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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방송 이사장의 몰역사적 언설 /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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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백범 김구 선생을 폄훼하는 언설이 도를 더해 간다. 사인이 연구 목적에서 또는 공명심에서 비판하는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공인이 정치적 의도에서 사실왜곡을 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것도 친일파 후손이라면 심각성은 더하다. 이인호 <한국방송>(KBS) 이사장의 백범 폄훼와 “해방 후 친일청산이 소련의 지령에 따른 것이었다”는 등 일련의 몰역사적 언설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임은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

그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김구 선생을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로서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1948년 대한민국 독립에는 반대하셨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로서 거론하는 건 맞지 않다고 한 것”이라 부연했다. 백범은 평생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1943년엔 중국 장제스 총통을 움직여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독립’을 선언하도록 하는 등 독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1급 공로자다. 다만 그는 분단정부 대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암살되었다. 백범은 1962년 건국훈장을 받았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며 최고 등급은 ‘대한민국장’인데, 김구·안중근·이승만 등에게 수여되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은 온 겨레의 열망이었다. 그래서 제헌헌법 제101조에 특별법 제정을 명시하고 반민족행위특별법을 만들었다. 반민특위가 구성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반민특위가 짓밟히고, 그 결과 일제의 유산 청산에 실패했다. 제헌국회 의원들이 소련의 지령을 받아서 반민법을 제정했다는 말인가.

이인호 이사장은 조부의 친일행적에 대해 “그 정도가 친일이라면 일제 때 중산층은 모두 친일”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국정감사장에서는 “(조부가) 일본에 타협하고 체제에 안주했으며 광의에서 보면 친일”이라고 답변했다. 5·16 쿠데타 직후 유도회와 성균관 임시사무소 대표 김석원씨는 이 이사장의 조부인 이명세 등 3인을 혁명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일제 말기 총독부 사령을 받아 경학원 사성이 된 이명세는 일제에 아부하기 위하여 황도유학을 제창하고 전국 유림들을 소위 명륜연성소에 몰아넣어 조선신궁에 참배시키는 등 유림을 동원시켜 일제에 충성을 다하다가 … 이승만이 귀국하여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두둔함에 또다시 뻔뻔스럽게 유도회에 뛰어들어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을 모취한 후…”라고 해방 후까지의 행적을 담고 있다.

나는 한때 이인호 교수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 “역사를 학문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사료의 발굴·채집·검토와 분석에 충실하고 사료와 사료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추리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개입되지 않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일뿐이다”(<지식인과 역사의식> 33쪽)라는 대목엔 밑줄까지 그었다.

돌이켜보면 이 이사장의 편견 탓만이 아닐지 모른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에 대한 폄훼와 편견은 세를 타고 있다. 1948년 정부 수립을 ‘건국절’로 내세우고, 독립운동가 대신 친일파들을 ‘건국의 주역’으로 삼고자 한다. 뉴라이트-어버이연합-엄마부대-일베-서북청년단으로 이어지는 극우집단의 돌출현상은 민주화의 역행과 함께 ‘편견’에 가득 찬 ‘역사학자’들의 역사왜곡에서 시작되고 대통령이 이들을 중용하면서 세력을 늘려 간다. 1950년대 독일의 역사수정주의에서 발아된 것을 일본 우익이 표절하고 다시 한국 족벌신문이 차용한 이른바 ‘국가정체성 이론’을 기치로 내걸고 이를 비판하면 빨갱이·종북으로 몰아친다. 권좌의 안락의자가 좋다고 역사를 왜곡하면 반드시 글로써 심판을 받게 된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2014-10-28> 한겨레

기사원문: [시론] 한국방송 이사장의 몰역사적 언설 /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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