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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 포진 끝낸 보수… 이승만 미화, 공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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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인호 KBS이사장의 현대사학회 등 핵심 역사연구기관 모두 장악… “친일 조상 옹호-이승만 옹호-박정희 찬양으로 이어질 것”

“그가 권위주의적이고 강력한 지도자인 건 맞지만 독재를 한 적은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이인호 KBS 이사장의 평가다. 지난해 7월 한 개신교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이사장은 4·19 혁명과 이 전 대통령의 하야에 관해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타도했다고 과장하기 시작한 것은 종북세력의 입김이 들어가면서부터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강연에서는 “친일파 청산은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친일 청산’이나 ‘독재 타도’는 소련이나 종북세력의 구호에 불과하다.

우파 역사단체인 한국현대사학회 구성원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역사 교과서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현직 회장 이명희 공주대 교수, 상임이사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상임고문 이인호 KBS 이사장. | 전경련

이 이사장이 국영방송사의 이사장 자리에 앉은 직후, 이승만 정권 시절 백색폭력으로 활개를 치던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움직임이 나왔다. 시점이 절묘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 9월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키자”고 발언한 지 1년 만이다. 지난해 9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서 교학사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고 밝힌 김 의원은 이젠 집권당 대표로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보수진영이 우파 역사학계와 손잡고 벌이는 ‘역사전쟁’을 위한 진용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다. 비록 ‘일본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이 문제가 돼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사퇴했지만 문 전 후보자의 강연에 감동받았다는 이 이사장은 무사히 KBS 이사장 직위에 올랐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문제가 된 ‘근·현대사 대안교과서’를 만든 박효종 서울대 명예교수도 6월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임명됐다.


정부와 여당 전폭적 지원 받아

연구지원금이라는 돈줄을 쥐고 역사학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3대 핵심 역사연구기관도 보수진영이 이미 장악을 끝낸 상태다. 주축세력은 이른바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한국현대사학회의 설립 및 활동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들이다. 유영익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과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각각 현대사학회에서 상임고문과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중앙선대위 의장이었던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 원장에, 현대사학회 초대 회장인 권희영 교수가 대학원장에 임명됐다.

역사학계와 역사단체들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보수진영이 역사문제에 관해 보다 공세적으로 나오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주요한 쟁점은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로 집중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가운데 현 시점에서 키워드가 될 인물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북한에 대한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옹호하며 ‘대한민국 정통성’을 강조하는 우파 역사학계의 입장에서는 이승만 정권 당시 정부 내 요직에 그대로 자리 잡았던 친일 경력 인사들이 정통성 주장을 위협하는 아킬레스건이 되어 왔다.

사실 그간 이인호 이사장을 비롯한 현대사학회 구성원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 혹은 ‘국부’로 재조명하는 취지의 작업을 계속해 왔다. 다만 보수진영 내에서도 정치권과 현대사학회 사이에 이 전 대통령의 재임 시 독재 여부에 관해서는 확실한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김무성 대표조차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이라는 치적에도 불구하고 독재는 비판받아야 한다”며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이념투쟁을 바라보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보수진영 내부의 이견이 해소되고 합의가 빠르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건국의 주체’인 이 전 대통령을 부각시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일이 현 정권 들어 청와대를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통일논의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하는 일에 바로 뛰어들기는 부담스러운 정치권과 우파 역사학계가 선택한 우회적 방안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에서 반공이란 명분으로 테러를 주도한 서북청년단을 이 시점에서 재건하겠다고 하는 움직임이 나오듯 정권의 비호 하에 이승만 정권을 옹호하는 움직임까지 부활하는 모양”이라며 “이러한 광기가 횡행하는 사회가 나오는 것에는 정권을 비롯해 이인호 이사장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을 역사변혁 주체로 인정 안 해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이인호 이사장도 친일파의 거물이었던 조부를 옹호한 끝에 친일파가 부역한 이승만 정권까지 옹호하는 데로 나아간 것”이라며 “그러한 옹호의 움직임은 결국에는 조만간 박정희 정권에 대한 찬양으로까지 이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논쟁에서는 큰 성과를 보지 못한 보수진영과 우파 역사학계가 방송이나 인터넷 등 대중과 접촉하는 매체를 통해 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 여론 주도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한편으로 일본 자민당에서 취했던 장기집권 전략처럼 역사왜곡 전략을 본격화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방송과 언론을 통해 왜곡된 역사관을 전파함으로써 보수 정치세력의 영역을 넓히려는 의도가 우려되지만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1%도 안 됐던 것과 같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학계 연구자들은 식민지 근대화론과 여기에 근거한 ‘건국 대통령 만들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근대화를 주도한 일본의 식민지배세력에서부터 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지는 건국세력의 활동을 떠받드는 이면에 일반 국민들을 무력하게 지배권력을 따르기만 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홍락 한일장신대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입장은 기층민중을 역사 변혁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시각을 버림으로써 현실을 비평하는 과제를 스스로 상실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의) 아무런 기초도 없던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진 것은 기적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의지로 밀어붙인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아서 쟁취한 것이 아니다.” 이인호 이사장은 전형적인 식민지 근대화론의 시각에서 해방 이후의 한국 국민에 대해 평가했다. 스스로 쟁취하지 않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독재정권이 빼앗아도 된다고 읽히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2014-10-14> 주간경향

기사원문: 역사전쟁 포진 끝낸 보수… 이승만 미화, 공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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