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고교 한국사’ 복권 시도
“작위 거절…강압으로 충성 맹세”
최남선 변절도 ‘공과론’ 제기 논란
우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뉴라이트 성향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교학사)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평가받는 <동아일보> 설립자 인촌 김성수를 항일 인사인 것처럼 미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대표적인 친일 문학가인 육당 최남선을 다루면서도 ‘잘한 점이 있다’는 ‘공과론’을 들고나왔다. 이는 역사학계는 물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및 법원의 판단과도 어긋나는 것으로,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이 인다.
1일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검정심사 최종본’을 보면, 해당 교과서는 해방 직전 광복 운동의 흐름을 다루는 단원에서 여느 교과서와는 달리 ‘김성수의 광복 직전 동향’이라는 제목의 별도 꼭지를 실었다. 교과서는 “1940년 8월 일제가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시키자, 사주인 김성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광복 때까지 은거하였다. 일제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절하였다”며 김성수를 항일 인사처럼 묘사했다. 김성수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1944년 7월에는 강압에 의해 일본 총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정도로, 이마저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교과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 민중의 일본 ‘대동아전쟁’ 참전을 선동한 김성수의 기고글도 그가 쓰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물타기에 나섰다. 교과서는 “1943년 총독부 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매일신보 사설란에 김성수 명의로 징병에 찬성하는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 조장하라’는 글이 실렸다. 물론 이 글은 매일신보의 김병규 기자가 명의를 도용하여 쓴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썼다.
교과서의 이런 언급은 그동안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국가적·사회적 노력을 통해 규명된 사실관계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법적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김성수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지목했다. 이에 김성수의 후손들이 진상규명위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2011년 10월 진상규명위가 제시한 사실관계를 대부분 인정했다.
우선, 김성수의 친일 행위는 언론 기고만이 아니라 일제 고위직 역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뤄졌다. 김성수는 1938년부터 1944년까지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발기인·이사·참사·평의원 등으로 활동했다. 이 부분에 대해 법원은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으로 각 연맹에 이름만 등재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활동 내역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1943년 ‘대의에 죽을 때 황민됨의 책무는 크다’(<매일신보>) 등 법원이 인정한 김성수의 전쟁 참여 독려 기고와 강연만 해도 22건에 이른다. 법원은 “학병·지원병 또는 징병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매일신보 대필설을 두고도 “인촌은 김병규에게 대필을 허락하고, 직접 글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인촌의 글로 봄이 상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사건은 서울고법에 계류중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여운형처럼 일제 말기에도 지조를 꺾지 않고 광복을 준비한 인물들을 다뤄야 할 부분에서 인촌을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교과서는 또 최남선을 독립운동가 신채호와 비교하라는 ‘수행 평가’ 활동을 제시하며, “최남선은 공(功)과 과(過)가 모두 있는데, 공과 과를 함께 논한다면 어느 쪽이 클까? 주요 공적에 대해서 현재 우리나라의 ‘상훈법’에 비추어 포상을 한다면 어떤 상을 수여하면 적절할까?”라는 문제를 냈다. 이는 금성출판사의 ‘고교 교과서 검정 최종본’이 최남선을 “친일의 길을 걸은 변절자”로 지목하며 비판적으로 서술한 것과 대조적이다.
문제의 단원은 뉴라이트 성향인 한국현대사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가 대표 집필했다. 박한용 실장은 “최남선에게 적용한 공과론은 수구 세력이 일제에 협력한 박정희와 백선엽 등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개발한 논리”라고 비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