는 것에 대해 박정희 추종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그 이야기, 틀렸다’고 하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변했다. 가령 1990년대에 한창 인간 복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 한 여론 조사에서 박정희가 ‘복제하고 싶은 사람’ 1위로 꼽혔다. 이에 많은 사람이 요즘 일베에서 5.18 가지고 헛소리하는 것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충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한 거부감 없이, 과거에 대한 오도된 환상 속에서 박정희나 이승만을 지지할 수 있게 됐다.

(1960년) 4.19항쟁의 정점은 군중이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려 파괴한 것이다. 그건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린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역사에서도 독재 종식의 정점은 군중이 독재자가 세운 자기 동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건 역사에서 굉장히 큰 상징성과 의미를 갖고 있다. 이미 당시 국민에 의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분명한 역사적 심판이 내려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걸 몇몇 사람이 너무나 뻔뻔스럽게 뒤집으려 하고 있다. 헌법에 4.19 계승이 명시돼 있음에도 그렇다. 그리고 그 차원을 넘어 교과서에서 그 모든 것을 반전시켜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건 역사에 대한 반역이다.

이런데도 큰 저항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흘러가면서 사람들 의식 속에서 그런 것들이 맹목적으로 상식처럼 확대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적어도 올바른 상식이란 측면, 합리적 판단, 역사에서 무엇이 정의인가 하는 가치관의 측면을 놓고 본다면 1987년 이전보다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구조화·제도화된 비민주라는 토양이 점점 굳어지고, 명확하게 역사적 심판이 내려졌던 것들을 되돌리려는 일각의 흐름이 그와 결합해 바람직하지 않은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러면서 일베 같은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

안병욱 : 그(런 퇴행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일베로 하여금 그렇게까지 하도록 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런 사회의 흐름에 일부 사람들이 눈치 빠르게 편승한 측면이 있다.

가령 10년 전에 5.18과 관련해 그와 같은(종편의 왜곡 방송과 같은) 망발이 가능했겠는가?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야기이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엄청난 사회적 반발을 살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 것이다. 사회가 그런 걸 걸러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한 사회의 일정한 상식과 평가 기준에 맞춰 행동하며 약간 일탈을 하더라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상식이 다른 방향에 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편승해 그런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있다. 또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회가 좀 덤덤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역사 정의에 대해 무뎌진 것이다.







▲ 안병욱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구조화된 비민주, 그 속에서 역사에 대한 반역이 진행되고 있다”

프레시안 : 지난 20년을 놓고 보면, 전두환 일가가 제대로 반성하지도 않고 여전히 잘살고 있다. 또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이승만·박정희 띄우기가 계속됐고, 뉴라이트 성향 단체들이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신자유주의가 퍼지면서 격차 문제도 심각해졌다. 이런 흐름들이 사회의 지형을 바꾸면서 일베가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 것 같다.

안병욱 : 그렇다. 조직적인 연계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어떤 분위기, 생각 같은 것들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관련됐다고 봐야 한다.

그런 분위기와 지형은 단번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반공 체제도 그랬다. 반공이 극단화되는 때는 공산군하고 직접 총 들고 싸울 때 아니겠나. 그런데 놀랍게도 1950년대에 나온 역사책을 보면 분단과 반공에 대한 것이 아직 확고하게 틀을 잡지 못했다. 적어도 역사 교육과 관련된 부분에서 반공 체제가 확립된 때는 1960년대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반공 체제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돌아보면, 6월항쟁을 거치면서 한국이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이 열렸다. 그걸 첫 번째로 뒤집은 것이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이었다. 1960-1980년대에 군사 정권에 편승했던 사람들이 3당 합당을 통해 (기득권을) 연장하면서 기반을 다시 튼튼하게 확보했다. 해방 공간에서 친일파가 이승만의 분단 체제에 편승해 기득권을 온존시킨 것처럼, 그렇게 했다. 그 과정에서 차별과 배제의 지역 갈등도 교묘하게 활용했다. 독재에 기댔던 기득권 세력은 그렇게 3당 합당을 거치면서 중심적인 지배 세력으로서 틀을 다시 형성하고 그에 맞게 모든 부문을 야금야금 정비해갔다.

