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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청년단 재건? 한국의 보수, 시험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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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황은 테러만 없을 뿐 해방전후 좌우대립과 다를 바가 없다. 좌파들의 무법천지다. 그들이 쇠파이프를 들면 우리도 맞대응해야 한다.” 극단적인 우파들이 서북청년단 재건을 내세우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악무한적인 진영대립의 서곡일까 아니면 주목받고 싶은 극우세력의 단발성 해프닝일까. 한국사회 보수가 폭력적이고 위험한 상황으로 추락하고 있다.

“‘경향’이 우리에 대해 좋게 써주지는 않을 것은 압니다만….”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이하 서북청년단) 정함철 대변인(42)의 말이다. 정 대변인의 연락처를 수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 대변인의 트위터에는 그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는 “객관적으로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2시간에 걸쳐 서북청년단 결성에 나서게 된 이유와 자신의 경력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그가 ‘서북청년단’에 합류한 것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정치게시판에 지난 9월 15일 배성관 대표가 올린 재건 발기인 모임을 갖자는 제안 글을 읽고서다. “깜짝 놀랐다. 10여년 전부터 생각해오던 일이다. 발기인 모임을 갖는다고 하니 준비가 된 것으로 알고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려 반 기대 반’이었다고 했다. 무엇을 ‘우려’했을까. “분명 공격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뭔가 준비되었을까 싶어 모임에 참여했는데 아무리 봐도 ‘맨땅에 헤딩’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도 없었고….”


“지원만 해주면 좌익 뿌리 뽑을 자신”

정 대변인은 강원도 원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원주에서 ‘행동하는양심실천본부’(행실본)라는 보수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다. 서울에 있을 때는 기독시민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사무총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9월 28일, 서북청년단의 첫 ‘행동’인 ‘세월호 추모 리본 철거’ 퍼포먼스는 원래 행실본이 10월 1일을 기점으로 벌일 계획이었다. “마침 그날이 한국전쟁 당시 서울 수복일이기도 해서 당긴 것이다. 18일 첫 발기인 모임을 할 때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지금 흐지부지된다면 더 이상 기회가 없겠다 싶어 적극 제안했다. 일부에서는 청년모임이라고 하면서 왜 장년·노년층만 나오냐고 하지만 기회만 주어지면 나설 젊은 친구들은 많다. 어른들은 그런 젊은 친구들을 격려하면서 자금을 대주셔야 하는데….” 퍼포먼스에 사용된 리본을 수거할 종이박스 등은 대부분 자비로 마련되었다. ‘지원하는 배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에 대해 그는 펄쩍 뛰었다. “만에 하나 국정원이 정말로 돈을 지원해주면 좋겠다. 종북세력들 다 싸그리 뿌리 뽑을 자신이 있다.” 부산 출신인 정 대변인은 강원도에서 중사로 군복무를 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녔다. 그는 대학 시절, 학내에 붙어 있는 대자보를 떼어낸 전력이 있다. “노근리 사건을 다룬 대자보였는데, 6·25 당시 시대적 상황이 있는데 무조건 학살이라는 것이다. 그 대자보에 실명을 쓰고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으면 찢겠다’고 적어놨다. 다음날 가봤더니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래서 찢었다. 원래부터 그런 성향이었다.” 군 제대 후 생명보험 영업을 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정치활동’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지율이 7%로 떨어졌을 때 한나라당에 가입원서를 내면서 시작됐다.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박사모) 부회장을 역임한 뒤 2011년 지역으로 돌아와 보수시민단체 일을 해왔다.

9월 28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 회원들이 세월호 구조활동 중단 및 인양과 노란리본 철거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정근 기자

