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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단자위권 행사땐 우리가 가장 큰 피해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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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힘써온 서승 리쓰메이칸대학 특임교수(왼쪽부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이룰태림(성유보)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이 85일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좌담에서 세 사람은남북한 교류 증진과 동북아 시민연대가 동아시아에서 전쟁 가능성을 막는 방파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싱크탱크 광장] 청일전쟁 120주년에 맞는 ‘갑오년 8·15’ 좌담

다시 광복과 분단의 8·15가 다가온다. 올해 8·15는 ‘갑오년의 8·15’라는 점에서 어느 해보다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를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현재 국내외 정국이 바로 120년 전인 ‘1894년 갑오년’ 상황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땅에는 보국안민과 척양척왜를 내세운 갑오농민혁명이 들불처럼 번져갔지만, 조선 조정은 청나라를 주둔시키고 일본을 끌어들여 자기 백성들의 목소리를 폭력으로 제압했다. 하지만 이 땅에 들어온 청나라와 일본은 곧 청일전쟁을 벌여 우리의 터전을 전쟁터로 만들었고,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조선 침략을 더욱 노골화했다.

120년이 지난 오늘 한반도는 다시 소용돌이치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세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 일본과 중국의 대립, 미국의 패권적 군사전략, 남북한의 대결 양상 등이 동북아의 긴장을 한껏 높여가고 있는데, 그 충돌 위험이 고스란히 한반도에 쏠리는 양상인 것이다.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겨레평화연구소가 평화·통일 시민단체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사장 이룰태림)와 함께 올해 8·15의 의미를 살펴보는 특별좌담을 마련했다. 오랫동안 친일청산 문제에 힘써온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한·일 평화세력의 연대를 주장해온 서승 리쓰메이칸대학 특임교수가 자리를 함께했다. 좌담은 8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이루어졌으며, 사회는 이룰태림 이사장이 맡았다.


구한말 상황과 비슷하고 다른 점은

이룰태림(이하 이룰) 광복 69주년이 곧 다가오는데 한반도가 자칫하면 구한말의 전쟁터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 시대와 지금 현재 비슷한 점이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지, 그 시대의 고난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등을 정리해봤으면 한다.

임헌영(이하 임) 우선 일본의 경우, 해석개헌은 성격은 다르지만 개정판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 불릴 만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러일전쟁 직후 미·일이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한 것이다. 일본의 해석개헌은 미국과 일본이 힘을 합하면 못할 게 없다는 오만이고,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다.

서승(이하 서) 가쓰라태프트 조약은 비교적 대등한 입장에서 미·일이 나눠먹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미국이 허용해준 것은 일본의 종속적 성격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에서 당시와는 크게 다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는 일본 군국주의의 최성기였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주변화돼서 동아시아 중심 위치에서 밀려나고 있다. 아베 정권의 일본이 우경화 차원을 넘어서 군사대국화, 군사주의로 치닫는 것은 그때에 대한 향수도 크게 작용했다.

현 상황에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가 그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어떤 전쟁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우리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다. 이 문제는 아마 우리 후손들을 두고두고 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먼 나라 얘기처럼 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언론과 정치인은 일본 정치인들이 어떤 말을 하면 그것을 망언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정치인들에게는 망언이 아니라 본심이다. 그 마음속에는 사실 훨씬 더 큰 침략 야욕이 숨어 있다. 우리는 망언이란 표현을 통해 이런 일본 우익의 야욕을 제대로 간파해오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제 망언이라는 말은 안 쓰면 좋겠다. 오히려 그것이 일본 우익의 속셈이구나 하면서 일본의 야욕을 직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일본은 미국이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고, 외교권도 미국의 지도 아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미국의 속국이다. 따라서 집단적 자위권 문제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뿐 아니라 시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는 군사 문제에 용병으로 일본군이나 한국군을 실제 사용하겠다는 의도도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일본도 이것을 기회로 삼아 독자적으로 군사를 키우려 할 것이다. 동상이몽이다. 하지만 주일미군이 존재하는 한 일본이 독자 군사행동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미국이 일본 해석개헌 허용한 건

‘제2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같아

일본 문제에 남북 한목소리 내고

동북아 시민 연대로 평화 지켜내야

19세기 말과 달리 지금의 전면전은 한 국가의 100년 정도의 경제 성취를 파괴할 정도로 엄청난 상처를 남긴다. 그런데 일본 우익들은 그것을 다 알면서도 옛날 전쟁 시대를 그리워한다. 그들은 해마다 8·15가 되면 훨씬 좋은 옷감이 많은데도 옛 군복을 꺼내 입고 야스쿠니를 향해 행진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 하는 데는 목적이 있다. 어쨌거나 미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뭔가 위기를 조장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 가장 큰 희생자는 우리나라다. 그것을 국민들이 깨달아야 한다.


동북아에서 중국 변수 어떻게 봐야 하나

이룰 구한말 당시와 지금을 비교할 때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중국의 부상이다. 그때와 달리 중국은 세계가 주요 2개국(G2)이라 부를 정도로 성장했다. 미국도 중국이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을 전제하고 세계 전략을 짜고 있다. 동북아에서 이 중국 변수를 어떻게 봐야 하나?

