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을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지방정부까지 나서서 과거사 은폐를 하고 있다. 일본 나라(奈良)현 덴리(天理)시 당국이 지난 4월 중순경 시립공원에 세워져 있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역사를 설명한 안내판을 몰래 철거한 것도 이러한 사례의 하나이다.
이 안내판은 태평양전쟁 말기 비행장 건설에 강제동원되어 비참한 환경 속에서 모진 고통을 겪었던 조선인 노동자와 ‘위안부‘의 희생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95년 일본의 시민사회와 덴리시 그리고 교육위원회가 뜻을 모아 함께 세웠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겸 시민운동가 가와세 슌지씨가 점차 세를 확대하고 있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우려하면서,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갑자기 안내판을 철거해 버린 덴리시 당국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을 한국의 민족문제연구소로 보내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사건을 최근 일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침략전쟁 미화와 전쟁범죄 흔적 지우기의 일환으로 보고,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전문을 번역해 사건 개요와 경위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와세 슌지씨는 집단적 자위권 반대운동과 원전반대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을 추진하고 있는 ‘재일조선인단체사전‘의 집필위원이기도 하다…. <기자 말>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나라현 덴리시에는 ‘야나기모토 비행장‘ 건설공사에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남성들과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조선인 여성들이 있었다.
야나기모토 비행장은 일본 해군 시설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본토에서 결전할 것을 대비하여 2년여간 공사해 패망 직전에 완성됐다. 일제는 이 비행장 건설 공사에 3천여 명의 조선인 남성을 강제로 동원했다. 또, 군의 관할지 내에는 조선에서 끌려온 여성 약 20명이 일본군 ‘위안부‘로 혹사 당한 위안소가 설치돼 있었다.
덴리시, 20년간 있던 조선인 강제동원 안내판… 4월 어느 날 몰래 치워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후세에 알리기 위해 1995년 덴리시에 사는 시민과 역사학자, 사회운동가들은 힘을 모았다. 일본 시민사회는 덴리시와 시교육위원회와 함께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를 기술한 안내판을 만들었고, 시립공원에 이를 세웠다. 그런데 올해 4월에 덴리시는 돌연 이 안내판을 철거했다. 20여 년간이나 세워둔 이 안내판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철거한 것이다.
“왜 철거했느냐“고 묻자, 덴리시는 “안내판에 대해 항의하는 메일을 몇 통 받았다“고 답변했다. 시 당국으로 온 민원 메일에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역사는) 오욕의 역사이다“,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을 써놓았다“는 의견이 쓰여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덴리시 당국은 “안내판에 쓴 내용은 시 당국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나라현의 시민운동단체들은 “시 당국이 역사를 은폐했다“고 규탄하면서 안내판을 원래대로 복구하여 시립공원에 다시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덴리시의 과거사 은폐를 규탄하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도록 촉구하는 항의집회도 개최했다.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일본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설치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로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여성 피해자에 대한 역사를 적은 안내판은 오직 덴리시에만 있었다.
이 안내판을 보기 위해 1995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덴리시 현지를 방문했다. 또 덴리시에 사는 주민이나 역사가가 관광객에게 조선인을 동원한 일본의 가해 역사를 설명하거나 고장을 안내할 때도 도움이 되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한 일본의 역사를 직시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야나기모토 비행장은 어떤 곳이었는가? 이 비행장은 일본군 구해군인 ‘야마토(大和) 해군항공대‘의 기지였는데, 태평양전쟁 때 오사카 해군시설부가 ‘오바야시구미(大林組, OBAYASHI CORPORATION ; 건설회사)’에 공사를 발주하여 1943년 9월부터 비행장 공사를 했다.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까지 1500m에 이르는 활주로를 닦았다. 비행장의 정식명칭은 ‘야마토해군항공대 야마토기지‘이지만,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소재지 지명을 따서 야나기모토 비행장이라 부르고 있다.
일본군은 전쟁 당시 이 비행장 건설공사에 근로봉사란 명목으로 덴리시에 살던 일본인 학생과 주민을 동원했으며, 노동력이 부족하자 조선인까지 강제동원했다. 게다가 경상남도에서 조선인 여성을 동원하여 야마토해군의 관리구역 안에 설치한 위안소에 가둬놓고 ‘성 노예‘로 삼았다. 조선인 남성과 여성 들은 도망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일본이 패전한 후, 해군과 오바야시구미는 그나마 조선인 남자들을 오사카에서 열차에 태워 부산과 연락선이 있는 시모노세키까지 보냈지만, 위안부로 삼았던 조선인 여성들은 그대로 방치헸다.
