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2008년 충북 청원군 분터골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을 하고 있다. 이곳에선 유해 366구와 유품 530여점이 발굴됐다.
[지역 쏙]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의 눈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은 민족의 아픔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을 중단한 뒤 유해 발굴은 물론 진상 규명 사업도 멈추면서 유족의 아픔이 커지고
있다. 희생자 추모관 건립이 미뤄지면서 어렵게 발굴한 유해조차 임시 안치소에 보관하는 실정이다. 유족들은 정부가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버지,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누가 아버지의 가슴에 총을 쏘았습니까. 누가
어머니의 청춘과 평생을 빼앗아 갔습니까. 손녀에겐 당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경남 진주에 사는 강병현(64)씨는 그리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는 65년째 가출 상태다. 강씨는 지난
3일 광주비엔날레 식전 행사로 열린 행위극에서 이 편지를 읽었다. 임민욱 작가는 이날 한국전쟁기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과 경남 진주 지역에서 학살된 민간인 유해와 강씨 등 유족을 이곳에 초대했다. 이들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와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 오월어머니회 간 동서 만남과 해원을 시도한 것이다. 11월9일까지 열리는 비엔날레 한편엔 ‘내비게이션 아이디’란 제목의 작품으로 유해와 편지 등이 설치돼 있다.
■ 국수 새참 앞에 두고 사라진 아버지
수만에서 수십만명으로 추정되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유족과 마찬가지로 강씨의 아버지도 홀연히 가족을 떠났다. 평생 아버지 얘기만 하면 쉬쉬하다 3년 전 아버지 곁으로 간 어머니는 생전에 “1950년 7월 어느 날 논에서 김을 매다 국수 새참을 앞에 두고 ‘다녀와서 먹을게’란 말을 남기고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그의 인생 사전엔 태어날 때도, 자랄 때도 ‘아버지’란 단어는 없었다.
잊고 지낸 ‘아버지’란 단어는 2002년 9월
매섭게 불어닥친 태풍 루사에 밀려왔다. 엄청난 폭우로 산허리가 잘려나가면서 진주 등지에서 유해가 무더기로
발굴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경남대박물관 이상길 교수팀이 유해
163구를 발굴했고, 학계는 한국전쟁 때 숨진 보도연맹원이거나 진주교도소 수감자로 추정했다. 보도연맹은 좌익 전향자로 구성된 반공단체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찰 등이 보도연맹원들을 즉결 처분해 민간인
집단학살이 벌어졌다.
강씨는 수소문 끝에 아버지가 보도연맹에 연루됐을 것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발굴된 유해 안에 아버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부재중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꾸리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정말 기대가 컸죠. 정부가
나서 아버지의 유해 정도는 바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진실화해위 활동이 2010년 말 종료되면서 모든 게 끝났죠. 국군 유해는 디엔에이 조사를
통해 신원까지 밝히지만 민간인 희생자는 비용 등을 이유로 디엔에이 조사도 안 해요.”
강씨의 말대로다. 진실화해위는 2006년 12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려고 전국 154곳의 지표조사와 유해 발굴 가능성 조사 등을 실시해 59곳의
매장 추정지에서 유해 발굴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인천 21곳, 강원 1곳, 충북 19곳, 충남 9곳, 경북 28곳, 경남 41곳, 전남 27곳, 전북 6곳, 제주 2곳 등이었으며, 진실화해위는 2010년 14곳의
매장 추정지를 추가해 모두 168곳에 민간인 학살자들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사료 조사, 주민 증언 등을 종합해 우선 발굴 대상지를 39곳으로 압축했지만 실제 발굴이 이뤄진 것은 2007~2009년
경산 코발트광산, 충북 청원 분터골 등 13곳에 그쳤다. 당시 발굴을 통해 유해 1617구와 유품 5600여점을 수습했다.
■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
그게 끝이었다. 진실화해위는 2009년 10월 ‘유해
발굴과 안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실화해위가 매장 추정지로 밝힌 168곳의 7.7%, 우선 발굴 대상지 39곳의 33%만 발굴이 이뤄진 채 모든 활동은 멈췄다.
전국 곳곳의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들은 유족회를 꾸리고
정부에 유해 발굴과 진상 규명 등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답하지 않고 있다.
속이 탄 유족들과 보다못한 시민과 단체 등이 유해 발굴과
진상 규명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한국전쟁유족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지난 2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을 꾸렸다. 단체와 시민들은 1300여만원을 모아 같은 달 24일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일대에서 자체 유해 발굴을 하기도 했다.
