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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쿠바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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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떠난 쿠바!

산티아고 데 쿠바, 카마구웨이, 산타클라라… 쿠바 혁명의 길을 거쳐

산티 스피리투스, 마탄사스, 아바나까지 8박 9일의 쿠바 탐독기

 

2011년 베트남 자전거 횡단과 함께 한국이 베트남에 저지른 만행을 고발한 책 ≪미안해요 베트남≫의 저자 이규봉(배재대학교 교수)의 두 번째 책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쿠바 횡단―역사와 함께하는 쿠바 자전거 여행≫이 출간되었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에 쿠바다.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체 게바라. 저자는 특히 체 게바라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오토바이 여행을 동경했다. 그가 다닌 길을 밟고 싶었으나 남아메리카 몇 개 나라를 거친 그 길은 장정이어서 짧은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고, 더군다나 자전거로 그의 발자취를 좇기란 매우 긴 시간을 요하는 일이었다. 이런 생각 중에 떠오른 것이 쿠바였다. 비록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로 다닌 남아메리카의 모든 곳을 당장 찾아갈 순 없지만, 그가 안장된 산타클라라를 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는 쿠바로 떠났다.

저자는 8박 9일간 쿠바에서 언론이나 책을 통해 접해왔던 쿠바의 정제된 일면이 아닌, 느리지만 주류와는 다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쿠바의 내면과 역사를 만났다.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쿠바 횡단≫은, 이규봉이 그의 몸을 실은 자전거 속도처럼 알아간 쿠바의 어제와 오늘, 도시와 농촌, 그리고 혁명가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쿠바 여행에 대한 안내서이자, 이 혁명의 나라를 알고 싶어 하는 초심자들을 위한 훌륭한 쿠바 입문서가 될 것이다.

두 바퀴로 읽어 내려가는 쿠바

“예상외로 길은 너무도 완만했다.… 카스트로와 게바라가 정부군에 맞서 싸우던 그 산맥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쿠바는 체 게바라의 제2의 조국이다. 아르헨티나 사람인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완수하고 쿠바 국적을 취득했다. 후에 쿠바 국적을 반납하고 무국적자로 볼리비아에서 혁명을 수행하던 중 정부군에 잡혀 죽었다. 사망한 지 30년이 지난 후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쿠바로 이송되어 산타클라라에 안장됐다.

산타클라라는 게바라가 쿠바에서 처음 입성한 대도시다. 여기에서 쿠바 혁명을 실질적으로 성공에 이르게 하는 대전투가 벌어졌으니 이를 쿠바 혁명사에서 산타클라라 전투라 한다. 1958년 8월 31일 게바라는 140명의 병력을 이끌고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에서 나와 산타클라라를 향해 출정한다. 그는 경험이 부족한 부하들을 이끌고 걸어서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을 넘었다.

400명이 채 안 되는 혁명군은 무장된 장갑 열차를 앞세운 4000명이 넘는 정부군과 대적한다. 12월 29일 게바라의 부대는 정부군의 산타클라라 본부와 장갑 열차 간의 교신을 단절시키고 철로도 끊어 장갑 열차는 탈선한다. 탈선된 객차에 화염병을 던지자 객차에 갇힌 정부군들은 투항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대는 장갑 열차를 노획해 정부군의 무기와 탄약을 탈취한다. 1959년 1월 2일 시엔푸에고스 부대와 합류하면서 게바라의 부대는 산타클라라에 입성한다.