근본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즉 중국도 사회 제국주의, 즉 소셜 임피리얼리즘과 비슷한 것으로 봐야 한다. 2차대전 때 독일에서 나타났듯이 대내적으로는 복지를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속성을 띠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국 이기주의 국가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다. 중국은 세계사나 동아시아사에 문명을 위주로 한 평화주의라는 기여를 했다. 근대 이후에는 우리와 똑같은 침략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따라서 현재 남북 대치 상황에서 볼 때 중국은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서승 리쓰메이칸대학 특임교수


군국주의시절 향수 크게 작용한 듯

지배레짐 깨면 평화 발신지 가능

남북 신뢰 있어야 한반도 평화 도래

교류, 화해, 협력으로 신뢰 구축을

현재의 오키나와에 위치한 류큐왕국도 명나라 초기에 일본에 병합될 때 끈질기게 저항했다. 중국과의 조공관계에서는 군대를 주둔시키지는 않았고, 경제적 수탈도 하지 않았고, 조공무역에서는 오히려 류큐가 큰 이익을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많은 인구, 풍부한 자원, 오랜 역사가 있는 나라이다. 이런 중국더러 구석에 처박혀 있으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얘기다. 중국의 대국화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미국처럼 군사패권국가가 되지 말라고 중국에 조언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돌아온 한반도 열강 각축 시대

이룰 이제 한반도로 돌아와보자. 한반도를 둘러싸고 다시 열강이 각축하는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데, 정작 남북한 관계만은 광복과 분단이 함께 찾아왔던 69년 전과 변화가 거의 없다.

한국만큼 평화와 관련해 구체적인 목표가 뚜렷한 곳이 없다. 우선 평화의 바탕은 그 사회의 민주화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독재 치하에서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경우에도 군에서 맞아 사람이 숨지는 것과 총체적 부실과 비리를 드러낸 세월호 사건 등을 보면 명확하다. 그 외에는 나라마다 다 평화의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절박한 평화의 문제는 일본의 침략주의를 잠재우는 것과 남북한이 전쟁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 정부가 민족의식이 있다면, 일본이 독도 문제와 관련해 억지를 부릴 때, 남북한이 8·15에 맞춰 공동성명을 내자고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 대화도 안 하고, 일본보다도 더 왕래가 없는 상태를 만들어놓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에서 가장 비평화적인 것으로 이데올로기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이데올로기 문제는 미국이 후진국들을 약탈하기 위해 만든 장치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라는 현실은 남북이 그 허망한 이데올로기를 넘어 하나의 목소리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감한다. 평화는 신뢰에서 온다. 신뢰가 있으면 총을 가지고 있어도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신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이 소통하고 교류해야 한다. 서로가 자주 봐야 바뀔 것은 바뀌게 된다. 관광도 좋고, 골프 치러 가는 것도 좋으니까 소통과 교류가 시작돼야 한다.

 

아시아 평화에 시민사회가 할 역할은

이룰 두 분 말씀에 동의한다. 한반도에서도 화해의 기운이 퍼지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톨레랑스가 나와야 한다. 우선 남북한이 통일에 앞서 화해, 교류, 공존, 협력 등 더불어 사는 조건을 상당히 형성하면서 서로를 인정해나가는 폭을 넓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평화나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시민사회나 국제 지식인 사회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동북아 정세가 120년 전하고 비슷하게 흘러간다 하더라도, 그때와 가장 다른 것은 시민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남쪽의 경우에는 군사독재, 친일세력에 대항해 1960년대부터 민주화운동, 시민운동이 꾸준히 일어났고, 그 체험이 확산돼 왔다.

일본이 동아시아의 잠정적인 평화마저도 위협하고 있지만, 그나마 현재의 동아시아 시민들이 19세기와는 다르다는 데서 희망을 찾는다. 그 당시는 동아시아 전체가 왕조체제였지만 지금은 형식적으로나마 시민의 시대다.

일본의 집권세력과 지배계급은 정복과 피지배의 관계를 중요시하겠지만, 일본 시민사회에는 평화세력이 다수 존재한다. 그들과 연대하면서 그 힘을 더욱더 크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시민의 힘이 더 커지면, 일본 지배층이 침략을 꿈꾼다 해도 120년 전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국이나 북한에는 아직 시민계층이 형성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동아시아 상황이 120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에서 구체적인 과제를 가지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연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거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지배 레짐을 깨뜨린다면, 동아시아는 오히려 세계 평화의 발신지가 될 수 있다.

이룰 동아시아에서 제일 큰 문제 중 하나가 전란시대를 겪어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아시아인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풀뿌리 평화운동이나 풀뿌리 통일운동을 강화하고 연대함으로써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에서 벗어나면, 현재 동아시아 시민들이 120년 전 조선 농민들이 못 이룬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리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2014-08-12> 한겨레

기사원문: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땐 우리가 가장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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