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단독]교학사 교과서 최종본, ‘신흥무관학교’ 블로그 글 또 그대로

522

민족문제연,
교학사 최종본 인터넷 짜깁기 의혹 제기

친일·현대사
왜곡과 무더기 오류가 지적된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최종본도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베끼고 짜깁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단어나 문장이 거의
똑같고 잘못 번역된 부분까지 그대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졸속’ 제작이라는 비판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교학사 교과서를 조사·분석한 결과, 전북 김제의 지주제 발달과 동학농민운동, 
신흥무관학교 서술 등 곳곳에서 인터넷 사이트나 기존 문건 자료를 그대로 옮긴 정황이 나왔다고
15일 밝혔다.

원사료
‘관아’를 ‘관직’으로…동학·김제 지주제 발달 등 기존 문건 등 똑같이 기술

‘전북
김제에서 지주제의 발달’이라는 소제목을 단 279쪽 내용은 2010년 인터넷에 게시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김제 광활간척지와 동진수리조합’
부분의 서술과 문장 순서와 단어 몇 개만 다를 뿐 거의 같은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교과서는
‘1929년부터 1937년까지 1가구당 약 20,000㎡의 땅에 방 한 칸, 부엌 한 칸, 헛간 한 칸이 딸린 집 한 채씩 배당하고 업격한
심사를 거쳐 676가구의 이주민을 정착시켰다’고 기술했다. ‘19,834.71㎡’가 ‘20,000㎡’로 다른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향토대전에
나온 서술과 같다. 이런 식으로 해당 부분을 기술한 교과서의 10문장 중 9문장은 향토대전과 거의 같이 기술돼 있다.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186~187쪽은 2003년 4월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원인 현직교사 ㄱ씨가 수업 보조교재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기술된 출전·내용·배열 순서가 같고, 교과서는 각종 자료집에서 잘못 번역한 부분까지 똑같이 기술하고 있다. 교과서는 ‘수령들이 관직을
여관같이 생각하여…'(‘
비변사등록
고종 29년(1892년) 1월27일)로 기술했다. 하지만 원사료에는 ‘수령들이 관아를 지나는 여관쯤으로 여기고…’라고 적혀 있다. 교과서는 또
‘(관군과 일본군이) 산등에 한 줄로 서서 한꺼번에 사격을…’이라는 내용의 출전을 ‘갑오관보’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갑오관보’라는 출처는
불명확한 것으로, ‘구한국 관보 개국(1984)’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명한 210쪽 설명은 2012년 10월 한 누리꾼이 블로그에 한 백과사전을 인용해 올린 것과 거의 똑같다. 단어 몇 개와 뒷부분의 문장 순서만
약간 다를 뿐이다. ‘1911년 4월 신민회 회원인 이회영·이시영의 6형제와 이동녕, 이상룡 등이…’ ‘3·1운동 뒤에는 지청천, 이범석 등
유수한 무관들이 이곳으로 왔다’ 등의 6개 문장은 모두 이 블로그에 나온 문장이다. ‘마련하고’가 ‘설치하고’로, ‘싼위안바오(三源堡)’가
‘삼원보’로, ‘하사관반’이 ‘부사관반’으로, ‘박해’가 ‘탄압’으로 단어만 달랐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역사를 다루는 시각을 떠나서, 교과서를 집필한 학자로서 원사료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기술한 것이나, 해당 내용을
전재한 듯한 서술로 보아 ‘베끼기’ 의심이 강하게 든다”며 “학자적 양심에 어긋나는, 기본 자질이 의심되는 교과서를 실제 학교에서 사용하는 것을
재검토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2013-12-16

[기사원문보기]
[단독]교학사 교과서 최종본, ‘신흥무관학교’ 블로그 글 또 그대로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