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원로에게 듣는다 – 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883

ㆍ“평화주의 가르치는 게 역사 교육… 그렇지 못한 역사책은 도태 마땅”
ㆍ“진보 진영, 힘 키우고 희망 얻으려면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야”

사회가 혼란스럽고 갈 길이 막막하게 느껴지면 원로의 충고가 그리워진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 역사학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창간 67주년을 맞이한 경향신문은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들어보기 위해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80)를 찾았다.

강 교수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국사학자다. 조선 후기 역사 발전의 맹아와 해방 이후 분단시대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물론 우리 근대사와 현대사에 대한 대중적 개설서 집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더불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친일 청산과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한 실천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강 교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달 26일 그가 머무르고 있는 강원 양양 하조대를 찾았다. 강 교수는 과거에 안주하려는 세력과 현실을 타개하려는 세력 간 대립의 역사가 우리 현대사를 이뤄왔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의 남북관계를 해소하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남북 간 적대의식을 줄이고 민족통일, 국토통일, 국가통일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밟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하조대 해수욕장에서 가까운 바닷가 한 찻집에서 이뤄졌다. 푸른 동해를 바라보면서 강 교수는 지난 역사와 현실 정치, 교과서 논란과 남북관계, 그리고 후배 역사학자들에게 주는 충고 등을 차분하고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경향신문에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을 연재하는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인터뷰를 맡았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26일 “남북관계 개선은 당면한 적대의식을 줄이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면서 북한과 접촉해본 사람들이 정부에 들어가 실무를 담당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양 | 김기남 기자


 

▲ 국가가 국사 편찬 주도… 부끄럽고 있을 수 없는 일
좌·우로 사람 나누기보다 현실 안주·타파로 구분을


김호기 교수(이하 김호기) = 지난해 12월 대선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진보와 보수 간 대립이 팽팽하다. 이제 한국 사회의 갈등 현상은 일시적이라기보다 구조화된 듯하다. 최근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강만길 교수(이하 강만길) = 한국은 30년간의 군사정부를 거친 끝에 민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그 민주화의 동력이 강하지 못했다. 민주화 시대 첫 민간정부였던 김영삼 정부는 군사정부를 뒤엎고 들어선 게 아니라 구(舊) 세력과 손을 잡은 합당이란 과정을 통해 세워졌고, 그 다음 들어선 김대중 정부 역시 ‘DJP 연합’에 의해 이뤄졌다. 의회에는 여전히 구 정권 세력이 절반 넘게 남아 있었다. 노무현 탄핵 이후 비로소 의회에서 민주세력이 과반을 차지했다. 하지만 동력이 약하다보니 결국 다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역사란 것이 언제나 직선으로 가지는 않는다. 지그재그로 갈 때도 있고, 꽉 막혀 머물 때도 있는 법이다.

김호기 = 역사를 돌아볼 때 최근 대립과 갈등이 유례없이 격렬한 듯하다. 과거에도 이런 역사적 경험이 있었나.

강만길 = 현재의 대립과 갈등은 과거 역사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조선말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한제국이 공화주의 정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입헌군주제 정도로는 발전했어야 역사가 진전할 수 있었는데 결국 전제군주제인 대한제국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를 맞이하게 됐다. 당시 우리는 중국 신해혁명은 고사하고 일본 메이지 유신 같은 것도 경험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 독립운동 등을 통해 일제강점을 청산하려는 사람들과 일제강점에 기대어 안주하려는 사람들의 대립이 시작됐고, 해방 이후에는 평화통일세력과 분단 상황에 안주하려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근대 이후 여러 역사적 상황 속에서 늘 안주하려는 세력과 현실을 타개하려는 세력 사이의 대립은 반복돼왔다. 현재의 상황도 이런 역사적 맥락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김호기 = 불법 대선개입, 북방한계선(NLL) 관련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등 최근 뜨거운 이슈의 중심에는 항상 국가정보원이 있다. 노무현 정권 때 권력기관을 제자리로 돌리려 애를 썼는데도, 민주화 30년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권력기관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부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강만길 =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만들어진 것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였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찰에서 담당했지 그런 형태의 권력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앙정보부는 이후 전두환 정권 시절에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뀌었고, 현재의 국정원으로 이어졌다. 왜 같은 기관의 이름이 두 번이나 바뀌었겠나. 문제가 있으니 바뀐 것 아니겠나. 이름이 두 번이나 바뀔 만큼 문제가 있는 기관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현상은 후세 사가들의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이름을 바꾼 만큼 성격과 기능도 달라져야 하는데, 안타까운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김호기 = 최근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도 그랬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일단 북한, 분단과 관련된 이슈가 불거지면 다른 모든 현안들을 일거에 잠재우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분단 문제는 그만큼 다른 모든 이슈를 압도하는 것 같다. 일찍이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란 책을 통해 분단이 가진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선구적으로 강조한 바 있는데, 도대체 분단의 어떤 측면이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일까.

