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한마디도 사료에 근거, 역사소설 『정도전』의 작가 임종일
드라마 정도전의 인기가 대단하다. 3월 16일 방송된 정도전 22회는 전국 가구 시청률 15.6%를 기록하며 비슷한 시간대의 최강 TV프로그램 개그콘서트를 0.9% 앞섰다. 이러한 인기에 출판계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임종일 회원이 쓴 『정도전』(전 3권)을 비롯한 여러 종의 소설과 학술서 등이 2014년에 나온 책만 10여 권에 이를 정도다. 정도전이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500년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정도전! 그가 피를 토하듯 외쳤던 ‘민본’과 ‘혁명’이 600년을 거슬러 2014년 대한민국에 큰 울림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로는 뭔가 부족하다. 진짜 정도전의 얼굴이 궁금하다면 무엇을 접해야 할까? 집필에만 10년 넘게 걸린 최초의 정도전에 관한 역사소설 『정도전』의 작가로, 이번에 개정판을 낸 『정도전』(인문서원 펴냄)의 임종일 작가를 만났다. – 역사소설 『정도전』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개인적으로는 1990년의 ‘3당합당’이었어요. 민주화와 개혁을 열망하던 많은 이들에게 절망 그 자체였거든요. 당시 백과사전을 만드는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때 맡은 집필 꼭지가 정도전이었어요. 일본과 중국의 자료에서 정도전을 보고서 정도전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또 그가 우리 역사에 진짜 혁명가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소설로 써야겠다’ 결심했죠. 5권의 소설로 내는 데는 10년이 걸리고 말았어요(전 3권인 개정판과 달리 초판은 전 5권이었다). – 작가님의『정도전』이 가진 차별성은? 지금 나온 정도전 관련 소설들은 모두 제 작품이 나온 이후에 출판된 것들이기 때문에 굳이 비교할 것은 없다고 봐요. 다만 철저하게 사실(史實)에 바탕을 두었고 행간과 자간 사이에 숨어 있는 역사의 실체를 보고자 했어요. 정몽주, 이성계와의 만남. 만고충신 최영과 정몽주의 맨 얼굴, 조선 건국과 요동정벌에 대한 정도전의 확고한 의지, 왕자의 난 등에서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 당대의 기록을 볼 수 있는 데까지 다 봤어요. 복사비만 천만원이상 들었고 소설 속의 대화 하나까지 최대한 사료를 근거로 했어요. – 1권 부제가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입니다. 고려 말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고려 원종 대 몽고의 침입으로 항쟁이 있었지만,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고려는 이미 독립된 국가라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왕실만 겨우 살아 있는 상태였고 그 조차도 부패가 극심했어요. 권문세족과 부원세력이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권력을 휘두르니 일제시기 친일파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너무 피폐했고, 더구나 왜구들이 강토를 유린하는 데도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죠. 정말이지 ‘나라가 나라가 아닌’ 꼴이었죠.
정도전은 왕은 나라에 의지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백성이 의지하는 곳은 어디냐, 바로 땅이죠. 땅은 본래 나라의 것, 그래서 공전(公田)인데 왕실과 권력자들이 다 차지해 사전(私田)이 되어버렸죠. 부자의 땅은 산천을 경계로 하는데 ‘백성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다’며 정도전은 한탄했어요. 그래서 개혁의 첫 단추가 사전혁파였습니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모를 정도에요. 철학가, 사상가, 경세가… 사실 이것도 기본이고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고, 우리 역사에 없던 병법서를 저술해냈으니 병술가였고, 의학서를 썼으니 의술가였고, 고려사를 정리하고 중국역사에 능통했으니 역사가였고, 궁중음악을 새롭게 만들었으니 음악가였고, 천문지리뿐만 아니라 풍수비기까지 능했죠. 천재가 아니라 ‘초인’이라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정몽주는 원래 정도전의 혁명동지였어요. 하지만 현실정치의 격랑 속에서 혁명정신이 퇴색되게 되고 급기야는 어제의 동지였던 정도전을 모함하고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동지에 대한 배신이자 혁명에 대한 반역으로 볼 수 있죠. 우리에게는 고려의 충신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사실 선죽교 순절설과 혈흔설은 영조 때 만들어진 이야기예요. 사림파들에 의해 추숭됐죠. 정몽주와 정도전을 비교할 때에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고 봐요. 한 사람은 왕조를 위해 충성을 다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충성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하죠. 정도전이 이성계를 들어 썼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성계가 정도전을 가리켜 ‘나의 장자방’이라고 했어요. 장자방은 한나라 고조(유방)를 도와 나라를 세웠던 장량을 말하는데요. 그때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대놓고 ‘장자방은 맞지만 다른 것은 한고조가 장량을 쓴 게 아니라 장량이 한고조를 썼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어요. 이 사건 하나로 설명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정도전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려고 했나요? 크게 두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하나는 민본정치 민본국가 건설입니다. 정도전이 쓴 조선경국전의 첫 번째가 임금의 보위를 바르게 한다는 ‘정보위(正寶位)’인데 ‘임금의 위가 높고 귀하지만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지극히 많다. 만약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긴다’라고 못을 박았죠. 왕위가 그러한데 정치와 사회제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이 민본이었죠. 또 하나는 요동회복입니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후에 이성계와 함께 꾸준하게 부국강병책을 도모했고, 요동을 회복함으로써 중국과 맞서겠다는 의지가 강했죠. 요동회복이 혁명의 완성이었고, 후예들에게 물려줄 천년의 업이라 생각했습니다. – 정도전이 이렇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가 분명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백년 전 고려말의 모습과 지금 우리시대의 모습이 여러 부분에서 닮아있어요. 문제는 변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한다는 이율배반에 있어요. 때문에 변혁의 요체를 제시하고 끌어갈만한 정도전과 같은 인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 이후 계획은? 15년 전에 정도전을 5권의 소설로 내놓고, 오히려 세상살이는 신산하기 이를 데 없어요. 어쩌다 지금은 장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 낯설어요. 마치 유형을 온 듯한 삶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소설 ‘정도전’ 개작을 통해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정도전을 쓸 때부터 생각했던 작품을 이번에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고등학생 시절 임종국 선생님의 친일문학론을 읽었어요. 정말 충격 그 자체였어요, 문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 후 5.18민중항쟁 당사자로서 조선일보 반대운동 등 언론운동을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민문연을 만나게 되었고 바로 회원이 되었습니다.
뭐라해도 역시 친일인명사전 편찬이죠. 그 당시 추진위원으로 함께 했고 주변사람들 친구들에게 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을 알리면서 적극적으로 회원 가입을 시켰어요. 지금은 그때만큼 열심히 뛰지 못해 연구소에 많이 미안한 마음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버티고 계시는 상근자와 연구자분들께 늘 감사드리고, 회원들도 참 존경스럽습니다. 진실과 정의의 역사를 알리는 일에 더 매진해주셨으면 해요. 저도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홍보를 좀 하자면, 고려 망국과 조선 건국, 요동회복과 왕자의 난까지 역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역사소설 정도전은 3권이며 1권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 2권 고뇌속으로 가다 3권 꽃이런가 낙화로다. 출판사는 인문서원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2014-03-21> Interview by 민족문제연구소 기록정보팀장 임선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