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소 영업현황 보고받고 결혼한 여성에게 위안부 복귀 명령도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일본군위안소 관리자 일기 원본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점령지에서 위안소를 직접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자료가 공개됐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는 8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42년 8월부터 1944년 말까지 미얀마와 싱가포르에 체류하면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위안소에서 종업원으로 일한 조선인이 남긴 일기 원본을 공개했다. 한국사연구소에 따르면 일기 작성자(1905∼1979)는 조선에서 대서업 등을 하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1942년 처남과 함께 동남아로 떠나 1942년 8월20일부터 1944년 말까지 2년 5개월간 체류했다. 1922∼1957년 35년간 적은 그의 일기 가운데 위안소 관련 내용은 1943∼1944년 2년치에 담겨 있다. 작성자는 일기에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과 위안소 운영 실태에 관한 기록을 여러차례 남겼다. 일기를 보면 작성자는 매일 오전 일본군 병참사령부에 위안부 관련 영업 일보를 제출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43년 1월 12일자 일기는 “항공대 소속 위안소의 수입보고서를 연대본부에 제출했다”고 기록했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직접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혼한 뒤 위안부를 그만둔 여성에게 일본군이 복귀 명령을 내려 다시 위안부로 복귀한 기록도 담겨 있다. “이전에 무라야마씨 위안소에 위안부로 있다가 부부생활하러 나간 하루요(春代)와 히로코(弘子)는 이번에 병참의 명령으로 다시 위안부로서 킨센관에 있게 되었다더라.”(1943년 7월29일자)
박한용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이에 대해 “군이 절대적인 인사·명령권을 갖고 위안부에 대한 직접적인 명령과 통제를 한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일기에는 일본 군의관이 직접 위안부를 검사했다는 기록, 위안소의 이동을 일본군이 통제한 기록 등도 적혀 있다. “55사단으로부터 만다레이와 가까운 이에우로 이전하라는 명령이…에 떨어졌다. 위안부 일동은 절대 반대한다고 한다.”(1943년 3월10일), “…는 사령부 명령에 견디지 못하고 위안소를 이에우로 옮기게 되었다”(1943년 3월14일) 또 1944년 4월6일자 일기에서 보이는 ‘4차 위안단’이라는 표현에서는 일본군이 적어도 4차례에 걸쳐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모집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4차 위안단’의 존재는 미군이 1945년 11월 작성한 조사보고서에서 ‘1942년 7월10일에 위안부 703명과 업자 약 90명이 부산항을 출항했다’고 기록한 것과도 일치한다. 박한용 연구교수는 “이 일기는 현지 일본군과 조선총독부, 조선사령부가 조직적으로 위안부 강제동원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라면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는 등 연구에 유용하게 사용될 자료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일기의 소장자인 오채현 타임캡슐박물관 관장은 “10여 년 전 지방의 한 고서점에서 발견한 일기에 군부대·구락부·보건소 등의 단어가 많이 나와 직관적으로 위안부와 관련 있는 자료라 보고 입수해 연구기관에 이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2013-8-8
[기사원문보기] “일본군 조직적으로 위안부 동원·관리”…자료 공개
[관련기사] 노컷뉴스 : 日강점기 ‘위안소 관리자’ 일기 살펴보니…
경향신문 : 일본 정부 ‘위안소 조직적 관리’ 증거 나왔다 |
- 94541378.jpg (44.88 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