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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 결기 담긴 유묵에 숙연 유리창 너머 ‘이토 저격 현장’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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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들머리에 안 의사의 유묵 등 서예 작들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은 19일 개관했다.

하얼빈역 ‘안중근 기념관’ 가보니

내부 중앙에 화환 놓인 흉상 우뚝
플랫폼 저격 현장도 간판 달고 새 단장 
관람 온 중국인들 입 모아 경의 표해 
“파시즘 맞섰던 한-중 모두의 영웅”

9시30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 왼편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의 시계는 안 의사의 의거 시각을 가리키며 멈춰 있다. 안 의사는 105년 전인 1909년 10월26일 바로 이곳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서 3발의 총탄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렸다. 그는 하얼빈에서 열하루를 머물며 우덕순·유동하 의사와 함께 이토 저격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일반에 개방한 첫날인 20일 기념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은 건 서슬퍼런 다짐이 담긴 안 의사의 유묵들이다.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모두 약지가 없는 안 의사의 손바닥 도장이 선명하다. 유묵 맞은편엔 “양국(한국-중국) 인민의 항일 투쟁이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격살로 비로소 시작됐다”고 한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의 찬사를 비롯해 쑨원과 장제스의 글이 걸려 있다.









기념관 중앙부에는 안 의사의 흉상이 마련돼 있다.

하얼빈역 귀빈 대합실 일부를 고쳐 만든 200㎡ 규모의 기념관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기념관 한편엔 안 의사가 이토를 쏘아 죽이려 1909년 10월22일 밤 9시 하얼빈역에 내리던 순간부터 의거일과 뤼순 감옥 압송 전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한국어와 중국어로 설명돼 있다. 기념관 가운데 화환이 놓인 안 의사의 흉상이 있다.

의거의 현장인 1번 플랫폼은 기념관 끝의 대형 통유리창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가로 2m 세로 1.5m 크기의 유리창에서 5~6m 떨어진 저격 현장엔 ‘안중근 격살 이등박문 사건 발생지’라고 쓰인 간판이 걸려 있다. 기념관 쪽은 유리창 앞부분을 2m가량 돋워 현장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안 의사 저격 지점을 바닥에 세모꼴로, 이토 피격 장소를 마름모꼴로 표시만 해둔 예전이나, 2006년 하얼빈 시내에 설치된 안 의사의 동상이 열흘 만에 철거된 사건과 견줘보면 상전벽해다.

기념관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모두 안 의사를 영웅·애국자라 일컬으며 경의를 표했다. 뤼펑취안(30)은 “안 의사는 파시즘에 맞서 한국과 중국 민족 모두의 해방을 위해 의거를 행한 영웅이자 위대한 인물이다. 하얼빈 사람이라면 모두 안 의사를 안다”며 “그야말로 목숨을 던져 의를 추구했다(捨身取義)”고 말했다. 안 의사가 수감된 뤼순 감옥도 찾아가봤다는 왕아무개(47)는 “기념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을 듣고 ‘반드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중국인이지만 그를 존경한다”며 “안 의사는 일본의 식민 통치에 맞서 아시아 인민 모두의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반역사적 행보를 경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관람객 중엔 한국인과 재중동포들도 눈에 띄었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들머리. 건물 위 시계가 안 의사의 의거 시각인 오전 9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쉬허둥 하얼빈시 문화신문출판국 부국장은 “안 의사는 한국과 중국인 모두 영웅으로 여긴다. 기념관 개관으로 100여년 전의 역사를 직시하고, 안 의사가 추구한 동양평화론과 세계 평화사상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날 간단히 개관식을 한 것에 관해선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중국 정부가 출자해 만든 기념관이고, 이후 일본 기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쉬 부국장은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점심시간(오전 11시30분~오후 1시30분)을 빼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관람시간이니 착오 없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안 의사의 의병투쟁,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의거, 뤼순 감옥 순국 등의 자료가 한국어와 중국어로 전시돼 있다.

기념관 맨 끝에 안 의사의 유언이 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보는 이의 가슴을 한없이 먹먹하고 부끄럽게 한다.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하여 다오. 대한독립의 소식이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3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 묘역’에 1946년 6월 김구 선생 주도로 꾸린 안 의사의 가묘가 있다. 우리는 안 의사의 유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얼빈/글·사진 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한겨레>201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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