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오락가락 하는 조부 독립운동 경력 관련 말들, 국가보훈처의 심사잣대는?
ㆍ“청와대, 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뭐냐” 검증시스템 도마에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가 결국 사퇴했다. 그는 사퇴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으나, 지금은 사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서”라고 했다. <주간경향>은 지난 주 문창극 지명자의 가계를 추적하는 기사를 썼다. 그리고 6월 23일, 문창극 전
지명자가 국가보훈처를 통해 조부와 부친에 관한 자료 일부를 공개했다. 문 전 지명자는 6월 24일 사퇴기자회견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라고 밝혔다. 문 전 국무총리
지명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진실은 규명되어야 한다. 6월 23일 공개된 자료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 독자에 대한 의무라고 판단, 주초에 벌어진 논란을 포함해 기사내용을 업데이트했다. <편집자
주>
논란이 되었지만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문창극 가계의 미스터리다. KBS 9시 뉴스가 공개한 문창극 발언은 거대한 논란을 촉발했다. 6월 18일, 생존항일광복지사와 광복군 후손들이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섰다. 문창극을 비롯한 친일인사들의 임명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광복운동가 후손 일동’ 명의의 플래카드를 들었다. 플래카드에는 ‘다카기 마사오 딸의 맨 얼굴인가?’라고 적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사실을 거론하며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14일만인 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진시퇴의사를 밝히고 인사하고 있다. 문창극 후보자는 자신이 일제시대 독립활동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임을 강조했다. | 김창길 기자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모양새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외국 순방에서
돌아오기 전에 정리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방침이었다. 구체적으로 밝히진 못하겠지만 여러 경로로 입장을 전달했다. 그런데
문 지명자가 거부했다. ‘안 한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끌어내 창피를 준 것 아니냐. 절대 스스로 물러나지는 못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관계자는 KBS가 방영했던 교회 강연 영상 등은 사전에 스크린되지
못한 것이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대해 “그게 사전에 검토되었다면 총리 후보에 올랐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박근혜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큰 구멍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다.
문 지명자 부친 성함 불명확한 이유는
<주간경향>의
취재 결과 구멍은 또 있었다. 문 지명자의 가족과 인척관계에 대한 조사다. 문 지명자는 자신의 세 딸을 제외하고 가족에 대해 밝힌 적이 거의 없다. 총리
임명 전 문 지명자는 주변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1948년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숙청된 뒤 만삭의 몸으로 월남해 나를 낳았다”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 지명자가 중앙일보에 게재한 칼럼을 묶어 2008년에
펴낸 단행본 <문창극 칼럼>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1948년 가을 나의 아버지는 만삭인 어머니와 함께 일가를 이끌고 38선을 넘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 나는 이 자유의 나라에 들어서자마자
탄생할 수 있었다.” 언론들은 그의 뼛속 깊은 보수성향과 관련, ‘4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이라는 그의 발언을 근거로 삼았다. 그런데 5대째 기독교 집안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 교계 인사는 “그 점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말. “한국 기독교의 전래과정을 보면 통상적으로 1884년
로스 선교사가 서간도에서 한국사람 75명에게 세례를 준 일이나 알렌 선교사의 활동을 기원으로 보는데, 그때부터 아무리 세어봐도 4대,
5대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 지명자의 말대로라면 극초기 기독교를 받아들인, 말하자면 뼈대 있는 기독교 집안이라는 이야기인데….”
문 지명자의 가족 내력이 주목을 끄는 이유다. 문 지명자의 부친 성함은
명확하지 않다. 문기호(文基鎬) 또는 문기석(文基錫)씨다. 과거 신문을 찾아보면 문 지명자가 1976년 12월 13일 부인 채관숙씨와 결혼한다는 동정 단신이 나온다. 당시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중앙일보 기자 문창극씨는 아버지 문기호(文基鎬)씨의 장남이다. 그런데 다시
1989년 1월 18일 그의 아버지 부음 소식이
다른 신문에 실려 있다. 이때의 이름은 문기석(文基錫)이다. 미국 LA에서 발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 사이 문 지명자의
아버지가 어떤 이유여서든 미국으로 건너간 것을 알 수 있다. 이름이 다르게 나온 것은 당시 부음을 담당하는
동정기자들이 ‘호’자와 ‘석’자의 한자를 혼돈해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부음 기사에는 아버지
문기석씨의 소천 당시 연세가 실려 있다. 76세다. 다시
말해 아버지는 1913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때의 보도가 만
나이로 표기 되었을 경우 문 지명자의 아버지는 1914년생이다. 문
지명자가 6월 22일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제적등본에는 부친의
성함은 문기석(文基錫)이며,
1914년으로 표기되어 있다. 제적등본에 기록된 사망지는
‘미합중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라팔마시의 라팔마 병원’으로 되어 있다.
