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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이 귀한 부르심? 청산 없으면 이런 문장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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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구나, 학도 출진.
그대들, 가서
이제, 맞이하는, 12월
8일
반석의 기초는 구축되고
그대들이, 미소하는, 전장을 생각하며
나는, 지금 질풍과
같이
도의의 날개를 퍼덕이면서
포연
속을 치달리는
그대들, 학병의 영자를 본다.
(조우식 <학병 출진하다>에서)

오늘부터는 해
떠오르는 나라의 수호신이옵신
원수 야마모토 이소로쿠
아아 이 이름!
1억 함께 복을
입으며
지금 이 시간 새로운 결의를 가슴에 새기오리다.
– 김소운 <야마모토 이소로쿠 원수 국장일> 중에서

낯 뜨거운 문장들이다.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시의 일부다. 광기가 서려있다. 일본인이 지었다하기에도 지금 곱씹기엔 너무나 비이성적인 글귀다. 하물며
한국인 문학가들의 글이란다. 서글프다.

징병제가 시행될 무렵인 1943년 8월, 이 순간을 마치 감격에 벅차오른다며 표현한 문장이
여럿이다.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본을 위해 총을 잡으라고 독려한다.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는 일이 멋지고 낭만적인 풍경으로 묘사된다. 같은
민족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우리 민족과 국가가 망하다 못해 나중엔 그 언어와 문자마저 송두리째 빼앗길 비운에 처했을 때 작가와 시인들은
어떻게 처신했나.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나도 사나이였더면 나두 사나이였더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 노천명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중에서

점입가경이다. 강제징용이 ‘귀한 부르심’이라니. 남자들이 일제에게 끌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영광’이니 여자들도 무엇인가를 하라고 권한다. 이 알 수 없는 결연함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강제 징용된 이들은 남자만이 아니었다. 여자들은
군수물자 수리에 동원되고 위안부로 끌려갔다. 이 시를 쓴 자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독립 운동가들의 넋이 알게 될까
두렵다.

이들이 일제를 찬양 할 때 윤동주 시인은 죽어갔다

언어는 정신을 지배한다.
친일문학의 악랄함은 여기에 있다. 일본으로의 완전한 귀화, ‘뼛속까지’ 일본화를 시킨다. 아직 어린 아이 혹은 이제 태어날 아이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의 존재라는 사실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겠다는 의중이 깔려있다. 글을 다루는 문학가들이 이를 몰랐을까. ‘내선일체’에 동조한
문학가들은 민족말살정책에 참여한 것이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친일파는 단순한 행위의 차원이 아니며 민족사적인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동반한다’고 지적했다. 친일파는 일제의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동조한다. 친일문학에서 천황은 그 충성의 중심축이다. 여기서 천황은
파시즘·침략전쟁·수탈·희생을 정당화하는 무오류의 표상이다. 친일문학에서도 천황은 절대적 존재로 그려진다. 따라서 친일문학가는 파시즘을 선호하고
침략전쟁을 독려하며 수탈과 탄압, 강제징용도 정당화하고 미화했단 것이다.

지금은 다만
‘일본신민’일 따름이다. 한 천황폐화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를 함께 할 한 백성일 뿐이다. ‘내지’와 ‘조선’의 구별적 존재를 허락지
않는 한 민족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종족을 캐자면 다를지 모르나 일본인과 조선인은 지금은 합체된 단일민족이다. (김동인 <감격과
긴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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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문학론> 겉표지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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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선생은 <친일문학론>을
1966년 7월 출간했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입에 담지 못했던 친일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거기다 자신의 부친과 은사를
비롯해 친일행적을 벌인 문학가와 단체를 광범위하게 들쑤셨다. 쉬쉬하고 있던 세상에 그야말로 각성을 촉구하는 ‘돌직구’를 날린
셈이다.

방대한 연구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시로는 획기적인 결단이었다. 이 책을 필두로 친일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공로다. 그러나 이 혁혁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초판이 발행된 지 10년이
지나서야 첫 인쇄된 1500권이 모두 팔렸다. 그나마 절반 이상은 일본에서 주문됐다.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미운털이 박힌 재야 사학자의
책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책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생은 책에서 다룬 이들을 모두 친일작가로
규정할 수는 없음을 밝히고 있다. 본질보다는 양상에 초점을 맞췄다는 얘기다. 일치 말엽에 국어로 글을 썼는가, 쓰지 않았는가. 그리고 ‘총력전
수행’과 ‘황도조선’의 수입에 협력했는가, 하지 않았는가가 선별 기준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친일 행적을 벌인 이들을 대하는 무게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피골이 상접한 채 옥사한 윤동주 시인이나 제일 먼저 절필했던 홍노작 시인과 같아선 안 된다. 의견은 갈릴 수 있으나 사실은
갈릴 수 없다.

