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의 이인호 씨 KBS 이사
추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극우세력의 언론 장악은 망국의 전조
되풀이
되는 인사 참사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늘 긴급회의를
열고 이인호 아산재단 이사장을 KBS의 새 이사 후보로 추천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호선 규정에 따라 이 씨가 KBS 이사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 정권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사 방침을 일관되게 고집하고 있다. 그것은 가장 부적절한 인사를 용케도 골라 절대
앉히지 말아야 할 자리에 앉힌다는 아이러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도 그런 경향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과
같이 정반대 방향의 청개구리 인사 일색은 아니었다. 교육에는 반교육적,
통일에는 반통일적, 인권에는 반인권적, 언론에는
반언론적인 인물을 기용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거의 철칙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숱한 총리 장관 후보가 낙마한 인사 실패도 이 정권에게는 전혀 교훈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국회 동의나 청문 절차가 없는 고위 공직 인사는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수준 이하의 저질
인사를 중책에 기용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극우세력의 대대적인 권력 핵심부 진입이다.
최근 공직 후보의
필수 스펙에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외에 뉴라이트 출신이 추가되었다는 소문이 널리 유포되고 있다. 낙마한 이들은 차치하더라도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권희영 한국학대학원장,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저지투쟁으로 출근도 못하고 있는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등 그 면면이 낯익다. 하나같이 친일 독재를 미화하고 역사왜곡에 앞장서는 뉴라이트 관련자들인 것이다.
여기에 또 이인호 씨가 이름을 보탰다. 이인호 씨가 누구인가. 민주정부와 독재정권을 드나들며 양지만을 두루 밟은 인물로, 최근에는
노구를 이끌고 몸소 친일 독재 미화의 선봉에 서 역사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인물이 아니던가.
그는 2006년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일으킨 이른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한 교과서포럼과, 이를 주축으로 2011년 설립된 한국현대사학회의 고문을 지낸 뉴라이트
계열의 원로 중 한 사람이다. 2007년에는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제정해 기념하자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의
공동준비위원장을 지냈으며,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백범 김구에 대해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한 사람”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청와대 원로초청 오찬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역사다큐 『백년전쟁』에 대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했다. 이런 역사왜곡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고자질해, 연산군 때 사초 문제로 사화를 일으킨 간신 유자광을 방불케하는, 원로학자로서
있을 수 없는 망발을 자행했다.
교육주체는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당했던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파동 때는, 원로 기자회견을
주도해 교학사 필자들을 옹호하고 다른 교과서 필자들을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전위대 역할을 기꺼이 자임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역사인식과 관련해서는 더욱 엽기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문 씨의
망언으로 국민적 비판 여론이 일고 있던 당시, <TV조선>에
출연해 “(문씨의) 교회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 “(문씨가) ‘아베 같은 사람’이라며 낙마한다면 이 나라 떠날 때라고 느낄 것”이라고 강변했다. 무슨 이유로 아직 한국을 떠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극단적으로 편향된 사고의 소유자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진보에서 전향한 변절자에서부터 전통적인 반공세력에 이르기까지 기실 어울리지 않는 세력간의 기묘한 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친일 독재 비호라는 측면에서는 이해를 같이하며 일본의 극우를 빼다박은 행태도 동일하다 할 수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혈연적으로도 친일 독재세력과 친연성을 가진다. 연구소는 연좌제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왔다. 선대가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다해도 후세가 이를 비호하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으며 설령 고위공직자일지라도 현재 건전한 역사관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면 그만인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인호 씨가 보여온 그간의 행태는 선대의 뚜렷한 친일 친독재 행적에 대한 콤플렉스의 소산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게
한다. 그의 조부인 이명세는 유림을 대표하는 저명한 친일파였으며, 이승만
정권 때는 3.15부정선거 원흉 중 한 사람이었다. 당연히『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었으며,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인사 명단에도 포함돼 있다. 친일문제에 대한 알레르기적인 반응과 이승만 우상화에 적극적인 연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제 허울뿐인
공영방송마저 극우세력의 손아귀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 극단적인 역사인식의 소유자가 정치권력의 뜻을
헤아려가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이를 막지 못한다면 KBS는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는 길을 걷게 될 것이 분명하다.
현 정권 들어
언론 교육 역사 등 가치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문에 대한 집착이 노골화하고 있다. 이는 물론
최고 권력자의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그간 대한민국이 성취한 민주화의 결실을 깡그리 말살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인사도 집권세력이 장기적이고 거대한 계획 아래 추진하고 있는 이념 공세의 일부라고 판단된다. 이승만
박정희의 정통성 확보 등 수구 이데올로기의 전파와 정권 재창출 바로 그것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해가며 언론과 역사와 교육을 장악해가는 이유인
것이다.
그들은 이제
국민 여론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충성 경쟁을 하며 갈등을 야기하는 화합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을 민감한
자리에 중용하는 도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흉악한 저의를 알고 있는 이상 우리들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다. 양심적 시민사회 세력이 총단결하여 한마음으로 또 온몸으로 극우세력의 진출을 저지하는 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2014. 9. 1.
민족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