일본군 위안소는 ‘군 위안소‘와 ‘기업 위안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야나기모토 비행장에 있던 위안소는 ‘기업 위안소‘ 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군이 관리하고 기업이 운영에 관여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 위안소‘라 할지라도 해군의 명령에 따라 위안소를 설치하고 운영했으니 직접적 가해 주체는 군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중시해야 할 부분은 강제성과 인권유린 등 반인도적 전쟁 범죄이지 운영 주체가 어디인가는 2차적 문제다.
▲ 철거하기 전의 야나기모토비행장 건설공사 조선인 강제동원 안내판
야나기모토 비행장 위안소 실상… 피해자 다섯 명 증언으로 알려져
그런데 문헌 자료가 일체 남아 있지 않아 그간 야나기모토 비행장에 있던 위안소의 실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강제동원 피해자들 가운데 다섯 명이 증언하여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위안부‘로 끌려온 여성은 20명 남짓이었는데, 극한 상태에서 군사용 메틸 알코올을 마시며 배고픔을 견디었다고 전했다. 이에 근처에 사는 재일조선인 남성이 이 소식을 듣고, 여성들을 구출하여 자기가 사는 동네에 약 1년간 숨겨줬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은 결국 병에 걸려 사망하였는데, 이 재일조선인이 숨진 여성의 고향 경상남도 통영으로 유골을 보냈다고 한다.
이 내용은 필자가 1970년대 초반에 저널리스트로 일할 때, 직접 이 재일조선인을 인터뷰하여 들은 사실이다. 참고로 통영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여성이 가장 많은 지역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한편, 강제동원된 조선인 남성들이 누구였는지는 아직까지 다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이 패전한 후, 군이 관련 서류를 불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2년에 우연히 충청남도 논산에 사는 두 사람이 강제 동원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연락했고, 그해 가을에 그들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와 피해 사실에 대한 증언을 남겼다.
그 후에는 한국정부가 진행한 강제동원피해자조사 결과를 보고 방한하여 야나기모토 비행장 건설공사 강제 동원 피해자 4명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간 문헌자료가 없어진 가운데서도 필자를 포함하여 덴리시에 사는 시민운동가, 역사학자들은 계속해서 피해자를 만나 증언을 정리하여 역사의 공백을 메우고자 노력해 왔다. 이렇게 장기간 조사를 계속해 온 성과를 반영한 것이 바로 안내판이었다.
지난 1995년 시립공원에 안내판을 설치한 뒤, 19년간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역사학습, 인권학습의 장으로 활용해 왔었다. 가로×세로 80㎝에 불과한 작은 안내판이지만, 그 역할은 매우 크고 소중했다고 본다.
갑작스러운 안내판 철거소식을 들은 일본의 시민사회는 덴리시에 있는 지역의 시민운동단체를 중심으로 ‘야나기모토 비행장 안내판 철거를 생각하는 모임‘을 꾸려, 시 당국에 안내판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라고 요구했다. 또 덴리시 시장에게 철거 경위를 밝히라는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자 덴리시는 7월 9일자 답변서에서 “역사인식이 다양할 수 있는데, 시의 견해로 강제성을 밝히는 것은 부적당하다“면서 “일본정부가 역사연구를 하고 검증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 마디로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가해의 역사를 부정한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은폐하는 배경이 도대체 무엇인지 덴리시 당국에 묻고 싶다.
아마도 덴리시 당국이 안내판을 철거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베 정권의 방침일 것이다. 2007년 1차 아베 정권은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사료) 기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강제연행 사실을 무시한 바 있다.
일본의 시대적 분위기에 대항, 민중운동 끈질기게 추진할 것
조선을 비롯해 아시아를 침략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은폐하려는 ‘역사수정주의‘가 이제는 지자체로까지 뻗치고 있다. 더욱이 “일본정부가 역사연구를 하고 검증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답변을 볼 때 파시즘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가 표방하는 역사관을 이제 지자체도 군말 없이 그대로 따르겠다는 게 현재의 실상이다. 일본의 시민들은 이런 사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앞으로 ‘야나기모토 비행장 안내판 철거를 생각하는 모임‘은 이러한 일본의 시대적 분위기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을 끈질기게 추진할 것이다. 아시아 민중과 함께하면서 역사의 진실을 꼭 찾도록 하겠다.
이 운동에는 일본에서는 ‘나라지역 역사를 발굴하는 모임‘, ‘나라지역 다문화 공생 포럼‘ 등 크고 작은 50여 개 단체, 한국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를 포함하여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가 함께 하고 있다. 한국의 뜻있는 시민들이 더 많은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기를 기대해 본다
<2014-08-1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 위안부 안내판 몰래 철거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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