당시 시절이 그랬다고, 친일이 민족을 위한 길이었다고 책에 실린 이들을 변호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지용
시인의 <이토>를 보며 우리는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유종호 문학평론가는 이 시를 “모호하기 짝이 없어 그 의미를 종잡을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일제 말기 국민총동원 시기에 정지용 정도의 중진 시인이 협력의 시늉을 전혀 안 할 수는 없어서 의사 전쟁 시 한 편을
두루뭉수리 날조해서 납품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라고도 했다. 폭력이 글을 쓰게는 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양심을 지키려는 시인의 의지마저 꺾을
수는 없었을 게다.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선생은 금기를 깬 대가로 후반의
생을 궁핍과 외로움 속에서 병마와 싸우면서 보냈다. 폐기종이 악화돼 한 걸음 떼고 숨을 한 번 쉬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후학들과
<친일파총사>를 집필했다. 결국 연구를 마무리 하지 못하고 1989년 작고하고 만다. 친일파들의 반민족 행위를 엄중히 고발한 이
사학자의 빈소에는 유명 인사의 화환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과오다.

게다가
<친일문학론>의 의의를 인정하고 가치평가가 필요하다고 최초로 주창한 이는 오히려 일본의 문학연구자였다. 그는
<친일문학론>을 일본어로 번역해 출판한 오무라 마스오다. 창피한 일이다.

강요한 자의
치욕은 강요당한 자의 치욕의 몇 백 배일지 모를 바라는 상념에서, 다른 외국 문학을 대할 때와는 다른 일종의 긴장감이 우리에게 초래되고야 만다.
– 오무라 마스오 <친일문학론 일본어판> ‘역자해설’에서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걸었던 선생이다. 지금이라도 그 준엄한 고발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좁고 어두운 방 안에 하루 열 시간씩 꼬박 틀어박혀 외로이 써내려간
원고들이다. 이 옥고를 바라보며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이 책에 씌어진 모든
이야기는 과거다. 그리고 과거란 어디까지나 과거일 뿐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과거로서 망각되어도 하기야 현실생활에
미치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과거 – 또는 현재를 감수하는 우리의 태도! 그 태도 여하에 따라서 과거 – 또는 현재는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친일문학론> 509쪽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단 한편의
친일문장도 남기지 않은 작가 13인의 이름이다.

윤동주, 변영로, 오상순, 황석우, 이병기, 이희승,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박남수, 이한직, 홍노작, 김영랑, 이육사, 한흑구.

이들의 이름이 우리의 역사와 기억에 영원히 새겨질 수 있도록, 역사가 바로설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금이라도 친일의 역사가 명확히 규명돼 청산되기를. 그것이 우리가 이 책을 마주하며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친일문학론>에서 다루고 있는 단체와
작가
조선문예회,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황군위문작가단,
조선문인협회, 국민총력조선연맹, 황도학회, 임전대책협의회, 흥아보국단준비위원회, 조선임전보국단, 대동아문학자대회, 조선문인보국회,
만주국예문가회의, 대화동맹, 조선언론보국회, 대의당

김동인, 김동환, 김문집, 김사량, 김소운, 김안서, 김용제, 김종한, 김팔봉,
노천명, 모윤숙, 박영희, 백철, 유진오, 이광수, 이무영, 이석훈, 이효석, 장혁주, 정비석, 정인섭, 정인택, 조용만, 주요한, 채만식,
최남선, 최재서, 최정희

덧붙이는 글 | <친일문학론>, 임종국 지음,
이건제 교주, 민족문제연구소 펴냄, 2013.03, 3만5천원

지조를 지킨 작가 명단은 원래 <친일문학론>에서 15인의
이름이 적혀있다. 기사에는 오상순과 이병기를 뺐다. 오상순은 일제의 종교?사상 침략의 첨병 역할을 한 ‘일본조합기독교회’의 전도사로 있었고,
이병기는 <12월 8일>이란 친일성 짙은 시조를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음이 밝혀졌다.

<오마이뉴스> 2014-03-01 ☞ 기사원문: 강제징용이 귀한 부르심? 청산 없으면 이런 문장 또 본다

※ 참고기사: 민족문제연구소 <친일문학론> 교주본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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