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리포트] ‘친일 언론사주’ 재판
어느 전직 대법관
“재판이 2년 넘기면 그건 그냥
자기가 재판장으로 있는 동안
판결하기 싫다는 뜻”
참여정부 때 잠깐 빛을 본 ‘과거사 청산’ 작업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흐지부지됐다. 잠깐이었지만 당시 활동이 있었기에 일제 치하에서 동족을 고통에 빠뜨리며 사회지도층과 유력자로 군림했던 1006명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됐고, 친일부역 대가로 얻은 부동산 일부가 뒤늦게 국가에 환수되기도 했다.
하지만 짧은 기간 시도됐던 친일청산 작업조차 걸림돌을 만나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세력으로 뿌리내린 일부 후손들의 강하고 집요한 저항 때문이다. 족벌언론인 <조선일보>의 실질적 설립자인 방응모와 <동아일보> 설립자인 김성수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법원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차일피일 결론 도출을 미뤄 뒷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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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한겨레>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친일진상규명위)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소송 수행 현황을 살펴보니, 친일파 후손 등이 제기한 소송은 모두 40건으로 집계됐다. 친일진상규명위와 진실화해위를 상대로 한 결정 취소 소송이 각각 23건과 6건이고, 이런 결정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나 헌법소원이 11건이다. 40건 가운데 33건이 마무리됐는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2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에서 친일파 후손 등 이의를 제기한 이들이 패소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7건 가운데 4건이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뿌리’와 관련된 것이다. 방응모·김성수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 취소 소송, 1975년 해직기자 문제와 관련해 동아일보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등이 그것이다. 이상한 점은 법원이 판단을 고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김성수 친일’ 재판의 경우 서울고법에서 재판부가 4차례나 바뀌며 4년째 심리가 계속되고 있고, ‘방응모 친일’ 재판은 대법원에서 3년 가까이 잠자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이 이들 언론사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나머지 3건 가운데 하나는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이 조선 왕족으로 일제 작위를 받은 할아버지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것에 반발해 낸 것이다. 결국 기득권층 후손들이 재판을 통해 ‘조상 지키기’에 적극 나섰는데, 법원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의 결정을 한 위원회가 이미 해산되고 피고인 국가 쪽이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가운데 시간만 흐르도록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대법원은 재판이 마냥 미뤄지는 이유를 “미제 사건이 많아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대법관은 “법리가 복잡하거나 쟁점이 많은 사건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그래도 1년 남짓이면 다 정리된다. 재판이 2년을 넘기면 그건 그냥 ‘내가 재판장으로 있는 동안은 판결하기 싫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2014-11-3> 한겨레
☞기사원문: 조선 방응모·동아 김성수의 ‘친일’…수년째 결론 안 내고 미루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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