강만길 = 한반도는 실제 남북 분단으로 인해 전쟁을 겪은 지역이다. 분단된 상태로 있는 한반도는 언제나 ‘극동의 화약고’, 전쟁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서로를 ‘동족’으로 인식해야 하는데, 늘 양쪽이 각자의 정치적 계산으로 상대방을 적대시해야만 이익이 돌아오는 줄 아는 것이 문제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라도 전쟁을 통한 통일, 즉 전쟁통일이 이뤄질 수 없는 지역이다. 6·25가 이를 증명하지 않았는가. 그 많은 희생을 겪고도 어느 한쪽으로 통일이 이뤄지지 않았다. 독일이 흡수통일에 성공하니 그 다음에는 흡수통일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흡수통일은 한쪽의 체제가 다른 쪽에 적용되어 지배한다는 점에서 전쟁통일과 마찬가지다. 전쟁통일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흡수통일 역시 이뤄질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평화통일 논의가 정착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평화통일의 방법론상에서는 남과 북 사이에 입장 차이가 있는데, 북한은 1국가 2정부 2체제의 연방제 안을 내놨고, 남한은 2국가 2정부 2체제 연합제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가를 당장 하나로 하느냐, 당분간 둘로 하느냐의 차이일 뿐,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로 이뤄진 두 개의 정부를 상당 기간 과도기적으로 유지하자는 점은 남과 북이 이미 합의한 부분이다. 그래서 6·15 공동선언에서도 당장 하나의 국가로 합치는 것은 어렵더라도, 외교적으로 협력하고 군사적으로도 서로 정보를 알리고 훈련을 참관하자고 뜻을 모았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민족통일은 6·15선언에서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개성공단이 만들어지고 육로관광이 열리지 않았나. 사람들이 서로 내왕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국토가 통일되어가고 있다는 의미고, 곧 휴전선이 군사대결선이 아니라 단순 경계선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민족이 통일되고, 국토가 통일되고, 하나 남은 게 국가 통일인데,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를 완전히 단절시켰다는 데 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세계가 모두 평화주의를 지향하고 있는데 한반도만 비평화 지역으로 남아선 안된다. 민족 구성원이 북한을 계속 ‘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족’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김호기 = 연평도 포격 이후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크게 악화됐다. 민간인에게 직접 포격을 가한 것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화해·협력이 불가피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상대가 반민주적 체제라는 점도 국민들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겨준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국민 평가는 꽤 높은 편인데, 앞으로 대북정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강만길 = 나는 남한 사람치고는 북한을 꽤 많이 다녀온 편이다. 가서 보면 북한은 남한과 많이 다르고 우리 시각에서 보면 딱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간섭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북한은 역시 적대할 수밖에 없는,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세력’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60년 넘게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왔는데 그런 차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아니냐, 결국 부드럽게 양쪽을 동일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면한 적대의식부터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면 남한 사람이 북에 많이 가보고 북한 사람도 남에 많이 오는 등 서로 교류를 해야 한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도 북한학을 공부해서 책을 통해 북한을 아는 사람보다는 북한과 직접 접촉해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들어가서 실무를 담당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평양을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에 한번도 가본 경험이 없는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까란 희망이 있다. 물론 한번 다녀왔다고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김호기 = 최근 우편향된 교학사 교과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뉴라이트 역사인식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등장한 것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교과서에까지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은 <고쳐 쓴 한국 근대사> 등의 개설서를 쓴 적도 있는데, 지금의 교과서 논란은 무엇이 문제인가.

