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이 된 조선청년들 죽기전에 명예회복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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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거주 한국인 B·C급 전범 피해자 모임인 ‘동진회’의 이학래 회장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1951년 촬영 아우트램 형무소 구금 전범 사진 앞에 서 있다. 사진 속에 당시 이 회장의 모습(맨 뒷줄 오른쪽 둘째)이 보인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B·C급 전범 피해자모임 이학래씨
일본군 소속 포로감시원 사역
종전뒤 148명 전범자로 분류
23명 처형되고 나머진 옥살이
“살아남은 피해자 이제 6명뿐
일 사죄와 배상금 받게 도움을”
“죽기 전에 꼭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명예도 회복시켜 줘야 합니다. 이건 민족의 존엄에 관련된 문젭니다. 친구들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재일동포 이학래(88)씨.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역사박물관에 설치된 ‘전범이 된 조선청년들-한국인 포로감시원들의 기록’ 전시장에서 만난 이씨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내가 제일 젊어요. 원래 동진회 회원이 70명 정도 됐는데, 이젠 6명 남았습니다. 모두 93살, 97살 그래요. 그 사람들은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일제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연합국에 의해 ‘비·시급(B·C급) 전쟁범죄자’로 규정돼 처벌받은 사람들이다. 도조 히데키처럼 에이(A)급 전범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이씨가 회장으로 있는 ‘동진(同進)회’는 ‘함께 간다’는 취지로 일본 도쿄에서 택시회사를 함께 운영하며 만든 조선인 비시급 전범자들 모임이다.
전남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에 살았던 이씨는 18살 때 돈 많이 벌게 해 준다는 ‘포로감시원’ 모집 공고에 넘어가 선발된 3000여 조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후 반강제로 끌려가 동남아 타이의 일본군 철도공사장에서 강제노역을 하다 일본군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말단 관리자가 된 그는 일제의 패전과 함께 졸지에 비시급 전범자가 됐다. “그렇게 해서 일제 패전 뒤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사역당하던 조선인 148명이 전범자가 됐고 그중에 23명이나 처형당했습니다. 수용소 현장의 일본인 장교들은 오히려 살아남았는데, 그들은 사역당한 조선인들의 억울한 처지를 끝까지 외면했습니다.” 연합군 포로들은 일본군 책임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직접 상대한 말단 조선인들을 지목했고, 연합군은 제대로 된 확인 절차도 없이 서둘러 그들을 처벌했다. 이씨는 처음에 무죄로 석방돼 귀국하던 중 다시 소환돼 똑같은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뒤 20년으로 감형돼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 최종 구금됐다.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면서 재일 한국인과 대만인은 자동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했습니다. 조약 11조는 잔형 집행을 일본 국민만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당연히 석방될 것으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일본 정부는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대법원은 ‘형이 부과된 때 일본인이었으니 잔형 집행은 아무 문제 없다’며 석방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래 놓고 1956년에야 가석방된 그들에게 일본 국적 피해자들에겐 다 주었던 위로금이니 은급이니 하는 것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1991년에 도쿄지법에 사죄와 함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자, 이번에는 정반대 논리를 들이댔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했기 때문에 줄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는 “한일회담으로 일괄 타결됐다”며 외면했다. 한국 정부도 관심이 없었다. 8년간의 소송 끝에 도쿄 고법은 “법률이 없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합당한 보상 입법이 강력히 요망된다.” 그랬지만 다시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일본인 군인·군속 및 전범자들에겐 연금, 위로금, 유족연금 등을 지급하고 대만인들에게도 위로금 200만엔씩을 지급했으나 한국 국적자들에겐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한일회담 일괄타결을 근거로 내세웠지만, 2005년 한국 정부의 한일회담 회의록 공개로 당시 비시급 전범이 회담의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 정부는 2006년 일제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고 한국 국적 비시급 전범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사망자에 한해 위로금을 지급했다.
한국민족문제연구소와 동진회, 한국동진회, 일본 시민단체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이 함께 마련한 이번 ‘제3회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공동기획 특별전’은 비시급 전범의 존재를 한국에 알리는 사실상의 첫 전시회로, 12월8일까지 열린다. 주최 쪽은 한국 사회에 이들의 존재를 알리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에 한국 정부와 한국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다.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의 사무국담당자 아리미쓰 겐(62)은 “한일관계가 어려운데 이대로 가선 안 된다. 양국이 대화를 통해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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