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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도 백년전쟁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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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인 서응(徐凝)은 이백의 호방한 시풍을 흉내 낸 <여산폭포>란 시의 마지막에서 “한줄기 폭포가 푸른 산빛을
갈라 깨뜨리네”(一條界破靑山色)라고 썼다. 송나라 시인 소식은 이 시가 저속하고 비루한 ‘나쁜 시’(惡詩)라며 장난삼아 절구를 한 수 지었다. “폭포 날아 떨어지며 흩뿌리는
물거품은 수없이 많건만/ 서응의 나쁜 시를 씻어내지 않는구나.(飛流沫知多少/ 不與徐凝洗惡詩) 서응은
이 한 구절 때문에 ‘나쁜 시’의 대명사가 됐다. 그가 이런 성토를 당한 건, 세상을 향한 어떤 발언을 시에 담을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고 그저 ‘새로운 표현’(新意)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좋은 시와 나쁜 시는 어떻게 다른가. 조선 중기 문인 어세겸은 ‘창에 쓰다’(書窓)란 시에서 말한다. “우연히 시상이 떠올라 창문에 써 붙이니/ 종이가 찢어지면 시 또한 찢어지리/ 좋은 시는 사람들이 반드시 전할
것이요/ 나쁜 시는 사람들이 반드시 침 뱉으리/ 사람들이
전한다면 종이가 찢어진들 무엇이 상하겠으며/ 사람들이 침 뱉는 시는 찢어져도 좋으리/ …천고의 뒤에 남은 시를 통해 나를 알리라.(得句偶書窓/ 紙破詩亦破/ 好詩人必傳/ 惡詩人必唾/ 人傳破何傷/ 人唾破亦可/ …千載詩知我)

시흥을 깨는 ‘나쁜 시’를 씻어내는 일도 이렇게 어렵다. 그 정도가 아니라, 일제 치하 조선 청년들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시를 씀으로써 군국주의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앞장선 서정주 같은 이의 시는 어떻게 씻어내야 할까. 아직도
“미당의 친일행적은 아쉽지만 그가 쓴 시는 참 좋다”는 식의 어법이 적지 않다. 삶과 분리된 글재주만으로
문학을 논하는 일은 문학을 한낱 글재주로 전락시키는 일이며, 이는 문학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어법이라면, 이완용도 명필이었다고 하니, 그도 한국 서예사 한 귀퉁이에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은 관용하지
말아야 할 불관용의 화신까지 관용함으로써 이 땅의 관용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이 땅에는 서정주의
시 아니어도 읽고 감동할 시가 넘친다. 새삼스런 얘기를 꺼냈다고 허물하지 말라. 이승만의 반민족 행적을 파헤친 실록 <백년전쟁>을 공안 사건으로 몰아가는 게 지금 세상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한겨레 <2014-04-15>

기사원문: ☞ [이상수의 고전중독] 왜 아직도 백년전쟁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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