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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학살된 조선인들 恨 풀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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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학살 특별법 추진하는 김종수 목사




▶“억울하게 학살된 조선인들 恨 풀어줘야죠” 기사의 사진‘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김종수 목사가 30일 자신이 사역하는 충남 천안 병천리 아힘나평화학교에서 기자와 만나 특별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천안=허란 인턴기자

“1923년 일본 관동 지역에서 적어도 6600명의 조선인이 이유도 없이 죽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요. 누군가는 저들의 한을 풀어줘야 하는데 말이죠. 목회자로서, 교육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30일 충남 천안 병천리 아힘나평화학교에서 만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추진위원회(관동 학살법 추진위)’ 공동대표 김종수(52) 목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 목사는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특별법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9월 일본 관동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당시 일본 정부가 독물 투입 등 일본인에게 테러를 자행했다는 누명을 재일 조선인들에게 씌워 수천명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김 목사는 2006년부터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일하고 있다. 2007년 7월 도쿄에서 사건 당시 발행된 신문과 조선인 학살 장면을 기록한 사진 등을 서울로 가져와 국회의원회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후 서울대 역사학과 출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을 끈질기게 설득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가 처음부터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김 목사는 천안의 작은 대안학교인 아힘나평화학교의 대표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만족하던 평범한 목사였다. 그런 그를 이끈 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라는 하나님의 질문이었다.

“2006년 7월 일본에서 제가 몸담은 대안학교가 평화캠프를 열었어요. 이때 특별강사로 93세 야키카야 다헤코 할머니가 왔죠. 이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조선인 학살 사건을 들었습니다. 이분은 그저 ‘옛날이야기’를 해준 건데 저한테는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목사는 이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헌신적으로 뛰어다녔다. 당장 그해 말 이 사건을 연구하는 일본 학자들과의 연대에 나섰다. 재일사학자 강덕상(시가현립대) 명예교수, 일본 조총련계 조선대학교에서 근무했던 고 금병동 교수 등이 김 목사와 뜻을 같이했다. 2007년 11월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한일재일시민연대’를 만들었다. 이들과 한국에서 심포지엄을 열며 홍보활동을 벌이고 추모회를 시작했다.


벽에 부딪힌 적도 많았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손을 잡고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청했지만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조사를 하려면 위원회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2007년부터 유 의원과 함께 준비한 특별법안은 2008년 총선에서 유 의원이 낙선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18대 국회에서는 특별법안을 발의할 의원을 찾지 못했다.


다행히 19대 국회에 다시 등원한 유 의원이 지난 4월 7일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를 설치해 사건의 진상 조사 등을 맡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법안 통과는 현재까지 답보 상태다.


“제 목표는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고,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아 과거를 청산하자는 겁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은 영원히 조선인 학살에 무관심할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실제로 아직도 수많은 일본인들은 한국인이 문제가 있어 (당시 일본 정부가) 죽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나 이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어 답답합니다.”


그는 한국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크리스천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을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선교’의 연장이라고 표현했다.


“이 일은 ‘인권선교’이기도 합니다. 산 자뿐 아니라 죽은 자에게도 인권이 있거든요. 크리스천들이 이 일을 위해 나선다면 한국과 일본은 분명 화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동북아 평화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천안=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2014-10-29> 국민일보


☞기사원문: “억울하게 학살된 조선인들 恨 풀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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