이 책의 여정은 이와 같은 쿠바 혁명의 과정과 그 길을 함께하고 있다. 1장에서는 인천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가면서 겪은 여행담을 실었다.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던 때부터 쿠바 혁명 전까지의 간략한 쿠바 역사와 쿠바의 상징인 담배, 럼주 그리고 산테리아 의식을 소개한다. 2장에서는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중부에 있는 카마구에이까지 여행 경험과 산티아고 데 쿠바와 가까운 관타나모의 미군 기지에 대한 불편한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오늘의 쿠바를 있게 한 쿠바 혁명을 이야기한다. 3장에서는 카마구에이부터 체 게바라가 묻힌 산타클라라까지의 여정과 쿠바 혁명의 두 얼굴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를 소개하고 있다. 4장에서는 산타클라라부터 아바나에 도착하기까지의 여행담과 한국의 쿠바 이민사에 대해 기술한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아바나에서 지내면서 겪은 일들을 기술했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밍웨이를 소개한다. 더불어 강대국 미국이 약소국 쿠바를 어떻게 상대했는지 알아보았고 소련 붕괴 후 살아남은 쿠바의 현재 모습도 살폈다. 

올드카, 사탕수수, 담배,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이중 화폐…

쿠바의 과거와 오늘을 아는 실마리를 발견하다

쿠바 혁명 후에 쿠바 인민들은 대부분 주택을 소유하게 됐고, 정부는 위생이나 수도, 전기 등 기초 생활 조건을 충족시켜 빈민가를 없앴다. 교사와 의사를 양성하고 학교와 보건소 그리고 병원을 지어 보편적 의료 서비스를 확립해 인민의 생활수준과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의 어려운 시기에도 교육과 의료만큼은 꾸준히 그 수준을 유지했다. 또한 이웃공동체 조직을 더욱 강화해 사회적 기능을 높여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이웃공동체와 정부의 연계를 강화했다.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한 물자 부족은 친환경 자재와 옛 기술의 활용으로 극복해 지금은 석유 없어도 지속 가능한 국가 1위로 선정되었다. 특히 살아 있는 지도자는 추앙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을 정해, 쿠바에서 추앙받는 인물은 이미 고인이 된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정도이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과 매우 대조되는 부분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쿠바를 상징하는 것은 다양하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위대한 혁명가 게바라와 혁명 지도자 카스트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처칠 수상이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초래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애용했다는 담뱃잎을 굵게 만 시가와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 밭 그리고 참혹한 환경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흑인 노예의 마음을 달래준 사탕수수로 만든 럼주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속 자동차로 잘 알려져 있는 일명 올드 카. 그 외에도 미국 작가이지만 쿠바에서 오랫동안 지냈고 쿠바인으로 불리기를 원했던 헤밍웨이와 쿠바만의 독특한 음악 등 참으로 다양하다.

쿠바보다 훨씬 잘사는 우리나라의 상징이 무엇인지 외국인에게 물어보면 어떠한 대답을 할까? 세계의 유일무이한 분단국이라는 사실이 유일한 상징이 아닐까? 그 외 더 있다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3대 세습의 북한과 군사적·정치적 긴장 관계에 있다는 것이 그 다음을 이을 것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한글은 그들이 잘 알 리 없을 것이고, 그나마 최근 한류로 대한민국의 존재가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잘 살지만 문화가 빈약한 사회와 비록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지만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이 시대의 체 게바라 출현을 기대하며

자전거 기행문에 명쾌한 통찰을 더한 쿠바 입문서!

미국과 인접해 있는 쿠바는 미국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죄 아닌 죄로 미국의 간접적인 침략을 무수히 받았다. 미국의 용병들이 침략한 것이다. 미국은 한 나라의 수상인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시도를 수없이 실행했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쿠바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미국은 더욱더 쿠바 경제를 봉쇄하며, 쿠바 인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등 온갖 야비한 행위를 자행했다. 그럼에도 쿠바는 전 인민의 단결로 위기를 이겨냈다. 이러한 쿠바의 매력과 체 게바라가 묻혀 있다는 사실에 저자는 쿠바를 동경했고 무작정 그를 따라 쿠바 자전거 기행에 나섰다.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체 게바라의 출현을 바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비록 그는 쿠바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의 혁명은 완수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기상은 고난받고 있는 전 세계 노동자에게 빛이 되었다.

