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이토 저격 당시 총 맞은 통역사 다나카 세이지로
ㆍ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일본 기업인 회고록 공개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했을 당시 통역사로 총상을 입은 일본인이 훗날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은 안중근”이라고 말한 내용을 담은 회고록이 공개됐다. 이 같은 발언이 국내에 알려진 적은 있지만 근거 자료와 함께 상세한 맥락이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안 의사를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일본인은 다나카 세이지로(田中淸次郞)이다. 1909년 10월26일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했을 당시 만주철도 이사였던 그는 수행원 겸 통역사로 현장에 있다가 총상을 입었다. 다나카의 발언은 일본 기업인 안도 도요로쿠(安藤豊祿)가 1984년에 펴낸 회고록 <한국 내 마음의 고향(韓國わが心の故里)>(사진) 중 ‘안중근은 민중의 마음’이라는 장에 소개돼 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 추모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가 22일 서울 효창공원 안중근 의사 묘역에서 주최한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 추모식에서 참석자가 플래카드에 쓰인 안 의사의 글을 읽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1872년 이토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하기시에서 태어난 다나카는 도쿄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34세 때 만주철도 이사가 됐다. 그는 안 의사 의거 직전 이토가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를 만났을 때 이토의 프랑스어 통역을 맡았다. 코코프체프와의 회견을 마친 이토가 열차에서 내렸을 때 다나카는 이토의 두세 걸음 앞에 있었는데, 이때 총격이 발생했다. 이토는 즉사했다. 다나카는 발뒤꿈치에 총을 맞았다.
책에 따르면 다나카는 당시 안 의사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의 안중근의 늠름한 모습과 유연한 언행, 달려든 헌병이나 경찰에게 총알이 아직 한 알 있음을 주의시키는 태도 등은 그의 인격의 높이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으며, 이제까지 다나카씨가 본 것 중에 최고였다고 한다.”
다나카는 당시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일본으로 가는 전 세계 저명인사들을 다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엘리트였다. 게다가 그 자신이 안 의사의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던 인물이다. 안도는 회고록에서 “당신이 이제까지 만난 세계의 여러 사람 중 일본인을 포함해 누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자신의 질문에 다나카가 이렇게 답했다고 썼다. “(그는) 일언지하에 ‘그것은 안중근이다’라고 말했다. ‘유감이지만’이란 한마디를 덧붙이고.”
안도는 1897년생으로 도쿄대를 졸업하고 오노다 시멘트 회사에 입사해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1920년대에는 이 회사의 평양 지사에서 일하며 황해도의 안 의사 고향 자택을 두 차례나 방문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는 안중근 연구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회고록 내용은 안 의사 순국 104주년을 맞아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안중근 관련 부분을 번역해 23일 경향신문에 공개했다. 최 원장은 “최근 일본 관방장관이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라는 망언을 하는 것을 보고 일본에도 안 의사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번역했다”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4-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