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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작가 이순신영정 즉각 교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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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지부장 이정학)와 천안아산지회(지회장 황운학)는 10월 26일 오후 1시 아산 현충사 앞에서 ‘친일화가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을 즉각 교체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연다.


최근 영화 ‘명량’의 인기에 힘입어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를 찾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현충사에서 봉안돼 있는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은 일제 시기 친일행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장우성(1912-2005) 화백이 1953년에 제작한 것을 1973년 당시 문화공보부 산하 선현영정심의위원회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한 것이다.


표준 영정이란 위인들의 초상이 작가마다 각양각색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국가가 직접 나서서 특정 영정을 표준으로 정한 것이다. 표준 영정이 정해지면 그것을 기본으로 해 동상, 지폐, 우표 등도 제작해야 하며 교과서에도 사용된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93점의 표준 영정 중 약 15%인 14점이 장우성을 비롯한 김은호, 김기창 등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화가가 그린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광복 60주년인 지난 2005년 처음으로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고 그 결과 2007년 장우성이 그린 유관순 열사의 표준 영정이 교체됐다. 그리고 2008년에는 진주지역 시민단체들이 김은호가 그린 논개 영정을 교체해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도록 한 바 있다. 2012년에는 충남 예산의 매헌윤봉길월진회(회장 이우재)와 일부 종친들도 장우성이 그린 윤봉길 의사의 표준 영정 교체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조정식 의원(시흥을)이 친일화가들이 그린 표준영정에 대한 지정철회를 요구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작가의 친일 논란은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규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정해제 사유로 보기 어렵다”면서 사실상 이순신, 세종대왕 등 친일화가가 그린 표준영정 14점에 지정철회의 뜻이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영정동상심의규정 제5조 2항을 보면 ‘정부표준영정이 천재지변, 화재 등으로 인해 멸실, 도난, 훼손되거나 고증 및 사진 등 새로운 근거에 의해 그 인물과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판명이 된 경우, 기타 지정을 해제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발생’하면 영정에 대한 지정해제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즉, 작가의 행적이 역사정의와 교육가치의 실현에 배치된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면 당연히 지정을 해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와 천안아산지회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장우성의 친일행위를 알리는 거리 전시회와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 교체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등을 꾸준히 전개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친일논란의 주인공인 장우성(1912~2005)은 친일화가인 김은호의 문하생으로 그림 시작해 김은호 문하생으로 구성된 ‘후소회(後素會)’ 창립(1936)에 참여했다.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1941) 동양화부에 ‘푸른 전복(戰服)’으로 조선총독상을 수상하고, 제21회 전람회에서는 ‘청춘일기’, 제22회 전람회에서도 ‘화실’로 연달아 창덕궁상 을 수상했으며 제23회 전람회에서는 ‘기(祈)’를 출품해 수상했다. 이외에도 결전미술전(決戰美術展·1944) 일본화부(日本畵部)에 ‘항마(降魔)’로 입선하기도 했다.


1946년~1961년 서울대 미술부 교수, 1971년~1974년 홍익대 미술학부 교수응 역임했고 대한민국 홍조소성훈장(1960), 예술원상(1971), 홍조근정훈장(1974),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장(1976), 5·16민족상(1984), 대한민국 문화훈장 금관장(2001) 등을 수상했다.


<장우성의 행적>


▲장우성,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銃後)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心魂)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 1943년 6월 15일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열린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심사위원장인 정무총감을 대리해 학무국장 오노가 주도한 시상식장에는 조선미전의 참여작가와 추천작가를 비롯해 30여 명의 수상자가 참석했다. 상장과 상금 시상이 끝난 뒤 장우성이 답사를 했다. 조선인 수상자로는 최초의 답사였다. 1943년 6월 16일자 ‘매일신보’는 ‘결전하(決戰下) 예술가의 두 어깨에 지워진 임무가 중대함을 강조하는 열렬한 인사를 하자 일동을 대표해 동양화의 장우성 화백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銃後)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心魂)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답사를 한 후 동 1시 40분경에 이 수상식은 끝났다’라고 보도했다.


▲연합국을 굴복시키자는 의미의 작품으로 입선 1944년 3월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조선미술가협회·조선군 보도부·조선총독부 정보과가 후원하고 일본어판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사가 주최한 결전미술전(決戰美術展)이 열렸다. 총독부 미술관에서 열린 결전미술전은 ‘결전미술전람회 목록’에 “공격하라 멈추지 말라”를 구호로 명기할 정도로 침략전쟁을 부추기는 군국주의 미술전람회였다. 1944년 3월 결전미술전 일본화부(日本畵部)에 ‘항마(降魔)’를 응모하여 입선했다. 2003년 펴낸 회고록 ‘화단풍상70년’에서 결전미술전 입선작품인 ‘항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1942년 11월 반도총후미술전람회에 불화(佛畵) ‘부동명왕(不動明王)’을 응모하려 했으나 운반 도중 비에 젖어 포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부동명왕이 1930년대 광범위하게 숭배되었던 일본 군국주의의 호국불이라는 점에서 전시회의 성격과 부합한다 할 수 있다. 결전미술전에 입선한 ‘항마’는 ‘악마를 굴복시키는 날카로운 검’이란 뜻의 국민가요 ‘항마의 이검(降魔の利劍)’과 주제가 일치하며, 악마는 귀축미영(鬼畜米英) 즉 연합군을 가리키는 것이다.



↑↑ ▲<왼쪽>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3년 6월 16일자에 실린 조선미전 수상식 기사. 이날 장우성은 조선인 수상자로는 최초로 답사를 했다. <오른쪽>친일잡지 ‘국민총력’ 1943년 12월 5일호 표지화. 장우성이 화제로 삼은 부동명왕(不動明王)은 오른손에는 항마의 검, 왼손에는 오라를 잡고 있다. ⓒ 온양신문


한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화가들이 그린 표준 영정 현황(2014년 현재)을 보면 ▲장우성 ‘충무공 이순신’(이충무공기념사업회·1973·현충사관리소) ▲장우성 ‘다산 정약용’(한국은행·1974·한국은행 본점) ▲장우성 ‘강감찬’(서울특별시·1974·낙성대) ▲장우성 ‘김유신’(충청북도·1977·길상사(충북 진천)) ▲장우성 ‘윤봉길’(충청남도·1978·충의사(충남 예산)) ▲장우성 ‘정몽주’(한국은행·1981·한국은행 본점) ▲김은호 ‘율곡 이이’(강원도·1975·오죽헌(강원 강릉)) ▲김은호 ‘신사임당’(율곡기념사업회·1986·오죽헌(강원 강릉)) ▲김기창 ‘세종대왕’(세종대왕기념사업회·1973·세종대왕유적관리소(경기 여주)) ▲김기창 ‘을지문덕’(한국은행·1975·한국은행 본점) ▲김기창 ‘중봉 조헌’(문공부·1977·국립현대미술관(칠백의총관리소에 대여 관리)) ▲김기창 ‘고산자 김정호’(문공부·1977·국립현대미술관 ) ▲김기창 ‘무열왕’(문화재관리국·1977·통일전(경북 경주)) ▲김기창 ‘문무왕’(문화재관리국·1977·통일전(경북 경주))


<2014-10-24> 온양신문


기사원문: “친일작가 이순신영정 즉각 교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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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현충사 이순신 영정은 친일화가 작품, 즉각 교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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