이 책은 쿠바 여행을 위해 쿠바의 역사와 쿠바 혁명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체 게바라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집필되었다. 쿠바 혁명군이 처음 쿠바에 도착해 활동한 곳이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이고 그 동쪽에 쿠바 혁명의 진원지인 산티아고 데 쿠바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산티아고 데 쿠바를 출발해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 있는 바야모를 넘어 라스 투나스, 카마구웨이, 산티 스피리투스, 산타클라라, 그리고 한국 이민의 역사를 간직한 마탄사스를 거쳐 아바나로 향했다. 저자의 여행 경험과 함께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별로 서술되어 있다. 자유로운 기행 형식에 명쾌한 쿠바의 혁명과 역사, 문화에 대한 저자만의 명쾌한 통찰을 더한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적 쿠바 횡단≫은 ‘쿠바’라는 조금은 낯선 나라에 독자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다음 날 아침, 한 나라의 수도에서 새벽 닭이 울어 잠을 깨운다. 이후 매번 새벽에 닭 울음소리를 들었다. 시골이건 도시이건 관계없이. 베란다에 나가 바라보니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멕시코 만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플로리다 해협이다. 맑으면 보인다고 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헤밍웨이가 살았던, 그래서 유명해진 미국 플로리다 주의 키 웨스트가 있다. 주변 건물의 외관은 매우 남루했으나 옥색의 바다 풍경은 쿠바에서 첫 아침의 장관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듣던 대로 화장실의 변기에는 몸통만 있고 뚜껑은 물론 엉덩이 걸치는 부분도 없었다. 밤에 졸졸 나오던 물은 아침이 되니 잘 나오지는 않았으나 그런대로 쓸 만큼은 나왔다. (39쪽)

기독교를 신봉한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제국과 미국이 식민지 지배를 하면서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못했을까? 이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이른바 ‘문명화의 사명’이다.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더 많이 개발해야 하는 데 식민지 원주민은 그럴 수 있는 문명 단계에 도달해 있지 못하므로 할 수 없이 유럽인이 가서 그들을 계몽하고 자원도 대신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일본의 조선 지배를 타당하게 보는, 이른바 ‘뉴 라이트’라고 하는 단체가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꼭 닮았다. 이와 같은 주장은 존 로크에 의해 최초로 아메리카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체계화됐다. 존 로크는 원주민은 원시적 인간으로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말 웃기는 논리다. 그렇다면 왜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이익은 고루 나누어 갖지 않았나? (50쪽)

쿠바에서는 빈 차를 나누어 타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없는 살림에 어차피 가는 차 좀 나누어 타라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아술들이 빈 차가 오면 기다리는 사람들을 배정해준다. 국가 차라 그런지 얻어 타는 사람들도 고마운 표시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아바나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올 때 한 검문소에서 차를 세우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검문소 안에는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 차에 여석이 있는지 물었다. 물론 우리 차는 자전거와 사람으로 꽉 차 있어서 자리가 없었다. (107쪽)

아침 식사는 7시부터였다. 하지만 10여 분이나 늦게 문을 열었다. 물론 문은 그 시간까지 잠겨 있어 출입할 수 없고 기다려야 했다. 사회주의 전통 때문인가. 아침은 7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7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 이른바 7-12-7이다. 그 시간 전에는 들어갈 수 없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 식대로 하면 어림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 자본주의 의식이 덜 스며들어 노동자들은 그만큼 여유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125쪽)

공주처럼 왕관을 쓴 소녀는 긴장의 기색도 없이 자신만을 위한 날을 한껏 즐기는 것 같았다. 심지어 탁자 위에 준비된 럼주에도 주인공 소녀의 얼굴이 인쇄되어 붙어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행사 내내 울려 퍼지는 음악이 미국의 대중가요였고 춤도 그 음악에 따라 추는 것이었다. 쿠바 사람들이 미국을 적성국으로 여기기는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의아스러웠다. (144쪽)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부터 자전거로 오면서 길가에서 본 풍경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스트로의 기념물이나 사진보다는 게바라의 기념물과 사진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다. 아니 카스트로의 상징물은 거의 없었다. 쿠바 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미지상 외형적으로 게바라를 내세워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연대감을 갖도록 하고, 내부적으로는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이 정권을 쥐고 정치적 지배력을 가져가는 듯한 구조 같았다. 그러나 북한과 달리 쿠바는 살아 있는 사람을 숭배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191쪽)