강만길 =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민족 분단시대를 올바로 알고 가르쳐야만 앞으로의 한반도 평화 문제도 올바로 풀어나갈 수 있다. 문제는 일제강점기 서술이 수치 중심의 경제적 관점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의 목적에 의해 철도 100㎞를 깔았는데, 우리 힘으로 깔았을 경우 50㎞밖에 안된다고 하자. 경제적 수치 중시 관점에선 100㎞가 더 중요할지 몰라도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놓은 50㎞가 더 중요하다. 일제강점기 연구를 너무 경제학에 맡겨 놓다보니 국사학 쪽이 거의 손을 못대다시피 했다. 역사적 사실은 역사적 주체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일본에서 대동아전쟁 긍정론이 나오고 식민지 근대화론이 등장했을 때 거기에 대항해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를 썼는데, 얼마 지나니 우리 학계에서도 식민지 근대화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누구를 탓하기 전에 역사학 쪽에서 근현대 경제사 연구에 조금 소홀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6일 경향신문 창간 기념 인터뷰에 앞서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함께 강 교수가 머무르고 있는 강원 양양 바닷가의 소나무숲을 거닐고 있다. 양양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6·15 공동선언에서부터 민족통일 시작됐다고 봐
북한 포함 ‘아세안+4’ 돼야 공동체 형성, 통일 쉬워져


김호기 =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인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문제의 핵심은 일제시대 사회변동이 ‘수탈’을 위한 것이냐, ‘발전’을 위한 것이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주장까지 등장하게 된 것일까.

강만길 = 식민지 국민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식민지배란 있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강점에 안주하고 협력한 세력을 보수파라 한다면 일제에 저항한 사람은 진보파였다. 그런데 지금은 진보를 무조건 ‘좌’로만 몰아가는 시대가 됐다. 해방 후 남북분단을 야기한 사람들 중 상당한 세력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협력했거나 안주했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지금까지 보수세력과 연관돼 내려왔다고 볼 수 있는 면도 있다. 이것은 내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을 했을 때의 자료를 보고 하는 이야기다. 사람들을 좌와 우로 나누기보다는 반역사적 현실에 안주하려는 세력과 그 현실을 타파하려는 세력으로 구분해 이해해야 한다. 어쨌든 역사 교육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시대를 전진시키고 평화주의를 정착시키려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위배되는 역사책은 반드시 도태돼야 한다.

김호기 = 최근 몇 년을 돌아보면 역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 지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졸속 개관, 국가의 교과서 검인정 통제 강화 움직임 등이 계속 이어져왔다. 정권 차원에서 ‘역사 및 이념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역사전쟁에서는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권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보수세력에 의해 주도되는 역사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강만길 = 해방 이후 일제에 협력한 보수세력들이 도태될 뻔했지만, 한반도가 분단되고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6·25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오히려 세력을 확장했다. 그런데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당히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것 같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 정리 움직임에 대한 반동으로 역사적 우경화가 노골화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그리고 박근혜 정부 이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는가에 따라 역사전쟁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나는 국사 교과서를 국사편찬위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도 국사편찬위에서 근무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가 국사를 편찬한다는 건 대단히 부끄럽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왕조시대도 아닌데 어떻게 국가가 국사를 편찬하나.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조선사편수회’가 해방 이후 ‘국사관’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의 ‘국사편찬위원회’가 됐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국가가 국가주의적 관점에 따라 국사 교과서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사료만 편찬해서 학자들에게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김호기 = 최근 ‘진보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진보가 새로운 리더십이나 정책을 보여주지 못했고, 야권연대라는 연합정치 방법에만 매달린다는 비판도 있다. 한평생 진보를 위해 살아오신 선생님은 최근의 위기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강만길 = 진보진영은 ‘분열’이라는 좋지 않은 유산을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진보진영이 성공하기 어렵다. 분단 상황에서 진보진영은 보수보다 여러가지 조건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강점을 지닌 부분이 ‘이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론투쟁에만 몰두하다보면 분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이론이 강한 것은 좋은데건설적으로 가야지, 분열 요인이 돼선 안된다는 것이다. 또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더 많이 뒷받침돼야 할 것 같다.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면 실질적인 방법론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나쁘게 말하면 너무 겉으로만 과시하려는 상황이다.