보수도 “왜 하필 서북청년단이냐” 갸웃

일베 사이트에 ‘제2의 서북청년단이 필요하다’는 글이 처음 올라온 것은 지난 6월이었다. 글을 올린 ‘월간조선’이라는 회원은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는 등 맨앞 (시위) 행동대장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공격하자”, “공포탄을 발사하면 도망가지 않는 독종좌익과 일반 시민의 구별이 가능하다”는 등의 과격한 주장을 펼쳤다. 이 글을 올린 이는 글과 함께 책 표지를 올렸다. <서북청년회가 겪은 건국과 6·25>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저자는 손진 대한민국건국회 명예회장이다. 올해 95세로 생존인물이다. 그런데 이 책은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책의 발행처는 ‘건국이념보급회 출판부’로 되어 있다. 이 단체는 서울 중구 서소문로에 있는 언론사 ‘뉴데일리’의 사무실 한편에 마련되어 있다. 기자는 단체의 김효선 사무총장을 방문해 책을 구입했다. “분명 재평가가 필요하다. 해방정국과 건국 초기에 역할을 했는데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자기의 페이스북을 통해 ‘범죄단체조직죄’에 해당된다며 검·경 수사를 촉구한 것이 단적인 예다. 서북청년단은 이북 평안도나 함경도에서 소련군이나 공산당의 만행을 피부로 겪은 사람들이 내려와 만든 단체다. 테러단체라고 비난하지만, 남로당의 테러로 죽은 사람이 2000명이 넘는다. 조직이 잘 되어 있는 좌익단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자위적 성격의 단체다.” 김효선 총장의 말이다. 김 총장은 ‘이승만 연구가’라는 직함으로 여러 인터넷 우파매체에 기고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를 비판한 <백년전쟁>을 비판하는 강연과 기고를 주로 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서북청년단 재건’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할까. “오죽하면 재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겠나. 국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정국이 해방 전후와 같은 ‘혼란기’라는 인식일까. 그의 인식은 이렇다. “테러만 난무하지 않을 뿐 혼란상이나 좌우대립은 다르지 않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법치가 실종되었다. 광화문을 몇 달간 점거하고 농성하는 것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익진영도 말 없이 침묵하고 있다. 소리를 안 낸다고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좌파 사람들만 극악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우리라도 나서서 뭔가 말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본다. 물론 우리와 상의한 것은 아니지만….”

서북청년단과 같은 단체의 재건 필요성은 ‘범보수진영’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일까. 그런 것같진 않다. 지난 2011년 이른바 ‘뉴라이트’로 분류될 수 있는 ‘전향 386’ 인사들이 근현대사 역사서를 펴냈다. <파란만장코리아 오매불망 대한민국>이라는 책이다. 근현대사 역사 속 주요 인물과 저자의 가상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주제로 삼는 부분은 조만식과 대화를 다룬 5장과 이승만을 다룬 6장이다. 그런데 해방공간을 다루면서도, 서북청년단의 활동사실이나 평가는 책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5장과 6장은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하고 좌파활동을 하다가 전향한 두 사람이 맡아 저술했다. 최홍재와 이종철이다. 최홍재는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실 행정관으로 들어갔다가 현재는 국민대통합위원회 단장을 맡고 있다. 최 단장은 10월 2일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건국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해방 전후에 서북청년단의 활동은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고 본다”면서도 “이미 대한민국이 공고화된 지금 시점이 해방 전후의 대립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쓸 당시나 내가 있었던 <시대정신> 그룹 내에서 ‘서북청년단의 활동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없었다”며 “설사 (좌파들의 행동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권력이 대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종철 스토리K 대표는 “서북청년단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좋지 않은 마당에 굳이 이 국면에 그 이미지를 빌려올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정말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식의 활동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족주의나 우파를 내건 단체는 해방정국에서 여럿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서북청년단을 택해 재건하자고 했을까. 결국 선명성 경쟁이 아닌가 싶다.” 이나미 방송통신대 책임연구원(정치학 박사)의 말이다. 한국전쟁 시기 이념과 학살 문제를 다룬 연구서를 펴내기도 한 이 연구원은 “이를테면 탈북자 출신도 아닌데 굳이 그 단체 이름을 고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전선에서 자신들이 최선두에 서 있고,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겠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특별법 반대를 주장하는 측의 농성장/백철 기자

4·3학살, 5·18민주화 등 인정 안 해

일베에 이들이 올린 ‘퍼포먼스’ 소식에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좋은 취지가 역공의 대상이 되고 좌파의 언론전에 밀려 우파 운동에 또 하나의 나쁜 이미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서북‘청년’단을 표방했지만 막상 오프라인에 나선 사람들 중 청년이 안 보이는 것에 대해 “정게(정치게시판) ‘노땅’들이 분기탱천하고 나섰네”와 같은 비아냥도 보였다. 반면 조국 교수나 방송인 허지웅씨의 비판을 두고 변희재 인터넷미디어협회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는 10개가 더 나와도 괜찮다”며 적극 옹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재건 서북청년회 배성관 대표의 연락처를 구하는 것 역시 쉬웠다. 이른바 ‘정통우파’ 행사안내 게시물에서 그의 휴대폰 번호를 입수할 수 있었다. 10월 2일, 배 대표와 통화했다. “그날 4명만 옷을 입고 나왔을 뿐이지 현장에 같이 나왔던 사람들은 10명이 넘는다. 발기인 모임을 가진 뒤 연 첫 행사인데 그 정도 주목을 받았으면 좋은 성적이라고 본다. 그 뒤 휴대폰으로 회원 가입을 문의하는 문자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예비역 대령(육사 25기) 출신인 배 대표는 DJ정부 시절인 2001년 멸공산악회를 만들었다. 그는 “좌파들이 소위 말하는 ‘아스팔트 우파’의 원조가 나”라고 말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서북청년단을 재건한다는 것이 테러리즘의 부활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당장 제주 4·3 유족회 등에서 반발이 있었다.

