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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장에 의지해 아버지 징용된 곳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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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장에 의지해 아버지 징용된 곳 확인

사진 한장에 의지해 아버지 징용된 곳 확인

(도쿄=연합뉴스) 최낙훈(74) 씨는 일본 시민단체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도움을 받아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동원된 아버지가 일했던 곳을 찾았다. 최씨 아버지의 기록을 찾는데 단서가 된 사진. 왼쪽 끝에 서 있는 인물이 최씨의
아버지 최천호(1916년생) 씨.<<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제공>>

일본시민단체
도움받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아버지, 보고 싶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부친이 생전에 징용돼 일했던 일본 후쿠오카
(
福岡)현의 탄광을
찾아낸 최낙훈
(74)씨가 17일 현장에 마련된 제단에 눈물
젖은 술잔을 올렸다
.

그의 아버지는 1942년 일본으로 끌려가 영영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부친이 이곳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버지가 징용된 지
72년 만에, 그가
아버지를 찾아다닌 지 약
20년 만에 얻은 성과다.

이날이 오기까지
최씨의 삶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됐다
.

광복 후 징용당했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귀가했고 최씨의 가족도
추석 때 집으로 가겠다는 아버지의 편지에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행상으로
3형제를 키우며 온갖 고생을 하다 7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후쿠오카 교도=연합뉴스) 일본 후쿠오카현 미야와카시 가이지마 탄광 유적지에서 최낙훈(74) 씨가 17일 오후
부친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최씨는 아버지를
찾으려고
1990년대 초 당국에 신고했으나 별 성과가 없자 강제동원 피해자 가족,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양국을 오가며 아버지의 소식을 수소문했다.

단서는 아버지가
일본에서 집으로 보낸 사진 한 장
.

아버지를 포함해 9명이 함께 찍은 사진에협화(協和)훈련대라고 기재돼 있었고 몇몇 인물의 이름과 출신지, 주소 등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 기록을
토대로 전국을 돌았다
.

하지만, 결혼 전에 동원된 이들은 연고자가 남아 있지 않았고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최씨는 일본
후생성
, 국회, 사회보험사무센터 등을 몇 번이나 방문해 아버지의
기록을 찾으려고 했으나 모른다는 답변을 반복해 들었다
.

 

18일 일본을 방문 중인 최낙훈 씨(오른쪽)가 아버지의 기록을 찾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우에다 게이시씨(왼쪽)와
나란히 서 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제공>>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년
23차례씩 일본을 오갔고 일본 시민단체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이 모임은 최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일본 각지의 사회보험사무소 문을 두드린 끝에 최씨의 아버지 천호
(1916년생) 씨가 1942년부터 약 1
간 후쿠오카현 미야와카
(
宮若)시 가이지마(貝島) 탄광에서 일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 사진 속에 등장하는 다른 3명이 일한 기록도
발견됐다
.

최씨는 17일 가이지마 탄광 유적지에서 상복을 갖춰 입고 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

그는 이제 1945 9월 마지막 편지를 보낸 이후의 아버지의 행적을 찾는 일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

최씨는 연합뉴스에아버님을 이렇게 기록을 찾았으니 자식으로서 애쓴 보람을 느끼고 다소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국·일본 정부가 피해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지 않으니 결국에는 양국 시민단체가 협력해서 기록을 찾았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최씨의 아버지가
일한 곳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 우에다 게이시
(
上田慶司)
씨는기록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라며양국 정부가 진심을 가지고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을 피해자가 찾아내야 하느냐
고 양국 정부를 질타했다.

※연합뉴스 <2014-05-18>

기사원문: ☞ 사진 한장 의지해 징용 부친 흔적 우여곡절끝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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