충북역사문화연대와 청주·청원
보도연맹 유족회도 지난 6월23일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15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북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에서 자체 발굴을 통해 유해의 존재를 확인한 뒤
충북도에 정식 발굴 지원을 신청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유해 발굴은 물론 진상 규명에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아 제발 좀 나서라는 뜻에서 민간 주도로 발굴을 했지만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아 답답하고 안타깝다. 앞으로도 유해 발굴과 진상 규명 활동을 해나갈 생각이다. 정부가 움직일 때까지”라고 말했다.
민간 공동조사단은 진주에서 유해 35구를 발굴했다. 하지만 이 유해를 제대로 모실 곳이 없었다. 결국 발굴지 근처에 컨테이너를 두고 유해를 보관하고 있다. 정부에선
충북대에 위탁 관리하고 있는 임시 유해안치소로 옮기라고 했지만 유족들은 거부했다.
“충북대 임시 안치소엔 전국에서 발굴된 유해가 한데 엉켜
있잖아요. 진주에서 발굴된 유해는 고향 진주에 두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이곳에 두기로 했죠. 변변한 추모관이라도 만들 때까지만이라도….”
■ 추모관이 아니라 임시 유해안치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2008년 충북 청원군 분터골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 충북역사문화연대 제공
19일 오후 충북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관’을 찾았다. 이곳은 충북대 전산원 건물 2~3층을 새단장해 2009년 4월
문을 열었다. 지금도 1층엔 낡은 컴퓨터 등이 널려 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오르니 33㎡(10평) 남짓한 방 안 벽에 전국의 유해 발굴 현장 사진, 설명 등을 담은
안내판이 걸려 있다. 방 안쪽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신위’라는 위패와 분향소가 있다. 분향소 밖 오른쪽엔 유해안치소가
있다. 이곳엔 청원 분터골 등 전국 9곳에서 발굴한 유해 1696구의 부위별 유골과 탄피·신발 등 유품 5000여점이 플라스틱 상자 안에 보관돼 있다.
추모관이라기보다는 ‘임시’ 유해안치소가 맞다. 2000년부터 한국전쟁 때 숨진 국군 유해 발굴과
민간인 유해 발굴 사업 등을 사실상 지휘한 박선주(67) 전 교수가 이 대학 고고미술사학과에 재직하고
있었던 인연으로 이곳에 들어섰다. 애초 2012년 2월까지 사용 계약을 했지만 한차례 연장해 2015년 12월 말까지 더 쓰기로 했다. 하지만 기약은 없다.
박 전 교수는 “항온·항습 시설이 돼 있지만 안정적이라고 볼 수 없고 또 적절하지도 않다. 애초 ‘임시’를 붙인 것은 제대로 된 추모관을 만든 뒤 그곳에 옮기려 했던
것인데 자꾸 연장하면 좋지 않다. 제대로 갖춰 안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가 활동을 중단한 뒤 민간인 희생자 관련 업무는
안전행정부 과거사업무지원단이 맡고 있다. 2011년 4월
거창 사건, 제주 4·3 사건, 노근리 사건 등을 통합했다. 충북대 임시 유해안치소 관련 업무도
이곳이 맡고 있다.
유족들은 안정적인 유해 관리를 위해 추모관 건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한 대학에 맡겨 추모관
건립 용역까지 진행했지만 이후 사업을 추진하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추모관 건립은 사실상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정부는 한 곳에 500여억원을 들여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통합 추모관을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복수 후보지를 검토했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유족회와
학계 등은 청원 분터골, 대전 산내 희생지 등을 후보지로 추정했다.
고재만 과거사업무지원단 과장은 “당시 후보지를 정한 것은 맞지만 이 시설이 혐오시설이 될 수 있는데다, 자신의
지역에 설치하기를 바라는 일부 유족 등의 반발이 있을 것 같아 공개하지 않았다. 전국에 100여곳의 유족회가 있는데 아직까지 서로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2015년
이후에도 충북대 임시 안치소를 이용하도록 연장 계약을 검토하고 있다. 고 과장은 “영구 안치시설 설치를 위한 예산 확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부 재정 여건 등의 이유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2015년 이후에도 충북대 임시 안치소를
더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고 내부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는 “한국전쟁 전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진상 규명과 유해 발굴, 또 발굴된 유해를 제대로 모실 공간을 확보하고 설치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 인권을
회복하는 일이다. 정부가 묻혀진 진실을 캐내고 가슴에 맺힌 유족들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2014-09-21>
한겨레
☞ 기사원문: “누가 아버지에 총을? 정부, 유해
발굴·진상 규명 재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