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임종국상 학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효순(61) 씨
[짬] 임종국상 학술상 받은
언론인 김효순
“오래 기자로 살아왔고,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도 학자나 연구자 행세를 한 적이 전혀 없는데 학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해서 얼떨떨하다.”
제8회 임종국상 학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효순(61)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4일 김 대표가 올 2월 발간한 책 <간도 특설대>에서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세력을 말살하려 한 조선인 ‘친일 토벌부대’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처음 시도한 공로를 인정해 그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회는 김 대표의 책이 “탐사 보도의 수준을 넘어서는 조사·분석을 통해 간도특설대의 설립배경부터 출신자들이 한국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실증적으로 규명해, 그 반민족적 반인도적 속성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밝혔다. 임종국상은 친일 문제 연구에 투신한 임종국(1929∼1989) 선생의 뜻을 기려 2005년 제정됐다.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뜻을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들을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분야로 나눠 선정해 매년 수여한다.
‘독립군 토벌’ 조선인 간도특설대
한국사회 주역으로 등장하기까지
학계가 못한 연구 발로 뛰며 실증
중·일 현지 인터뷰와 자료 발굴
백선엽의 창씨명·헌병복무도 밝혀내
1930년대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간도에서 활동한 이 특설부대는 오랫동안 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간도특설대 복무자들은 자신들이 ‘비적’, ‘공비’를 토벌했을 뿐이라고 변명해왔다. 김 대표는 이 부대가 사실은 항일무장세력의 소탕, 섬멸을 위한 관동군의 앞잡이 부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입체적으로 드러냈다. 장교의 절반 정도와 하사관 이하 사병은 전원이 조선인이었고, 항일운동가를 ‘공비’로 둔갑시켜 집요하게 동포들을 살해한 ‘황국 군인’이었던 것이다. 이 가운데 해방 이후 한국에서 장관, 군사령관, 고위관료 등으로 출세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책 한권이 그가 간도특설대를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8년 전, 스티븐 메르카도의 <나카노의 그림자 전사들>(The Shadow Warriors of Nakano)이라는 책을 읽던 중 명예원수 추대 문제로 논란이 됐던 백선엽씨가 일본에서 낸 책 가운데 간도특설대를 언급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백씨의 책에는 그가 국내에서 전혀 말하지 않았던 충격적인 내용들이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우리 민족의 치부인 간도특설대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하나도 없다는 현실이 착잡했고, 나라도 틈을 메워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료 자체가 부족했다. 2012년 1월 신문사를 퇴직한 직후부터 그간 틈틈이 모아온 문서들을 분석하고, 중국과 일본을 방문해 현지 조사를 해나갔다. 한중일의 자료를 대조해가며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까다로웠지만, 일본과 중국쪽 새로운 증언과 자료를 찾아낸 것은 큰 성과였다. 은폐되었던 사실도 속속 드러났다.
“당시 만주에서의 항일무장투쟁 여건이 얼마나 처절하고 비참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항일전사들을 포로로 잡으면 살아있는 채로 간을 적출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백선엽씨의 창씨명(白川義則, 시라카와 요시노리)이나 헌병 병과 복무사실도 학계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김 대표는 <동양통신>, <경향신문>을 거쳐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해 <한겨레> 초대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편집국장, 편집인, 대기자를 역임하면서 한일과거사를 지속적으로 조명해 한일관계에 정통한 전문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33년 기자 생활 동안 <가까운 나라 모르는 나라>(1996),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2008), <역사가에게 묻다>(2011)를 펴내며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 배제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은폐된 사실을 발굴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한일 근현대사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1992년 특파원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부터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나 유족들이 일본 정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이 확 번지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이 분야의 국내 전문연구자는 극히 드물었다. 조선인 B·C급 전범, 사할린 잔류동포, 조선인 시베리아억류 등 문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피해자들을 헌신적으로 돕고 연구하는 일본인 활동가·연구자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우리 자신의 문제를 남을 통해 알게 되는 처지는 어떻게든 벗어나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간도특설대와 관련해서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부정확한 이야기들이 많다고 했다. “특정인의 간도특설대 복무 여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은 것을 알고 있다. 책에서는 그런 개별적 문제보다 당시 시대상황 전체를 그리려 했고, 독자들이 왜 이런 류의 책이 이제까지 나오지 않았는지 그 배경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임종국상 시상식은 다음달 12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연다. 사회부문 수상자는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선정됐다. 지난 2005년 결성된 이 단체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도 조선인 군속·징용자·일본군 ‘위안부’ 등 피해자 문제를 꾸준히 파헤쳐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2014-10-26> 한겨레
☞기사원문: 간도특설대 분석…“은폐된 역사 진실을 밝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