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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가지 않는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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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열풍이 대단합니다. 개봉 36일 만에 누적관객수
1700
만명을 돌파하더니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0일까지
1742
8122명을 기록했습니다. 매출액 1300억원도 한국영화 사상 최고입니다. 말 그대로초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명량>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사람 이야기입니다. ‘
今臣戰船 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며 수백척의 적선을 맞아 12척의 배를 갖고 싸우러 나가고, 승리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死卽生 生卽死’(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며 임전무퇴의 기개를 보여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 바로 이순신 장군 이야기에 온 나라가 감동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과 리더십이 재조명됐고, 추앙받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앞다퉈 명량을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합니다. 이순신 열풍은 뜨거운데 이순신 정신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순신 열풍은 영화관에서 두 시간 동안만 유효합니다. 영화관 안에서만
한바탕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어서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 언제 바람이 불었나 싶게 잠잠합니다
. 영화는
영화일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 현실은 현실대로 흘러갑니다.
여기에 기묘한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입니다. 이순신 열풍 뒤편에서 나라를 바쳐
목숨과 재산을 지킨 친일파들이
, 그 후손들이 득세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대통령도 되고, 총리도 되고, 장관도 되고, 사회 지도층으로 위세를 부리는 그런 나라입니다.

광복군의 후손이 정치인이 되고, 장관이 되고, 총리가
되고
, 대통령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가뭄에 콩 나듯 하니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 대신 익숙한 게 있습니다. 틈만 나면 벌어지는 고위 공직자 후보자들의 친일 논쟁입니다.

얼마 전 친일사관이 논란이 되면서 낙마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도 그랬고, 이인호 KBS 신임 이사장도 그렇습니다. 이인호 이사장의 조부인 이명세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발표한 친일 704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된
친일파입니다
. 조부가 친일파라도 후손이 반성하고 참회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인호 이사장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 오히려강요된 일로
두 세대 전에 태어났다면 나도 친일파 명단에 올랐을 것
” “서구에 맞서 유림을 키우기 위한 일이라는 등의 궤변으로 조부의 친일행각을 옹호합니다. 연좌제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 조부의 친일 행각을 반성하지 않고 옹호하는 후손들이라면 친일파와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도,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도,
권희영 한국학대학원장,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도 친일·독재를
미화한 뉴라이트 계열 인물들입니다
. 아마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가 살아 있다면 이들에게 폭탄을 던졌을지도 모릅니다
.

이들은 폭탄을 맞는 대신 고위직에 올라 떵떵거리며 권력과 위세를 뽐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명량의 열풍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암울한 현실에 대한 절망이 영웅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표출되는
것이란 해석도 있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영화관에선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에 열광하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영화관 밖으로만 나오면 눈을 감습니다.
친일 인사들이 활개치고 다녀도 모른 척합니다. 이순신 장군의사즉생 생즉사를 좌우명처럼 외고 다닌다는 군인사들이 전시작전권을
미군에 바치지 못해 안달합니다
. 현해탄보다도 넓은 이 현실과 감정의 괴리. 영화관에선 열광하고, 현실로 돌아오면 외면하는 이중인격을 지녀야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 그 이중구조에서 기득권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환호작약하고
있는 건지도
. 이순신 장군이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한심한 후손들이라고.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


<2014-09-18> 주간경향

 기사원문: [편집실에서]이해가 가지 않는 <명량>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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