문 지명자 조부 독립유공자 맞을까
6월 23일, 조선일보 인터넷판은 “문씨의 조부가 독립유공자 문남규(文南奎) 선생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오보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1921년 평북 삭주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진 문남규 선생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고 만 이야기했지, 문남규 선생의 원적지가 확인되었다고 하지 않았다”라며 “관련해서 일부 언론이 잘못 보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문 후보자의 부친 문기석씨의 제적등본을 보면 ‘평안북도 삭주군 삭주면 서부동’에서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부친의 성함, 즉 문 지명자의 할아버지 성함이 ‘문남규(文南奎)’인 것은 나와 있으나 언제 사망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후보자가 “부친 문기석이 7세 당시 조부 문남규가 사망했다”고 진술한 내용이 독립신문 1921년 4월 9일자의 문남규 순국년도와 일치한다”며 그 근거를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동일인으로 추정하는 근거로 이외에도 ① 제적등본에 기재된 조부의 성함과 독립신문에 게재된 한자까지 동일 ② 독립유공자
문남규의 전사?순국
지역과 후보자 조부 문남규의 원적지가 평북 삭주로 동일 ③ 제적등본 상 1931년 후보자 부친 문기석의 호주 상속 당시 조부 문남규가 사망한 상태이므로, 1931년 이전 사망 확인 등을 들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의 ‘동일인 추정’은
성급한 결론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오후 반박자료를 내고, “독립신문의
해당 기사는 당해년도에 벌어진 사건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회고’의
성격을 가졌고, 전후 맥락으로 보아 독립유공자 문남규 선생이 순국한 년도는 1921년이 아닌 1920년으로 추정 된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대한독립단의 활동이 만주지역 단체의 국내 진공 활동이기 때문에 평북 삭주에서 순국한 문남규 선생의 원적지가 평북 삭주로 볼 근거는 없다”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밝혔다.
<주간경향>이
검토한 독립신문의 해당기사에서 문남규 선생이 언급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또 모지방기관으로부터 출동된 토벌대장 주○○씨 이하 일 소대는 전국내를
통하야 토벌하기로 계획을 정하고, 출동한 바 삭주군에서 적군과 개벌되야 기개의 적을 참하고 다소의 승리를
득하였스나 종군하였든 이선찬 문남규 양씨가 순국하다.”
이에 따르면 문남규 선생은 대한독립단의 토벌대 일원이었으며 삭주군에 ‘출동’하였다가 사망하였다. 문맥으로 따져보았을 때 삭주군은 ‘전투장소’일 뿐이지, 실제
문 선생이 삭주군 출신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이런 사정은 2010년
문남규 선생에게 애국장을 수여할 당시의 공훈록에도 반영되어 있다. 공훈록에 게재된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는 ‘미상’으로 되어 있으며, 운동계열도 ‘만주방면’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국가보훈처가 6월 23일 보도자료로 배포한 문남규 선생의
공훈록에는 이 출생지와 운동계열 정보는 빼놓고 게재하지 않았다. ‘동일인물이 맞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대목은 생략한 채 공훈록을 공개한 것이다. 문
지명자를 구하기 위한 성급한 공개가 아니냐는 의혹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문남규 선생과 비슷한 시점에 독립유공자 조사를 받았던 한 유공자 후손은 6월 23일 <주간경향>에 “실제 국가보훈처의 유공자 후손 인정과정에서 많은 시일이 소요되었고 또 여러 관련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제적등본이나 족보 뿐 아니라 주변인 증언 등 여러 가지
증빙자료를 바탕으로 수개월 동안 진행되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국가보훈처가 “동일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근거는 문 지명자가 6월 22일 제출한 제적등본과 부친으로부터 ‘7살 때 조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는 전언이 전부다. <주간경향>의 취재결과 족보 등 기타 증빙자료는 현재까지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문 전 지명자의 조부 관련 ‘전언’의 내용은 또 바뀌었다. 6월 24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문 전 지명자는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만세를 부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가족사를 아버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진 1919년 사망한 것으로, 대한독립단 활동으로 순국한 문남규 선생과는
무관해진다.
만약 조부가 대한독립단 활동을 한 문남규 선생이라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4대 혹은 5대째 기독교 집안’이라는
문 전 지명자의 설명과 어긋나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대한독립단은 의병운동계열의 인사들이 3.1운동 이후 결성한 단체다. 복벽주의(復壁主義)를 이념으로 하는 단체로 기독교보다는 유생이나 민족종교에 가까운 성격을
지녔다. ‘대한독립단’ 활동과 관련한 연구서들을 보더라도
유교이념에 충실한 구세대와 ‘민국’을 강조한 공화파 신세대의
대립은 있었지만, 기독교 영향을 받은 인사에 대한 기록은 없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유공자 인정, 후손 여부를 검토하는 보훈심사위원회는
상설기구이지만, 문 지명자만을 위해 위원회를 열 수는 없기 때문에 실제 자료보강 요구 등을 거친 심사에
올라오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일 것”이라며 “문 후보자
측에서 담당 부서에 알아봐달라고 비공식적인 경로로 요청한 것은 6월 중순 무렵이며, 제적등본 자료를 제출한 것은 6월
22일”이라고 밝혔다.