“그것은 역사관의 차이, 이념의 차이라고 본다. 죽은 사람들이 다 양민은 아니다. 사건 초기에 경찰 가족도 숱하게 죽었다. 좌익들이 그 안에 섞여 있었다.”

이미 정부가 공식적으로 결론을 내린 사안 아닌가.

“정부가 결론을 내렸다고 다 바른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당시 채택된 4·3항쟁 진상보고서의 기획단장이 지금 서울시장을 맡고 있는 박원순이다. 5·18 광주사태도 민주화라고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내란으로 본다. 그건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이념에 따라 다르게 보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해방정국의 이념대립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보는가.

“그것도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뜻이 같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다. 좌파들의 무법천지다. 광화문의 불법농성도 그렇지만 강정이나 밀양에서도 폭력사태가 보도되지 않았나. 우리도 맞서서 대응해야 한다. 그쪽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찔러대면 우리도 해야 한다. 우리가 하면 폭력이고 그쪽에서 하면 민주화냐.”

‘우리’라고 했지만 서북청년단이 공권력은 아니지 않나.

“공권력이 못하고 있으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법치가 안 되니 바로세우겠다는 것 아니냐.”

모든 보수가 같은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소위 뉴라이트로 불리는 젊은 보수들은 당신들의 상황인식에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 물밑에서 저 사람들(편집자주·진보좌파)하고 협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같은 진성우파에서 볼 때 아직까지 그 사람들은 예의주시할 대상이다. 왕년에 좌파운동을 했던 습성을 못 버리는 사람들이다.”

서북청년단의 등장과 관련해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극우, 또는 극단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오히려 이들의 주장을 부각시키는 오류를 범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보수, 일베 등 극단적 세력과 선긋기 못해

신 교수는 그 전형적인 예로 최근 ‘일베코드’를 설명하는 논리로 등장한 이른바 ‘무임승차론’을 들었다. “극우들은 항상 팩트를 강조하지만 실상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극우에게는 논리가 없다. 다만 현실과 접촉면을 가지는 데서 논리를 임시방편적으로 만들어내는데, 무임승차론은 본의와 무관하게 그들의 대변자 역할을 할 치명적 위험이 있다. ‘여성들이 노력 안 하고 성취한 것 이상으로 대접받는다’라든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세금 한푼 안 내고 복지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인용부호 없이 그들의 주장을 인용하면 그들이 설정한 프레임에 말려들어가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보수와 극우를 서로 다른 이념적 견해 정도로 보는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폭식투쟁은 반윤리적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극우적인 것은 아니다. 금지되어야 할 행동은 아닌 것이다. 인종주의적 견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몰아내야 한다든가, 진보좌파 종북을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반헌법적 행동이다. 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논리다.”

문제는 다시 정치와 시민사회다. 왜 한국의 보수는 일베나 우리 사회 일각의 극단적인 주장과 확실한 선을 못 긋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여성혐오나 지역혐오, 자신과 다른 주의·주장을 한다고 특정 이념으로 딱지붙여 단죄하는 것 등은 보수의 이념이 될 수 없다.

마감하던 10월 2일 저녁.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 정통성 확보’라는 제목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앞서 인용한 책 <서북청년회가 겪은 건국과 6·25>의 저자 손진씨가 ‘재건’ 서북청년회 대표단을 만나 흔쾌히 재건을 승낙하고 재건발대식 참여를 약속했다는 내용이다. 배성관 대표는 이에 앞서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베에 곧 인증사진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북청년단 재건은 악무한적인 진영 대립의 서곡일까. 아니면 ‘주목받고 싶은 이들’이 벌이는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한 것으로 기록될까. 신 교수는 “확실한 것은 한국의 보수정치와 시민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폭력적인 상황으로 추락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4-10-06> 경향신문

기사원문: 서북청년단 재건? 한국의 보수, 시험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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