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현실의 거대한 분단벽에 흠집이라도

297

[한겨레 창간 26년 특집, 새 고전 26선]
통일은 바보의 꿈이었을까

 

백범일지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돌베개(1997)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만큼 아름답지도 않다. 그저 투박하고
우직스럽다
. 역시 주인의 출신과 기질을 빼다 박은 듯 닮았다.
<
백범일지>의 문장은 평범하며 더러는 거칠다.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와 변절자, 그리고 정적들을 제거하는 장면에서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써내려간 부분에선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 그럼에도 <백범일지>는 오랫동안 사람들 손에서 떠나지 않고 고전으로 남아 있다. 왜일까. 무엇보다 조국의 해방과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제국주의 침략자 일본의 감시망과 싸운 운동가들이
직접 남겨 놓은 몇 안 되는 글 가운데 하나로
, 그 시대를 꾸밈없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삶 전체를 당대의 과제와 씨름하면서 바친 내용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기 때문일 터이다. 더러는 승리의 순간도 있었고 정치적 과오도 범했지만, 패배와 좌절을
수없이 경험하면서도 고난을 버텨낸 논픽션 실화의 진정성은 읽는 이들을 숙연하게 한다
.

<백범일지> 없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상상하기 어렵다.
<
백범일지>는 분단체제를 만들고 거기에 기생하며, 임시정부와 항일의 기억을 지우려는 세력에 맞서는 민족 정통사의 보루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고집불통의 완고한 민족주의자김구가 쓴 <백범일지>는 중국 망명 시절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장이자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산 자신의 삶에 대한 증언이다. 조선왕조의 몰락과 봉건체제의 해체, 근대국가 수립 실패와 주권 상실, 해방과 분단이라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몰락양반 가문의상놈출신으로 태어나 동학의아기접주에서
승려
, 교사, 계몽운동가를 거쳐 독립운동가로 국무령과 임시정부
주석에 오르기까지 최전선의 이야기들을
<백범일지>
생생하게 담았다
.

나의 소원에서 백범이 꿈에도 그리던 국가는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실력 행사까지 서슴지 않았던 그가 분단이 굳어져가던 시점에서 굳이 38선을 넘은 것은 조국이 두 개로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실패가 뻔히 보이는데도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다른 선택,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는 이 시도는 현실의 변화를 읽지 못한 무지 때문일까 아니면 현실의 거대한 벽에 흠집이라도 남겨 놓겠다는

바보의 꿈이었을까. 분단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사회와 사람의 마음까지 분단시켜 병들게 했다. 이 분단이
극복되지 않는 한 백범이 그렸던 온전한
스스로 서기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 바보스럽지만 그 일을 우직스럽게 만들어 나가기를 유언장은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지 않을까
.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겨레 <2014-05-14>

기사원문: ☞ 현실의 거대한 분단벽에 흠집이라도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