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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찾아낸 땅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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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신문] 친일파 민영은 토지 소송과 국가 귀속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 은닉된 친일파 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공방이 된 민영은 토지는 애초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국고로 귀속해야 한다고 결정했던 땅이 아니었기에 친일재산을 추가로 조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친일 재산을 추적하며 ‘20여 개’의 기준을 세웠다. 민영은은 친일파로 알려졌지만 쟁점이 된 민영은의 땅은 그가 ‘일제로부터 직위를 받기 전’에 취득했다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환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민영은은 일제 때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바 있다.

민영은의 후손들은 바로 이 점을 공략했다. 해당 땅이 친일재산이 아니라 조상의 정당한 재산이라는 것. 1심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인정돼 법원이 후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에서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법원이 해당 땅을 ‘친일재산’으로 인정한 것이다.

법원이 내세운 근거는 친일재산귀속법이다. 법에 따라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 개전 때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까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취소 결정을 친일재산이 아닌 근거로 보기에 부족하다고 봤다. 즉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항목이 ‘절대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원의 결정은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한 첫 사례로 향후 친일재산 국가 환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친일재산특별법이 갖는 의미를 정확히 짚은 판결로 상당히 전향적인 판결이다”라고 전했다. 친일재산의 범위를 좀 더 넓게 봄으로써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조사한 사안과 더불어 추가로 친일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파악한 친일파는 168명, 환수 토지는 1100여 만㎡이지만, 아직까지 ‘빙산의 일각’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이용창 연구원은 “조사위원회가 5년 동안 파악한 친일파 재산은 대부분 상층부, 일제 강점기 시대 관료들이기에 친일파 전체를 조사했다고는 볼 수 없다. 친일인명사전에 적힌 친일파만 ‘4300여 명’에 달한다. 앞으로 친일재산을 추가적으로 조사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숨겨둔 친일재산을 모두 합하면 약 445.75㎢(1억 3484만 평)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치도 있다. 현재 광주광역시 크기와 맞먹는 거대한 크기다.

실제로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만 해도 일제 강점기 시대 여의도 면적의 1.9배에 달하는 1573만㎡의 땅을, 친일파 송병준은 857만㎡ 땅을 소유한 바 있다. 하지만 국가에 귀속 결정된 이완용의 땅은 1만 928㎡, 송병준의 땅은 2911㎡에 불과했다. 특별법이 통과되기 전 재산을 모두 처분한 까닭이다. 일제 청산이 늦어지면서 후손들의 소송 제기에 무방비하게 당했다는 점도 재산 환수의 걸림돌이 됐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0년대 국내 최대 농업재벌로 꼽혔던 친일파 민영휘의 땅 역시 아직도 환수되지 않았다. 민영휘가 소유한 충북 청주 상당산성 내 3만 14㎡의 달하는 땅은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심사 대상에 오르지도 않았다. 이번에 화제가 된 민영은의 후손은 아직도 충북도청 인근 야산 4만 3000m²의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 역시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환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용창 연구원은 “법무부가 진행하는 소송 업무 외에도 곳곳에 은닉되어 있는 친일재산을 추가로 찾을 수 있는 주체적인 기관이 필요하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와 같은 상설 특별 위원회 설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일요신문> 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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