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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자들 “아픈 과거 똑똑히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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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벌써 69주년인데피해자들 대부분 여전히 고통 속에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내가 군에 입대해서 3년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려니까전쟁이 났는데 무슨 제대냐는 거야. 그래서 제대를 못 하고 바로 동남아로 파견됐지


 


김종민(96) 씨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네가 전쟁터로 가지 않는다면 가족들을 모두 만주로 보내 노역을 시키겠다는 일본의 협박에 동원명령을 속절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남아의 전쟁터에 도착한 김 씨는 가족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비참한 현실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섬에 도착했는데 얼마 안 있어 미군이 보급로를 차단했어. 식량 보급이 안 되니까 소나 말 같은 가축도 다 잡아먹고 나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초근목피‘, 말 그대로 풀뿌리 이런 것들을 캐 먹으면서 전쟁을 했지. 열대지방이니 열병도 무서웠어. 앓으면 1주일 내로 죽어. 다 죽어 나왔어. 이 병에 걸리면 오줌이 새카맣게 나와


 


하루 3번씩 300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을 퍼붓는 통에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김 씨는 폭격 때문에 땅속에 파묻혀 2시간을 갇혀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적도 있었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치아와 척추가 다 망가졌다.


 


김 씨는 자신을 전쟁터로 끌고 온 일본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자신도 살아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일본이 밉고 그런 게 그때 당시에 어디 있어. 그저 살아야 하니까, 살아서 (고향으로) 가야 하니까 싸웠던 것이지


 


6년이란 세월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이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을 만큼 몸은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이상희(85) 씨도 17살 되던 해 일본에 강제동원됐다.


 


우리 집이 당시 머슴을 대여섯 명이나 둘 정도로 잘살았어. 그런데 느닷없이 일본인들이 집을 휩쓸어서 놋그릇같은 것들, 귀중한 것들을 몽땅 다 가져갔지. 그때부터 일본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았어


 


이 씨는 아랫마을의 지인이 자랑스레나는 일본에 징집돼 싸우러 간다고 말하는 데 화가 나 다툼을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유치장에서 곧바로 강제동원돼 훈련소로 끌려갔다. 가족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할 틈도 없었다.


 


나는 훈련소에 들어간 지 얼마 안 있다가 해방이 돼서 전쟁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그때는 온통 다 전쟁터였으니까나는 나고야 훈련소에 있었는데 매일 폭격기가 날아와. 그럼 각자 피했다가 다시 모이는 거야. 나는 지금도나고야라고 하면 이가 갈려


 


김 씨와 이 씨는 우리 정부와 일본의 진정성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 의지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씨의 경우 군 복무와 강제동원 기간을 합쳐 약 10년 동안이나 가정을 돌보지 못하면서 입은 피해가 너무 컸다.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받을 때까지 빚더미에 허덕여, 수년 전에는황혼이혼까지 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살아남은 피해자들을 위해 제대로 쓰지 않은 것 같아. 대통령에게 청원도 많이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어. 일본도 다시 사과를 해야지. 다시 책임을 지겠다고 해야지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 씨는 후손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우리가 그렇게 고생을 한 것들을 후손들은 아마 잘 모르겠지. 그러니까 학교나 이런 데서 똑똑히 배워서 일본 애들이 어떻게 하나, 정치인들은 정치라는 걸 갖고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것들을 연구했으면 좋겠어


 


학계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수를 1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2004년부터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신고받은 인원은 모두 22 6,000여 명(군인·군속·노무자·위안부 등)으로, 이 중 21만여 명이 피해자로 인정됐다.


 


2007년 제정된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토대로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만을 대상으로 지난해 6월까지 위로금 신청을 받았는데, 신청 건수가 11 2,000여 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급 대상이 된 것은 6 9,000여 건뿐이었다.


 


예금 증서 등 직접적인 증명 자료가 없으면 징용에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는 보상을 받기 힘들어 피해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 , 피해자로 인정받았더라도 보상 수준이 높지 않아 생활고를 겪는 사람들도 다수다.


 


자신의 가족이 강제동원 피해자라는 것을 모르거나 증명할 자료나 방법이 없어 신청하지 않은 유족까지 포함하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이들은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단법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이영웅 이사는우리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일본으로부터 적절한 사과와 보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현재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을 끌려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한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는 판례가 계속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소송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연구원은노무현 정부 이후 보상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아직 피해자들의 요구에 합당할 만큼 보상이 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은 상황이라며정부가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08-15> 노컷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피해자들아픈 과거 똑똑히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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