1990년대 초까지 한국 사회 변화의 축, 역동적인 핵은 학생 운동이었다. 학생 운동은 군사 정권과 싸우는 데는 상당 부분 효율성이 있었지만, 반독재 투쟁이라는 그 틀만으로는 복잡하고 다양한 1990년대 이후의 사회를 이끌어갈 역량을 갖출 수 없었다. 그래서 투쟁력, 폭력성만 부각되고 역동적 변화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결정적으로 1996년 ‘연세대 사태’를 거치면서 학생 운동의 역사적 기능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그 후 사회를 (진보적으로) 선도하는 구심점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기득권 세력은 단단한 핵으로 뭉치면서 힘을 더 키우고 특히 언론까지 연대·연합하면서 그야말로 굉장히 튼튼한 성채와 같은 지배 틀을 형성했다. 보수 언론이나 대기업은 옛날보다 훨씬 더 튼튼하다. 예전엔 박정희나 전두환에게 많이 의존했는데, 지금은 재벌이나 언론이 한국 사회를 조종하고 있지 않나.

그런 구조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해 이 사람들은 몇 십 년의 대계를 기획했다고 생각한다. (X파일 사건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은 학계, 관계, 정계, 언론계를 눈에 보이지 않게 조종한다. 지배층이 된 보수 언론은 혹시라도 사회 어딘가에서 누수가 일어날까 우려해 사전에 단속한다. 걸핏하면 종북이다, 좌파다, 사회 혼란 세력이다 하면서 그 싹을 철저하게 도려내는 데 누구보다 눈치 빠르게,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에 비해 민주 언론의 경우 목소리는 높을지 모르지만 영향력이 매우 떨어진다. 옛날엔 옳은 이야기를 하면 양과 상관없이 질로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때에 따라선 유언비어성이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면 상당한 영향을 줬다. 지하의 유인물 하나가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진실한 이야기이고 거대한 음모를 폭로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메이저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으면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 일베 홈페이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중심축의 가치관 문제가 중요”

프레시안 : 얼마 전 한 아이돌이 ‘민주화’라는 말을 일베 식으로 썼다가 논란이 됐다. 적잖은 10대, 20대가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일베 식 용어를 쓰고 있다는 말도 곳곳에서 들린다. 그렇게 젖어 들어가는 게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안병욱 : 지난해 선거 과정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세대 등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서로 잘 소통되지 않고 있다. 가령 일부 민주 언론들의 이야기가 윗세대로도 전달이 잘 안되고 청소년들한테도 접근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우리가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장벽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떠들어도 그 이야기가 장벽 저편으로 가지 못하는 것 같다.

장벽 저편에선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 그것이 거기서 상식처럼 된다. 때에 따라선 또래 문화, 동료 문화에 편승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작용한다. 이걸 우리 사회의 중심이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담론, 의견, 가치관이 형성되는데 (중심과 그것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치가 이런 부분을 올바로 이끌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억압자들이 과거에 중우 정치를 펴거나, 혹세무민하면서 자신이 초월적인 자연 현상과 소통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사람들을 무지 속에 가둬 맘대로 조종했던 것과 닮은꼴이다. 그것들의 현대판이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담론은 사람들이 결코 올바른 생각, 정의로운 생각을 하는 것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일베의 역사 인식이 논란이 되고 종편들의 5.18 왜곡 방송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역사 교육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안이 역사 교육만으로 풀릴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전두환 추징금, <조선일보>와 뉴라이트의 퇴행적인 ‘역사 전쟁’, 점점 심해지는 격차 같은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일베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을 붙들고 ‘5.18의 진실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의문이다.

안병욱 : 근본적인 부분은 놔두고,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특정한 증상에만 매달리며 우왕좌왕하는 측면이 있는 건 분명 맞다. 지난번 인터뷰(“박근혜 기준은 박정희 명예 회복…역사 전쟁 벌일 것”) 때도 현대사 교육에 대해 물었었는데. 5.18을 예로 들면 30년 넘게 지났다. 40대 미만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면, 직접 겪거나 목격하지 않은 건 시간차가 없다. 다 마찬가지다. 젊은 친구들한테 왜 1980년의광주학살을 잘 모르냐고 이야기하는 건 왜 (1919년) 3.1운동을, (1894년) 갑오농민전쟁을 잘 모르냐고 하는 것과 똑같다. 엊그제 일어난 일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면 ‘신문도 안 보냐’,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이 문제를 역사 교육(차원)으로만 이야기한다고 하면 적절한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 하는 중심축의 가치관 문제가 중요하다. 냉전이 끝나고 이념적인 대립 축으로 갈등하는 사회는 20세기의 유물로 이미 지나갔는데, 우리는 20세기 최악의 부정적인 요소를 그대로 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그런 모순 구조에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까지 접목돼 있다. 한국은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요소보다 부정적인 요소를 확대해, 그걸 마치 자랑스러운 것처럼 여기는 사회다. 그런 틀 속에서 정치권 등은 개인적 이해관계에 공동체적인 것을 종속시켜 뻔뻔하게 견강부회하는 일이 많고, 그게 또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언어의 소통 구조가 기형적으로 왜곡돼 있다. 심각한 문제다.

