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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소시민이 공직자 ‘책임’을 거론해야 하나 / 이만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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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선장과 선원이 자기 도생(圖生)을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가 운영하는 시설과 기구들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지지부진한 초기 대응은 어떤 변명으로도 곧이들리지 않는다. 막대한 예산으로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나 숱한 방재시설과 기구를 설치한 것도 한순간의 위난에 대처하기 위함인데 그게 작동하지 않았으니, 국가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모두 책임을 망각한 데서 나온 결과다.

그런 속에서도 22살의 선원 박지영과 단원고 강아무개 교감은 우리 사회의 상실된 책임의식을 일깨워준다. 어린 승객들에게 퇴선명령을 내리면서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산화한 그녀는 진정 영웅이었다.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 힘이 벅차다. 내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해 달라”며 자신의 유해를 침몰지역에 뿌려달라고 한 그는, 온갖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육계에 ‘책임지는 스승상’을 보여주었다. 두 분이 있었기에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 같은 영웅이 없어 부끄러워하는 대한민국이 겨우 체면을 세웠다.

한나라·새누리 정권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본 지는 오래됐다. ‘천안함 폭침’이 있었을 때 40여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는데도 책임진 상관이 있었는가. ‘폭침’이 북한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이라면 국방상 중대한 구멍이 뚫린 것이고, 이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하는 안보 문제다. 그럼에도 군사상 책임을 묻지 못했다. 아니 묻지 않았다. 폭침 이외의 어떤 주장도 용납될 수 없다면, 먼저 ‘피침’(被侵)에 대해 왜 책임을 묻지 않았는가 해명해야 한다. 폭침 문제를 인사청문회장으로 끌고 와 사상검증용으로 활용하기 전에 서해안 방위 책임자를 청문회장에 세우는 것이 순서 아닌가.

얼마 전의 무인기 사건도 마찬가지다. 방공망이 뚫린 것이 사실이라면, 호들갑을 떨기 전에 그 책임자의 목부터 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 사건들의 책임 추궁이 몇년 전 동해안 ‘노크 귀순’ 사건에서 줄줄이 옷을 벗게 한 것과는 판이한 대조를 이루었다. 왜 그런가.

‘간첩 증거 조작’에 대한 국정원장의 무책임한 3분 사과를 떠올리는 것은 창피스럽다. 당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의 대국민 사과를 보면서, 마치 동네 싸움에서 내몰린 애가 갑자기 나타난 엄마 뒤에 숨어서 호가호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순서로 봐서도 국정원장의 사과가 먼저 아닌가. 바뀐 순서로 그 위계질서마저 모호하게 느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최근의 그는 한때 “자랑스러운 군복에 때를 묻힐 수 없다”며 12·12 쿠데타의 전두환을 강하게 비판했다가 진급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인품을 가진 사람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국정원의 명예를 위한다면서 정상회담 비망록을 공개해 국가를 망신시키고 그러고도 물러나지 않는 모습은 그가 명예를 생명같이 여기는 대한민국 육군을 책임졌던 분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공직자의 책임 문제도 크게 부각되고 있다. 27일 총리가 사의를 밝힌 것은 당연하다. 외국 순방에서 돌아온 총리가 아예 현장으로 직행해 사태 수습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상찬하고 싶지만, 사태 발생 뒤 열흘이 넘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크다. 공황에 빠진 국민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사의를 표명해야 했고, 다른 장관들도 함께 행동해야 했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이 물러나야 할 판에, 선원들이 자리를 지키는 것은 또 무슨 희극인가.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한겨레 <2014-04-27>

기사원문: [시론] 소시민이 공직자 ‘책임’을 거론해야 하나 / 이만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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