쿠바 사람들이 불법으로 탈출하는 이유는 이들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 개방 조치를 추진해온 쿠바 정부는 2013년 1월부터 자국민의 해외여행 규제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해외 체류 기간도 2년으로 연장한다니 이제 자신감이 생겼나 보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엔 아직도 여행의 자유가 없으니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한 나라는 오직 죽은 자만 숭배할 수 있고, 다른 한 나라는 살아 있는 자를 숭배해 그 결과 공화국이 아닌 왕조를 이루어서라고 해석하면 무리일까? (223쪽)

 

▶저자 소개

이규봉

서강대학교 수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교VPI&SU에서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전거 타기를 즐겨 기행문을 남긴 자전거 여행만 현재 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수학을 실생활과 사회 문제에 응용하는 것 외에 한국 근현대사와 환경 문제 그리고 국제 정치와 우리나라 전통 음악에 관심이 많다. 베트남과 한국의 불편한 역사가 담긴 베트남 자전거 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2011)과 수학의 결과로 사회를 해석한 ≪수학의 창을 통해 보다≫(2013)를 저술했다. 현재 배재대학교 컴퓨터수학과에 재직 중이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대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그리고 대전에서 클라리넷과 피리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 차례

 

들어가는 글

 

1. 혁명의 나라 쿠바를 가다―아바나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특별관리비는 특별히 요청할 때만 받아야 하지 않을까?|신자유주의의 첨병 민영화|고 원장 부부의 특별한 체험|까다로운 탑승 절차, 누구를 위함인가|여유 만만한 쿠바 세관원|스페인의 탐욕에 멸종된 쿠바 원주민|너무너무 지혜로운 말 ‘울띠모’|문명화의 사명?|쿠바의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쿠바의 독립을 빼앗은 미국|마누라들은 남편이 돈 벌어 오면 좋아한다|담배와 럼주 그리고 산테리아 의식

 

2. 두 개의 화폐, 두 얼굴의 나라―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카마구에이까지

미국 자본의 쿠바 착취로 일어난 쿠바 혁명|자존심 때문에 40분을 걷다|힘에 의한 불공정 임대차 계약의 상징 관타나모|갈증엔 맥주가 최고|12명의 혁명군으로 정권을 잡다|아싸! 이중 화폐 브라보!|더 이상은 노 땡큐! 까사|쿠바의 식사 시간 7-12-7

 

3. 혁명가들의 안식처―카마구에이에서 산타클라라까지

혁명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딸에게만 해주는 쿠바의 성인식 낀세|너무 시끄러워 잠 못 이루다|혁명의 상징 체 게바라의 안식처 산타클라라|체 게바라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오토바이 여행|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와의 만남 그리고 쿠바 혁명 참여|엄청 많은 아이스크림!

 

4. 사악한 땅의 황색 얼굴들―산타클라라에서 아바나까지

하룻밤에 2000원, 호텔 맞아?|사기꾼 마부를 만나다|카리브 족과 백인, 누가 야만인인가?|조선인의 정착 마을 마탄사스와 카르데나스|쿠바 한인회의 고국 독립운동 지원|자전거를 택시에 싣고 아바나에 입성하다

 

5. 소설가가 남긴 도시―아바나를 떠나며

미국의 쿠바 체제 전복 기도와 이중성|미국의 쿠바 조정법과 ‘떠날 자는 모두 떠나라’|헤밍웨이 쿠바의 유산이 되다|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되살린 아바나

지속가능한 최고의 나라 쿠바|쿠바의 교육과 의료 제도― 또 하나의 혁명|압수된 GPS를 찾아 아래로 위로

 

한눈에 보는 쿠바 역사 / 주석 /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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