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올해 교과서와 내년 적용 ‘실험본’ 교과서 비교… 교육부 관료가 기획
▲ 초등<사회5-2> 실험본 교과서(오른쪽)와 올해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표지.
ⓒ 윤근혁
내년부터 전국의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일제히 배울 예정인 <사회> 교과서가 이전 교과서에 비해 ‘박정희 미화, 독재 감추기가 심각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국정교과서인 이 교과서의 편찬기획자 4명은 모두 교육부 관료들이다.
이런 사실은 30일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과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들이 내년 적용 초등 <사회 5-2> 실험본 교과서와 올해 같은 과목의 교과서를 입수해 해당 내용을 비교,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실험본은 정식 적용 전 시범학교에 먼저 배포하는 교과서인데, 이 내용 가운데 일부는 수정된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유신 헌법 등 독재 행위를 주도한 주체를 이전 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명시한 반면, 실험본은 ‘박정희 정부’ 또는 ‘정부’로 바꿔치기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책임을 완화하기 위한 서술로 보인다.
사라진 박정희 책임… “박정희→(박정희) 정부”로 바꿔치기
이를테면 이전 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헌법을 통과시켰다”(114쪽)고 서술한 반면, 실험본은 “박정희 정부는 유신 헌법을 통과시켰다”(145쪽)고 돼 있다.
유신체제에서의 국민 탄압에 대해서도 이전 교과서는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에 강하게 맞섰다”(114쪽)고 표현했지만, 실험본은 “정부는 유신 헌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였다”(145쪽)고 적었다.
주체를 빼놓는 서술 방식은 이 뿐만이 아니다.
▲ 분석 결과.
ⓒ 윤근혁
이전 교과서는 “유신 헌법에 의해 대통령 선출은 간접선거의 형태로 바뀌었다”(117쪽)고 이른바 ‘체육관 선거’의 원인을 ‘유신 헌법’으로 분명히 했다. 하지만 실험본은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지 않고 간접 선거로 선출하였다”(147쪽)고 적어 ‘유신 헌법’이란 말을 삭제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서술에서도 이런 방식은 그대로다.
이전 교과서는 “계엄군에 의해 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115쪽)고 시민을 죽인 주체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실험본은 “군인들을 동원하여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149쪽)고 표현해 희생자가 생긴 원인을 에둘러 표현했다.
지난해 독재 미화 논란을 빚은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교과서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발포에 대항해 시민군을 결성, 총을 들고 저항했다. 이 과정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됐다”고 서술한 바 있다.
<실험본>은 논란이 된 초판 <교학사> 교과서처럼 “일본은 군대를 늘려 의병들을 ‘소탕’했다”(94쪽)거나 “일본은 쌀을 ‘수출’하는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를 개발하였다”(96쪽)로 서술하기도 했다. 교학사 교과서 논란 당시 역사학자들은 ‘소탕’은 ‘학살’로, ‘수출’은 ‘수탈’로 각각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험본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다음처럼 평가하고 있다.
“박정희는 국민들이 잘 사는 것을 나라의 가장 큰 목표로 삼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발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를 실시하였다.”(144쪽)
▲ 실험본 교과서 144쪽.
ⓒ 윤근혁
이에 대해 분석에 참여한 교사들은 “박정희의 독재 정치에 대해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발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라고 한 편찬진의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라면서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발전’이 상반된 개념이 아닌데 마치 이것이 상반된 것처럼 엉뚱하게 서술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험본에서는 이승만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표현을 썼지만, 박정희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교사들 “초등학생 눈과 귀 막는 <사회> 교과서”
한희정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연구원(서울유현초 교육과정부장)은 “이전 <사회> 교과서도 이명박 정부시절 집필되어 독재 미화 논란이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해 서술된 실험본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면서 “특히 박정희에 대한 미화와 독재 감추기는 학생들의 눈과 귀를 막는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실험본 교과서의 집필진 등에는 교사과 교수들이 참여했지만 편찬기획진은 4명 모두 교육부 직원들이 독차지했다. 이들은 현직 교육부 과장과 연구관, 연구사 등이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초등 <사회>는 국정교과서이기 때문에 교육부와 정권이 제멋대로 내용을 고칠 수가 있으며 이를 견제할 장치도 없다”면서 “박정희 독재 미화 정도가 심각해진 실험본의 내용이 바로 교육부가 추진하려는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미래”라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2014-10-3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내년 초등 <사회> “박정희 독재 감추기 심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