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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의 가장 큰 죄악은 양심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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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노한다33]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72)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박근혜 정권의 본질을 ‘파렴치’로 규정했다. “보통 사람들이 ‘설마 그렇게까지’라고 여길만한 몰상식한 행위들을 태연하게 자행”하기 때문이다.

“이 파렴치 정권 아래서는 불가능이 없다. 어떤 진실도 허위로 조작할 수 있으며, 거꾸로 어떤 허위도 진실로 날조할 수 있다.” 

날이 갈수록 점점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에 대한 이른바 ‘찍어내기’ 의혹 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임헌영 소장은 지난 2009년 11월, 무려 18년이란 긴 준비기간을 거쳐 세상에 나온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지난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시도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왔다.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또 문학평론가로서 늘 올곧은 역사인식·시대인식으로 우리 사회가 아픈 과거사를 딛고 올바로 서는 일에 한생을 바쳐온 그는 박근혜정부와 현 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이 정부의 가장 큰 죄악, 양심을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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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윤성효   

임 소장은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으로 “전 국민을 참되게 살 수 없도록 만든 것”을 꼽았다.  

“조금만 양심을 지키면 쫓겨나는 판이다. 전 국민들로 하여금 양심을 지키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불의와 부정을 옹호하거나 묵인하는 가치관으로 바꾸려는 거다.” 

그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이 어느 정도 성숙하지 않았느냐는 평가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섰을 때가 바이마르헌법이 제정됐던 시기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경제 위기가 봉착하면 똑똑한 국민도 국민 전체의 집단최면에 의해 파시스트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너무 하지 않느냐’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 더 심각하게 느낄 것”이라며 “(이런 식의 권력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인류사가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체제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지난 1년간 박근혜 정권이 보여준 행태가 계속된다면 권력 내부에서부터 누수현상이 일어나 결국은 붕괴되지 않을 수 없다.” 

임헌영 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1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약 1시간가량 진행됐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의 전문이다. 

– 최근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를 둘러싼 청와대 개입 의혹이 점차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본질은 파렴치다. 염치 있는 보통사람들이 ‘설마 그렇게 까지’라고 여길만한 몰상식한 행위를 태연하게 자행한다. 우아하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다. 이 파렴치 정권 아래서는 불가능이 없다. 어떤 진실도 허위로 조작할 수 있으며 거꾸로 어떤 허위도 진실로 날조할 수 있다.” 

–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수사 외압까지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인데, 국민들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언론을 비롯해 지식인, 교육인, 예술인, 종교인 등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이루고 있는 모두가 이미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양식을 잃었다. 오히려 독재에 길들여져 버렸다. 그러니 그런 언론보도를 접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그런 부류가 크게 늘었다. 

허위의식으로 사는 게 편한 거다. 처음엔 조금 불편하다가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체질화가 됐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은 이들에게 명분을 줬다. 바로 종북좌파다. 마치 8.15 직후, 친일파들이 이승만을 지지한 것과 같다. 당시 친일파들의 불편한 마음을 달래준 게 반공 논리다. 반공이 친일파들의 역사적 죄악에 대한 면죄부가 됐다. 

마찬가지다. 현재 권력자들, 집권층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에 대한 면죄부가 바로 종북좌파 논리다. 사실이든 아니든 관계없다. 오직 이것(반공)을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나쁜 짓도 구원받는다는 자만심까지 생겨버렸다.” 

“시민의식 성숙? 그건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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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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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시민의식도 어느 정도 성숙돼있지 않나?

“그렇지 않다. 그건 시민사회나 지식인들이 모두 착각하는 거다.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민주주의가 가장 성숙했을 때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세계 최고의 민주 헌법으로 평가 받는 바이마르헌법이 제정된 상황이었다.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유럽에도 극우파가 득세하고 있지 않나. 경제 위기가 봉착하면 어떤 똑똑한 국민도 국민 전체의 집단최면에 의해 파시스트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70여 년의 세월 중 민주화 돼 있던 기간은 고작 11년뿐이다. 60년 4.19혁명 뒤에 1년, 그리고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 그 11년 동안 어떻게 민주화 가치를 보편화시키겠나. 못 한다. 더구나 지배층의 허위이데올로기로부터 영향을 받기는 쉽다.” 

– 우리 국민의 민주의식이 그만큼 후퇴했다는 뜻인가.

“이명박 정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정치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전 국민을 참되게 살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공직자들이 이런 정권과 정책 하에서 정직하고 참되게, 죄의식 느끼지 않고 복무할 수 있을까? 가령, 판사들은 그야말로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검찰은, 경찰은, 교육자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공직자뿐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높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과연 일말의 아픔이나 갈등을 겪고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최근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윤석열 수사팀장의 배제 등 일련의 사태가 보여주듯이 조금만 양심을 지키면 쫓겨나는 판이다. 전 국민들로 하여금 양심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불의와 부정을 옹호하거나, 묵인하는 가치관이 전 사회에 만연해 있지 않으가. 죄와 무죄의 구별이 사라지고 다만 권력을 지지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이분법만 남는다.”  

“이 정부에 설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 종교계를 시작으로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련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너무 하지 않느냐는 것을 점점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더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이 정권에는 ‘설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나. 설마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식을 뛰어 넘는 일을 저지른다.  ‘설마 부정선거를 저지를까’, 했지만 저지르지 않았나. 

도둑질에도 도가 있듯이 독재에도 일정한 품격이 있는데, 품격이 없는 독재가 있는데 바로 파시스트다. 그저 탄압밖에 모른다. 국민들이 뻔히 잘못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그냥 넘어가지 않나. 이렇게 해서 과연 권력이 유지될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류사가 보여준다.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헤겔의 말을 빌리자면, 한 사람이 자유로운 체제를 절대왕정, 소수가 자유로운 체제는 귀족정치, 그리고 다수가 자유로운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했는데, 그 동안 우리나라 독재는 그나마 소수의 자유가 있었다. 지금은 1인만 자유로운 시대다. 통치자 한 사람 외에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닌가 싶다. 이런 체제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지난 1년간 박근혜 정권이 보여준 행태가 계속된다면 권력 내부에서부터 누수현상이 일어나 결국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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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자리에 앉은 수녀와 스님 광주지역 5대 종단(천주교, 천도교, 원불교, 불교, 개신교) 신앙인들이 5일 오후 2시 광주 동구 YMCA에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촉구’ 시국선언을 열었다. 5대 종단 신앙인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박근혜 퇴진, 국정원 해체, 이명박 구속, 종북몰이·국민분열 중단, 종교적 양심에 대한 편파왜곡 사과, 총체적 불법선거 해결을 위한 특검실시”를 요구했다.

ⓒ 소중한   

 

– 그러나 야권과 시민사회가 너무 취약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의 배경에는 대안부재 심리도 있다고 본다.

“이미 그 동안에 축적된 역량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이 나서서 그렇게 속여도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지를 보여주지 않았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수치다. 독재가 심할수록 저항도 커지는데 저들은 그것을 모른다. 어떤 독재자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안은 항상 생긴다. 독재 하에서 영웅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표창원 전 교수, 채동욱 검찰총장, 권은희 과장, 윤석열 팀장 등 계속 영웅이 탄생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선가 이들이 국민적 신망을 받으면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야당이 아무리 무능해도 이런 성좌(星座)들 때문에 역사는 항상 새롭게 쓰인다. 독재가 심할수록 위대한 인물들은 더 빛난다. DJ나 YS 조차도 독재 정권 하에서 더 빛나는 별이 되지 않았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마이뉴스>201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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