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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후속편 만든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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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후속편 만든다, 꼭!

 

<백년전쟁> 김지영 감독

 

작년 11월 말, 나는 백년전쟁 다큐멘터리 2편을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하나는 일제시기에 독립운동가들과 이승만의 대립을 다룬 <백년전쟁 1부>였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 경제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프레이저 보고서>라는 백년전쟁 특별판 1부 다큐였다.

사실 나는 감독으로서, <프레이저 보고서>가 더 맘에 들었다. 내가 전달한 사실은 굉장히 단순했다. <박정희는 수출을 통해서 한국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전략을 제시한 적이 없다.> 바로 이 사실을 나는 명확한 자료들과 사건기록으로 입증했다.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제시한 것은 미국의 경제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수출증대를 위해 환율을 올리라는 제안까지 했다. 이때 박정희는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미국 전문가들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그 후 한국의 수출이 갑자기 증가하자, 박정희는 적극적으로 수출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박정희는 기업의 미래전략을 제시하는 CEO가 아니라, 호루라기를 부는 응원단장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나는 이 냉혹한 진실을 전달했던 것이다. 그저 그 뿐이다.

그런데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순식간에 관객수가 늘어나, 나중엔 3백만까지 넘어버렸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다큐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또한 시민방송 RTV에서 다큐 2편을 전부 방영해주었다. 물론 나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이때부터 친박정희 세력은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다양한 방어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논리의 한계가 명확했다. 애초 수출주도형 전략과 반대의 길을 갔던 박정희, 그를 변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그들은 처절하고 궁색하게 외쳐댔다.
“미국이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도와줬는데, 왜 한국만 지금 이렇게 발전했냐?”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지금의 발전된 한국을 만든 게, 34년 전에 죽은 박정희의 공이라니? 양심적인 학자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는 계속 무분별하게 외화를 빌려와 대규모 공장들을 지어댔고, 임기 말 결국 나라 경제는 파탄 직전이었다. 일자리를 잃은 여성 노동자들이 울면서 저항하다가 죽기까지 했고, 급기야 마산과 부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낀 부하가 박정희에게 총구를 겨눈 것이다.
그 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뭘까? 일본에서 엄청난 외화를 빌려야 했다. 이게 진실이다. 물론 그 뒤에도 IMF라는 외환위기가 찾아와 나라가 휘청거렸다. 그 위기를 극복한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오늘의 발전된 한국이 박정희 각하의 공 때문이라니? 그럼 김대중과 노무현도 박정희의 분신들이라는 말인가?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궁색한 항변에 대해서, 더 자세한 대답을 백년전쟁 특별판 2부에서 해줄 계획이었다. 박정희 경제신화를 떠받치는 포항제철의 진실, 일본의 역할에 대한 놀라운 진실들, 그리고 박정희 경제의 몰락과정들을 관객들에게 명쾌하게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2월부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 펼쳐졌다. 수구세력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박정희 다큐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곤 수구언론들을 통해서 백년전쟁 1부에서 보여준 이승만에 대한 진실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뉴데일리의 박성현 주필. 그는 다큐에 삽입된 워싱턴포스트 기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기 이름까지 걸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 방송을 보자, 나는 즉시 자료파일을 뒤졌다. 빨리 그의 이름을 고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공격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1918년 하와이 재판정에서 이승만이 독립운동가들을 모함했던 일본군함 이즈모(IZUMO) 사건, 그 역사적 사건마저 부정했다. 건국이념보급회 김효선씨는 그 사건이 실린 ‘신한민보’ 같은 증거자료가 없다며 조작이라고 외쳤다.
그 발언을 듣자 나는 그들이 없다고 주장한 신한민보를 꺼내 들고는, 이 자료들을 담은 대응영상을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들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와 제작팀은 대응영상을 준비했는데, 매일같이 조선일보의 융단폭격과 종편채널들의 파상공격이 이어졌다. 바로 그 시점이었다. 저쪽이 이승만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우리를 고소해버렸다.

5월 초순, 백년전쟁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박 기자회견을 했다. 증거자료들을 보여주며, 법정소송을 거두고 이승만에 대한 역사 논쟁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요즘 나는 연구소 학자들과 함께, 변호인단에게 제공할 추가 자료들까지 준비하고 있다. 저쪽이 원했던 것은 바로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 그리고 이제 곧 나는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백년전쟁을 방영했던 시민방송 RTV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RTV 운영자는 근거자료를 제시하며 항의했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했다면서 황당한 이유까지 대면서 중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백년전쟁이 이승만, 박정희에게 한번도 대통령 칭호를 붙이지 않았다.”

RTV는 2명의 인력만으로 운영되는 작은 방송국이다. 이명박 시기를 거치면서 문을 닫을 만큼 어렵게 됐지만, 시민들의 성원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다. 그런 상황에 우리가 더 운영을 어렵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데 운영자분은 “괜찮습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다시 재심을 청구할 거라고 했다.

인간은 이런 일들을 겪게 되면, 오기어린 결심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백년전쟁 후속편들을 끝까지 제작하고 만다. 그렇게 주먹을 꽉 쥐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끔씩 불안하다.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어 백년전쟁 후속편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미 백년전쟁을 잊어버렸으면 어쩌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우리는 무거운 진실을 담으면서도 재밌는 후속편들을 만들 것이다. 그때 또다시 고소를 당하고 더 큰 일이 벌어져도, 우린 후속편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냥 그게 나와 제작팀이 해야 할 일 같다.

 

<미디어오늘> 201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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