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972호 사설]
역사란 정말 무섭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는 사람들 중에는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죽지 못해 친일부역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친일부역 인사들은 일제가 망하지 않고,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일제의 ‘개돼지’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 35년이란 세월은 질곡에 시달려 온 힘없는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하게 길고도 긴 시간이었겠지만,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심판하는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짧은 시간일 수 있다. 독재 정치도 마찬가지다. 어떤 독재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지식인이나 요직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역사와 기록을 더욱 무서워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두 공영방송의 수뇌부는 역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매우 안타깝고 가련하다. 특히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이인호 KBS 이사장은 측은하기 짝이 없다.
그녀가 KBS 이사와 이사장직에 오른 진짜 이유와 목적은 갈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는 “갈 데까지 갔다.” 이인호 이사장이 한 발언 중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우리 헌법과 헌법정신을 송두리째 부인한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행위’다.
우리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상해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명시한 이 전문은 종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여러차례 헌법을 뜯어고친 독재자 박정희조차 감히 건드리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명박근혜 정부’ 6년 8개월 동안 MBC는 처참하게 망가졌다. 1982년 MBC에 입사해, 이명박 정부에서는 부사장으로, 올해 2월에 사장으로 취임한 안광한은 회사의 선후배들이 어렵게 쌓아올린 공영방송의 위상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핵심인물 중의 한 명이다.
역사와 죽음은 자리의 높고 낮음이 부질없다고 증언한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정체성을 부정한 이인호 KBS 이사장과 공영방송 MBC를 처참하게 망가뜨린 안광한 사장은 더 “갈 데까지 가보라!”
<2014-10-29> 미디어오늘
☞기사원문: KBS 이인호와 MBC 안광한, 갈 데까지 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