문 지명자는 남평문씨다. 문 지명자가 제출한 제적등본에도 본(本)은 남평 문씨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평문씨가
발간한 종친회보에는 문재인·문희상 의원 등 남평문씨가 배출한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인 명단에도 대기자, 주필까지 거쳤건만
문창극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주간경향>은
남평문씨의 대종보와 각 파별 족보를 검토해봤다. 하지만 문씨 부자의 이름은 역시 족보에 나오지 않는다. 한자는 고사하고, 한글 이름으로도 1913?14년생 문기호 또는 문기석씨는 찾을 수 없었다. 창극이라는 이름은 더욱
발견하기 어려웠다. 왜일까. 남평문씨 대종회 관계자는 “문 지명자가 평북 삭주 출신이라고 알려졌는데 특히 그쪽 출신 중 누락된 경우가 많다”며 “정확한 파를 모르면 본인 스스로 종친회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
한 우리로서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문씨 부친의 창씨개명설, 월남 후 서북청년회 등 반공활동
관련설 등이 나오는 이유다. 평안북도 삭주에 기독교적 전통이 뿌리 깊은 것은 사실이다. 1896년도에 삭주읍 교회가 설립되었다. 기독교가 최초로 전래된
지 10여년 뒤다. 기록을 보면 나조(eck George·나조주), 램프(H.w.Lamp·남해리) 선교사가 지도 선교사로 이 교회에 있었다. 문 지명자의 조부나 부친도
이 교회의 출석자였을까. 하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교회 설립자 명단이나 장로 명단에 문씨와 직계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은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되지는 않지만 문 지명자의 가계가 ‘기독교 전통의 뿌리’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문 지명자 가족이 월남한 뒤 충북 청주의 탑동 양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주
탑동 양관은 구한말과 일제시대 선교사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문씨 일가가 월남 후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양쪽 선교사와의 인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주 탑동 양관은 현재 충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67년부터 기독교재단인 학교법인 일신학원이 인수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신학원 관계자는 “우리가 인수하기 전의 소유관계는 현재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문씨 부자, 남평문씨 족보에 없는 까닭은
문씨가 총리에 내정되면서 동생이 출석한 교회도 구설에 올랐다. 팟캐스트
트위터매거진 ‘새가 날아든다’는 “문씨 동생이 유병언 구원파에서 갈라져 나온 박옥수 구원파의 장로”라고
보도했다. 기쁜소식선교회 측은 세월호 사건 직후 구원파 논란이 불거지자 “우리 선교회는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측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강남 도곡동에서 내과를 개원하고 있는 동생의 과거
인터뷰를 보면 2005년까지 미국에서 개업의로 활동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미국식 주치의제를 도입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 거주했던 아버지는 동생이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처가와 관련된 구설도 나왔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1974년 졸업한 부인 채씨는 TBC 아나운서 활동을 하다 문 지명자와
결혼했다. 아이를 낳고 쉬던 채씨는 1983년 KBS 2TV에서 방영하던 ‘여성백과’의 유아교육 시간으로 아나운서에 복귀해 활동한 전력이 있다. 문 지명자의
처남 회사와 신세계가의 ‘인연’이 의혹 대상에 올랐다. 처남 채모씨(61)는 통상회사 ‘항주’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 회사가
1990년대 후반부터 트렌드북이라는 이름으로 여성화 매장을 신세계에 입점하고 있는 것이 구설에 올랐다. 항주 관계자는 “신세계뿐 아니라 롯데, 갤러리아 등에도 트렌드북이 입점해 있다”며 “언론 보도를 통해 대표와 문창극 지명자의 관계에 대해 알았지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총리 인사청문회 준비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6월 19일, 문 지명자의 가족관계 사항이 체크되었느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인사청문
자료가 넘어오기로 한 날짜가 오늘(19일)이었는데 아직 넘어오지
않았다”며 “<주간경향>이 제시한 인적사항이나 관련 논란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4-07-01>주간경향 1082호
☞기사원문: 여전히 남는 문창극 가계 관련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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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문창극은 물러났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
☞아시아경제: 10년 된 독립유공자 서훈 대기자도 있는데..심사위 없이 3일만에 추정 발표
☞ 한겨레: 문창극, 정말 독립유공자 후손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