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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교과서, 이념 재편 노린 ‘정치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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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교과서, 이념 재편 노린 ‘정치 프로젝트’


우익 학계와 정부·여당의 긴밀 협조체계…’잠재유권자 확보책’ ‘역사 쿠데타’ 지적



우익 역사학자의 우편향 논란 교과서가 등장하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역사전쟁’을 선포했다. 시기상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 이번 근현대사 이념논쟁에서는 유례없이 긴밀한 여권의 협조체계가 가동되는 양상이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의 이념성향을 재편하려는 ‘정치 프로젝트’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무성 의원이 조직한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은 11일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의 초청 강연을 개최했다. 이 교수는 ‘일본 극우의 후쇼사 교과서보다 더 나쁜 역사왜곡’이라고 비판받는 교학사 ‘고교한국사’의 집필자다.

새누리당의 적극적 옹호

이날 행사는 우익 사학계와 새누리당의 끈끈한 연대감을 확인시켰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주관적 판단에 따르면, 연예계 70% 등 문화계 전반을 좌파가 장악했다”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나라 성립 자체를 부정했다”는 등 학술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이 교수의 강연을 무비판적으로 듣기만 했다.

일주일 전 첫 행사 때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선포한 김무성 의원은 “교과서에 많은 오류와 왜곡이 제기됐지만, 학생들이 배우기 전 실수를 조정할 기회가 됐기 때문에 이 교과서는 더 알찬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옹호했다.

또 “당이 이 교수 같은 분에게 집중 교육을 받아 싸움에 나서야 한다”(박인숙 의원), “정규 교육도 문제지만 노량진 학원가 강사들이 다 좌파라는 것도 문제다”(이노근 의원), “바른 역사인식 통해서 우리나라를 바른 길로 이끌어야 된다는 뜻에 공감한다”(박대동 의원) 등 공감과 성원이 잇따랐다.

정부도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취소는 불가하다며 보조를 맞추고 나섰다. 우익 사학계와 정부의 협조체계는 지난달 30일 교학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심의를 최종 통과할 때까지 진행돼온 사건들에서 드러난다.

2008년 8월 뉴라이트가 금성출판사를 좌편향이라고 공격하자, 같은 해 12월 교육부는 금성출판사 등 6개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문제가 제기된 206곳을 수정했다. 2011년에는 친일파 청산 관련 기술이 축소된 중학교 역사교과서, 독재를 합리화한 내용의 고교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각각 발표했는데 이는 뉴라이트가 강조해온 내용이다.

특히 역사학계에 따르면 이 교수는 중·고교 교과서 집필기준 마련 때 한국현대사학회 교과서위원장 자격으로 참여했다. 이를 두고 뉴라이트와 이명박 정부의 짬짜미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김무성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왜 하필 지금인가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18대 국회 때나 이전에는 근현대사를 다루는 의원 모임은 없었다”, “근현대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기피 대상이었다”고 전한다. 올해 상반기 출범했던 새누리당 역사특위마저 “이념논쟁을 촉발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근현대사를 논의 대상에서 배제했다. 이런 측면에서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은 기존의 금기를 깬 셈이다.

금기 파괴가 가능했던 배경을 놓고는 정권 재창출에 따른 자신감의 발로라거나, 박정희 정권과 분리되기 힘든 현 정권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자신감론’에 따르면 같은 보수 정권이었던 이명박 정권은 쇠고기 촛불시위나 친이·친박 갈등 등 안팎의 역풍으로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역사논쟁까지 벌일 여유가 없었다. 반면 박근혜 정권은 상대적으로 기반이 탄탄하다.

아울러 지난 대선에서 ‘총동원전’에 나선 민주·진보 계열 정치세력을 108만표 차이로 이겨냈다는 점이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60%대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자신감의 요인이 된다는 해석이다.

‘특수성론’은 전·현직 대통령의 캐릭터 차이가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실용’을 내세운 비즈니스맨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가정 환경상 애초부터 정치 사안과 밀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정권교체 이전 대대적인 ‘과거사 정리 작업’에 대한 반감이 최근 상황에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박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우리는 자꾸 과거로만 가는 것 같다”,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역사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과거사가 될 것”이라는 등 반발했다. 그러다 정권교체 뒤 2008년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 때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적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출간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반긴 적이 있다.

한 당내 인사는 “물론 김무성 의원도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지만, 근현대사 모임에 모인 130명의 의원들이 모두 김무성 한 사람만 보고 갔겠느냐. 청와대의 기류를 파악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역사 쿠데타 노린 정치프로젝트

야권과 역사단체는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을 새누리당 정권 차원의 역사 쿠데타로 인식한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CBS와의 통화에서 “정부·여당이 진행하고 있는 것들은 결국 교과서를 정치도구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만들려는 역사 쿠데타”라며 “지금까지의 모든 정치적 과정을 보면, 5년 뒤 유권자를 확보하기 위해 ‘촛불소녀’를 ‘수꼴(수구꼴통)소녀’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 아니냐”고 비판했다.

전날 민주당의 긴급 간담회에 참석한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도 “우리 헌정 체제를 제대로 된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를 만든 것은 이승만·박정희 독재가 아니라 독재에 저항한 국민이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로는 이렇게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새누리당은 이명희 교수의 폭력적 역사인식과 왜곡 주장에 찬성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히 밝히라”며 “역사전쟁이란 허황된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분열과 파괴의 길로 몰고 가려는 김무성 의원의 역사왜곡 프로젝트도 즉각 중지하라”고 논평했다.


 


<노컷뉴스>20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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