프레시안 : 가치관 문제를 이야기했다.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과 더불어,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역사 정의를 하나씩 세워가야 일베 같은 극단적인 현상이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으로 들린다.

안병욱 : 그렇다. (선진 사회라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도 스킨헤드, 네오나치 같은 극단적인 친구들이 있다. 엽기적인 살인범도 있다. 어느 사회든 성인처럼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폭력적인 사람도 있다. 인간 사회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럴 거다.

다시 말하건대, 사회의 중심축이 중요하다. 21세기 문명에 맞게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합의할 수 있는 사회 정의, 그것을 향해 의견을 모아간다면 극단적인 사람들을 제어할 수 있다. (그 경우) 그것(극단적인 일부 세력) 때문에 사회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국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극단적인 생각이나 흐름들이 묘하게 중심권과 연결돼 있다. 조직적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통하는 사고방식 속에서 사회를 뒤흔든다는 게 문제다.







▲ TV조선 홈페이지. TV조선은 1980년 5.18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군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해 전남도청을 점령했다는 방송을 내보내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TV조선보도 후 채널 A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TV조선

“극단적인 흐름들이 중심권과 연결돼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프레시안 : 일베, 뉴라이트, <조선일보> 식의 움직임이 얼핏 보면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어져 있다는 말인가.

안병욱 : 그렇다. 그런 몰상식한 생각, 비이성적인 층들이 교묘하게 장벽을 왔다 갔다 하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예컨대 전형적으로 5.18에 대한 일베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사실 그런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나왔다. 최근에 그게 심각한 문제가 된 건, 시청률은 아주 낮지만 어쨌든 중심권에 있는 언론인 종편에서 그걸 보도한 것과 관련 있다. 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다른 나라 같으면 그런 게 어떻게 제도권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방송 전파를 탈 수 있겠나. 독일에서 네오나치를 방송에 출연시켜 터무니없는 주장을 뻔뻔스럽게 할 수 있게 해주겠나? 불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게 현실로 나타났다. 그게 우리 사회의 문제다.

(종편들의 5.18 왜곡 방송은)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방송 사고였다면 또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을 정규 프로그램에 데려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몇 십 년의 대계를 이야기했다. 이명박 정부 때 반대 여론이 거셌는데도 한나라당에서 미디어법을 날치기한 것도 그런 대계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안병욱 : 자기들의 이익과 관련된 구조를 짜기 위해 전력투구한 것이다. 거기에는 추호도 머뭇거리는 것이 없다. 차마 못하는, 절제하는 것도 없다. 이익을 향해 나아갈 때는 아주 저돌적이다. 밀림에서 먹이 사냥을 할 때 결코 양보하지 않는 야만적 무모함이 저들에겐 있다. 대체로 보수 세력은 이익과 관련된 것에 대해선 양보하거나 주저하는 법이 없다.

프레시안 : 5.18 왜곡 방송 후 여당 일각에서 ‘완전 소설이다’, ‘극우 세력이 그런 이야기를 갖고 광주 시민의 자존심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자기들이 종편 탄생의 길을 억지로 열어놓고서는, 거기가 막 나가서 욕먹으니까 살짝 발을 빼는 것 아닌가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안병욱 : 만약 문제가 반대의 경우였다면(극우가 아니라 진보 세력에서 그런 문제가 생겼다면), 그 사람들이 그 정도 반응으로 끝냈겠는가? 온 사회를 발칵 뒤집어 몇 날 며칠이고 마치 난리 난 것처럼 호들갑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헌법 정신을 뒤집어엎는, 다른 말로 하면 국기 문란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해 그 정도로 대응하고 만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잘 드러낸다.

*안병욱 교수 인터뷰 2편이 곧 이어집니다.


<프레시안>201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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