김호기 = 정치는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진보진영에는 김대중·노무현이라는 걸출한 리더가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같은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노 전 대통령도 논란은 많았지만 권력기관의 민주화나 다양한 사회적 인권 제고를 위해 노력했고 ‘서민적 대통령’으로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의 진보진영에 대한 아쉬움은 이런 두 대통령 같은 새로운 리더십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강만길 = 통일을 민족통일·국토통일·국가통일로 나눠서 봤을 때, 나는 6·15 공동선언에서부터 민족통일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문을 열었던 것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민주정부가 들어섰다면 지금쯤 북한에는 개성공단 외에 해주공단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남과 북을 오가고 통일에 더욱 근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박근혜 정부에 조금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등 강경책으로 돌아서는 것은 남한 언론 탓이 크다. 언론이 “북한은 남북관계가 나빠져도 외화벌이 때문에 개성공단만큼은 안 닫을 거다”라고 보도하자 북한은 개성공단을 폐쇄해 버렸다. 북한은 이익과 상관없이 자존심을 건드리면 강경책으로 돌아선다. 이를 남한 언론들이 부추긴 셈이다. 청와대에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 진보진영은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 방향을 바꾸도록 밖에서라도 노력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것이 진보진영의 힘을 키우는 길이다. 그래야만 다음에 또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김호기 = 통일은 선생님의 최종적인 학문 목표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명박 정부 이후 통일 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옅어진 것 같다. 우리의 민족사적 과제인 통일로 가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만길 = 서독과 동독의 통일이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연합(EU)의 발전 과정과 연관이 있다. 독일의 통일을 제일 경계한 나라는 프랑스였다. 그런데 프랑스가 독일의 통일을 방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EU 성립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한반도가 평화롭게 통일되려면 EU처럼 동아시아 공동체가 형성돼야 한다. 지금 아세안이 잘하고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아세안+3(한·중·일)을 확장해서 북한까지 포함한 아세안+4로 만들어야 한다. 사실 북한이 포함되는 게 더 자연스럽다. 북한이 있어야 아세안 국가와 만주, 한반도를 연결하는 육로를 놓을 수가 있다. 남북이 모두 포함된 동아시아 공동체 속에서라야 주변국에 위협이 안되기 때문에 통일이 더 쉽게 이뤄질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중립국을 유지하면서 EU에도 들어가고 유엔에도 가입했다. 우리도 오스트리아와 같은 방법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김호기 = 선생님은 학문과 실천에서 모두 귀감될 만한 역사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오셨다. 후배 역사학자들에게 학문에 임하는 자세나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강만길 = 우리 국사학의 폐단 중 하나가 현실성과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제강점기에는 현실성·대중성 있는 글을 쓰면 잡혀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신채호나 박은식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역사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최근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는데 국사의 현실성과 대중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해줬으면 좋겠다. 교수 같은 역사 전문가들이 쓴 글들은 전부 논문식이라서 일반인들이 읽을 수가 없다. 역사의 대중화가 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김호기 = 마지막으로 한국 언론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함께 경향신문이 나아갈 길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강만길 = 외국 언론을 보면 50~60대까지도 현장에서 뛰는 기자들이 많다. 그들 스스로가 전문가가 된다. 또 대단히 대중성 있는 역사 서적이나 시사 서적을 많이 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40~50대만 되면 대부분 현장을 떠나버리니 언론인들이 쓰는 대중성 있는 전문서적이 잘 안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언론계도 외국 언론처럼 60대까지 현장에서 뛰는 전문기자가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언론 지형에서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의 힘이 너무 큰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언론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작다. 나이 많은 사람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보수화돼 가고 있는데 언론 종사자들이 그 이유를 찾아 연구해야 한다. 균형을 맞춰야 한다.

김호기 = 프랑스나 영국 등과 같은 나라에선 진보 언론의 목소리가 강하다. 기업을 포함한 경제 영역은 보수의 목소리가 크지만, 언론·지식사회로 대표되는 학계는 진보의 목소리가 강해서 서로 균형이 맞춰진다. 우리 사회는 냉전분단 체제를 거치다보니 모든 영역에서 보수화가 너무 강해진 게 아닌가 싶다.


강만길 = 맞다. 그런 측면에서 경향신문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흐름을 보면 독자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고, 사설도 상당히 명쾌하다. 경향신문은 특히 역사가 있다. 자유당 시절에는 폐간까지 당했다가 다시 살아나기도 했고, 장면 정부 때 큰 역할을 했다. 사원들이 직접 주주가 돼서 운영하다보니 어려움은 있겠지만, 앞으로 이런 진보적 신문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인터뷰 | 김호기 연세대 교수>


<경향신문>2013-10-8


[기사원문보기] [창간 67주년 특집]원로에게 듣는다 – 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