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대선전리품 아니다” 안전행정부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했던 박상증 목사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임명한 가운데 2월 17일 오후 서울 정동 사무실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불법임명 거부대책위’ 회원들의 박상증 목사 출근저지시위를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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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뉴스에 큰 관심이 없는 이라면, 우리나라가 민주화운동을 거쳐 민주주의를 이루어냈으니 이런 단체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만 할 뿐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를 것 같다. 나 역시 최근에 이 단체의 이사장과 이사 선임을 둘러싼 갈등이 보도되지 않았다면 큰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2월 박상증 목사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민주동지회 사무국장을 했고,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아름다운재단 이사장도 지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직원들은 박상증 목사의 임명이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박 목사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박 이사장 임명에 항의해 지금까지 이사장실에서 점거농성을 하고 있고, 안전행정부는 ‘박 이사장의 결재가 없으면 정부 보조금 지급이 불가능하다‘며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5월 15일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진을 임명했는데, 이 역시 시끄럽다. 이른바 ‘친박‘ 인사를 대거 임명했다는 것이다. 그 친박 인사라는 분들의 이력을 보자. 이일호 목사는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으로, 유신 독재에 저항한 부마항쟁의 주역 중 한 명이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198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전태일기념사업회 일을 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이다.
안전행정부는 이들을 비롯해 임기 3년의 이사 7명과 임기 2년의 감사 2명을 새로 임명했다. 이들 가운데 한기홍 대표와 송근존 오토데스크코리아 상무는 뉴라이트 단체 출신 인사로 알려져 있고, 김영일 부마민주항쟁부산동지회 이사와 이일호 교수 등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그러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이사장과 이사로 임명했는데, 왜 직원들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문제를 삼는 것일까?
그동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가 추천했다. 위원회가 복수의 이사장 후보를 추천하면 정부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임명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 박상증 목사 임명 때는 “사업회 정관과 규정에 명시된 절차를 무시“하고 “그동안 지켜져온 관행과 전통을 파기“했다는 것이 직원들의 주장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낙하산 인사‘, 민주화운동 출신으로 박근혜 정권을 지지한 데 따른 ‘보은 인사‘라는 점이다. 시민사회로부터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모욕감을 주었다“(권미옥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기념사업회를 ‘박근혜선거운동기념사업회‘로 만들려고 하느냐“(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의 ‘예스맨‘들 줄줄이 임명… 낙하산 논란 두고 볼 건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독재를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를 유신세력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연좌제와 같으므로 당연히 부당하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에 대해 여전히 긍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생 친일파를 연구한 임종국이라는 학자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친일파의 후손이었다. 그는 1960년대에 일제강점기 작가들의 친일 행적을 담은 <친일문학론>이라는 연구서를 출간했는데, 서문에 자신의 부친인 천도교 당수 임문호의 친일 행적도 밝히며 사과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친일파였다는 사실까지 밝히며 최선을 다해 연구한 그의 노력과 후학들의 가세로 우리는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역사적으로 친일파를 단죄할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이에 대해 공자의 말씀을 들며 부당하다고 할지 모른다. <논어> 자로(子路)편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하였다. “우리 마을에는 몸가짐이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 일을 증언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겨 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서 숨겨 주지만, 정직함은 바로 그러는 가운데 있습니다.”(<논어> 공자 저,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1999)
몇 년 전 학생들과 <논어>를 함께 읽을 때 이 부분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입에서 따끔한 말이 나왔다. 공자의 말이 혈연주의, 연고주의의 단초가 된다고 비판하면서, 정치인들이 이렇게 가족이나 측근을 감싸주면 비리가 터지고 부정부패가 많아져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맹자> 진심(盡心) 상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자인 동응이 물었다. “순임금이 천자였을 때 고요가 사법을 담당하는 관리로 있었는데, 만약 순의 아버지인 고수가 살인을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맹자가 대답했다. “체포했을 것이다.” 동응이 물었다. “그렇다면 순임금은 저지하지 않았을까요?” 맹자가 대답했다. “순임금이 어떻게 그것을 저지했겠느냐? 고요에게는 직책상 시행해야 할 물려받은 법이 있었다.”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순임금은 어떻게 했을까요?” 맹자가 대답했다. “순임금은 천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몰래 아버지를 등에 없고 도망쳐 바닷가에 살면서 죽을 때까지 즐거워하면서 천하를 잊었을 것이다.”(<맹자> 맹자 저, 박경환 옮김, 홍익출판사, 1999)
지도자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올바른 처신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부친을 존경하고 위하는 것이 잘못이거나 비난받을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헌법을 실현하고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하는 것이 먼저인 대통령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임종국을 배워야 하고 맹자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고요‘ 같은 이를 임명하는 것이 국가 지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이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낙하산‘이니 뭐니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민주화운동 세력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들을 임명해야 한다. 과거에는 유신반대 투쟁을 하다 이제는 대통령의 ‘예스맨‘이 돼버린 이들이 아니고 말이다.
※오마이뉴스<2014-05-19>
기사원문: ☞박근혜 대통령, 임종국과 맹자를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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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사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파행책임 정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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