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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보수 진영의 10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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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교학사 교과서’ 어떻게 태어났나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머리말에서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고 세계와 더불어 소통하는 것을 귀중한 덕목으로 다루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를 이해”하며 “한 국가의 폐쇄성은 그 국가를 빈곤과 파멸로 몰고 간다는 생생한 경험을 잃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가운데 머리말에서 사실상 북한을 언급하며 정치적 입장을 강조한 것은 교학사 교과서가 유일하다. 


교학사 교과서는 10년에 걸친 보수 진영의 기획 상품이다. 기획의 뿌리에는 보수 진영의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 개편으로 2003년 한국 근·현대사 교과목이 탄생한 직후부터 언론과 정치권 등 보수 진영에서는 기존 교과서가 “좌편향 입장”이라며 비판을 가했다. 일제강점기와 미 군정 시기 사회주의 세력·좌익계의 활동도 상세히 소개하고,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으로 서술했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이 이듬해인 2004년 국정감사에서 채택률이 가장 높았던(54.4%) 금성출판사의 교과서가 “친북·반미·반재벌 관점에서 서술됐다”고 주장했던 일 등이 대표적이다. 


‘역사관에 대한 불만’이 ‘교과서 개정 운동’으로 넘어간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보수 진영의 위기감은 정점에 달했다. 17대 총선으로 여대야소 상황을 맞은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8·15 경축사에서 ‘과거사 청산’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모금운동이 합법화되고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듬해 ‘뉴라이트 운동’을 표방하며 출범한 단체 ‘자유주의 연대’가 ‘과거청산보다 미래지향’을 보수의 새 이념과제로 제시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자유주의 연대’는 창립 선언문에서 “노무현 정권은 자학사관을 퍼뜨리며 지배세력 교체와 기존 질서 해체를 위한 ‘과거와의 전쟁’에 자신의 명운을 걸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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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사 교과목 생기자 “기존 것 좌편향 ” 비판


교과서 개정운동까지 추진


‘과거청산보다 미래 지향’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 


‘교과서 개정’은 자연스럽게 ‘뉴라이트 운동’의 핵심 과제로 지목됐다. ‘자유주의 연대’ 출범 3개월 만인 2005년 1월 ‘교과서포럼’이 창립됐다. 박효종·이영훈 서울대 교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기존 역사학계가 한국 근·현대사를 “조선 후기 농민층이 분화하고 상공업이 발달하는 등 자율적 근대화의 조짐이 싹텄으나(자본주의 맹아론) 일제에 의해 좌절됐으며, 해방 후에는 통일정부 수립에 실패하고 분단의 비극을 겪었다(분단체제론). 뒤이어 들어선 권위주의 정권은 친일잔재 세력이 주축을 이뤄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인권유린과 빈부격차 등을 발생시켰다(친일청산론)”고 파악한 것으로 보고,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로 간주하는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했다. 교학사 교과서가 머리말에서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 등 ‘대한민국’을 강조하는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이다.  


교과서 개정을 위한 학계의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2006년 2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공업화 정책으로 한반도의 국내총생산(GDP)은 상승했으며, 이 시기 이식된 근대적 제도와 문물이 해방 이후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다(식민지근대화론)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해방 이후 국제정세상 통일국가 건설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세워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는 일을 막은’ 이승만을 탁월한 현실주의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과거사 청산’의 당위를 무너뜨리고 ‘보수의 역사인식’ 내용을 제공한 것이다. 


교과서 개정 움직임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본격화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보수단체의 요구안을 받아들여 기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 작업을 요구했다.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정식 교과서는 아니지만 교과서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책들은 “20세기 역사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의 대결에서 결국 자유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과정”이라며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성공한 대한민국의 역사는 희망과 긍정의 역사”라고 기술해 ‘뉴라이트 사관’을 완성했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사회사·생활사 부분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4·3 사건을 좌익무장세력에 의한 ‘반란’으로 규정하는 등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지 못했다”고 기술했다.  


보수 사관을 담은 교과서를 집필하는 일은 교과서포럼이 아닌 한국현대사학회가 주축이 됐다.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이명희(공주대) 교수는 각각 이 학회의 전·현직 회장이다. 이들은 <대안교과서>에 ‘좌익의 반란’으로 기술한 제주 4·3사건을 ‘좌익의 방해’로 규정했다. 민주화 운동은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으로 서술했다. ‘보수 역사교과서 만들기 운동’의 최종적 결과물인 교학사 교과서는 앞서 출간된 뉴라이트 역사책들보다 더욱 냉전적인 내용을 담고 탄생했다.


<경향신문>201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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