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서구 화정4동 백일지구가 일제 강점기 독립군 토벌대로 활동한 김백일 장군(맨 위)의 이름에서 유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친일인사의 이름인 것도 모른 채 ‘백일’ 은 도로명, 초등학교 등 각종 행정·시설명으로 쓰여왔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위에서 두 번째)이 이전한 곳의 주소도 백일로. 친일인사 이름 위에 항일시설물이 세워진 꼴이다. 지금이라도 곳곳에 퍼져있는 친일 흔적을 청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제때 독립군 토벌 김백일 장군 기념 ‘백일사격장’서 유래
-초등학교·도로명·어린이공원·상가명 등 곳곳에 ‘백일’ 박혀
-학생독립운동회관도 ‘백일로’ “친일파 이름 위 항일시설물”
광주 서구 화정 4동 백일지구의 ‘백일’이 일제 강점기 독립군 토벌대의 주축인물이었던 친일인사의 이름에서 유례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초등학교, 어린이공원, 도로명, 일반 상점 이름에까지 ‘백일’이란 명칭이 쓰이고 있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이 이전한 주소도 ‘백일로’여서 파장이 예상된다.
24일 광주시에 따르면, 화정 4동 백일지구는 90~92년에 택지개발이 이뤄졌다. 백일지구의 ‘백일’은 택지개발 전 이곳에 위치해 있던 백일사격장에서 따온 것이다. 이 때부터 ‘백일’은 이 지역에서 가장 흔한 단어가 됐다.
▶백일초 교가 가사에도 등장
1992년 개교한 백일초등학교가 대표적이다. 백일초 교가 가서에도 ‘백일’은 등장한다.
백일초등학교 앞에 있는 어린이공원도 ‘백일 어린이 공원’이고, 인근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는 세탁소나 학원 등에도 ‘백일’이 들어가 있다. 주민들은 광주시청소년수련관 인근에 있는 산을 ‘백일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일대 도로명 주소도 백일로. 동구 황금동 시대를 마감하고 화정동으로 이전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의 신청사 부지가 있는 곳 주소도 백일로 30이다.
백일지구 어딜가나 ‘백일’이 들어가게 된 시작인 백일사격장이 있던 곳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 따르면, 백일사격장의 명칭은 육군보병학교의 초대 학교장이었던 김백일 장군에서 유례가 됐다.
1949년 경기도 시흥에서 창설된 육군보병학교가 1951년 광주로 이전, 주둔하게 되면서 김백일 장군을 기리기 위해 화정동에 신설된 사격장을 ‘백일사격장’으로 명명했다.
그런데 이 김백일 장군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인사로 등재된 인물이어서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간도서 독립군 토벌 108차례
김백일 장군은 2009년 11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일제 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4명 명단에도 포함됐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보면, 김백일 장군은 만주 일대 잔존한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한 특수 목적을 띈 독립군 토벌 부대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 간도특설대 창설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김백일 장군의 친일 기록을 보면, 간도특설대는 일제가 패망·해산할 때까지 간도지역 등에서 독립군 토벌작전을 모두 108차례 벌였고, 이들에게 살해된 항일무장세력과 민간인은 172명에 달한다.
이 때는 이름이 ‘김찬규’였다가 해방 후 월남하는 과정에서 “세상이 다 붉은 색으로 물들어도 나 혼자만은 반공에 입각해 청천백일과 같이 살겠다”는 뜻으로 김백일로 개명했다.
▶‘청천백일 처럼 살겠다’ 김찬규서 개명
장성 육군보병학교와 경남 거제포로수용소에는 김백일 장군 동상이 세워져 철거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시민모임은 “장성 상무대에 있는 김백일 장군 동상은 강감찬, 이순신, 안중군 의사 동상과 함께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시설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에선 ‘백일’이 이러한 친일인사의 이름에서 유례했다는 것을 모른 채 “백일사격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택지개발지구 명칭을 ‘백일지구’로 정하면서, 공교롭게도 이 일대가 친일인사의 이름으로 도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 광주시는 “행정구역 명칭으로만 이해했지, 백일이란 말이 친일인사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주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백일 어린이공원 정자에서 쉬고 있던 주민들은 “예전부터 동네에서 백일이란 말이 전해져 내려와 많이 쓰고 있다”며 “무슨 사람 이름이라는 것만 들었지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광주시 “친일 관련 전혀 알지 못했다”
등 잔 밑이 어둡다고, 지역을 대표하는 ‘고유명사’화 되버린 백일이 친일인사의 이름이라는 걸 설명해주자 주민들은 “그래요? 그럼 어떡해요”라고 놀라는 모습이었다.
시민모임은 “김백일 장군의 친일 행적이 뒤늦게 규명됐고, 그동안 백일과 김백일 장군과의 연관성 자체도 몰랐기 때문에 ‘백일’이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긴 하나, 친일인사의 이름이라는 게? 밝혀진 이상 그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백일지구 전체가 의도치 않게 친일인사를 기르는 듯한 불편함을 주는 것이 사실. 특히, 지난 9월 ‘화정동 시대’를 연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이 ‘백일로’로 이전한 것을 두고 “친일파 이름 위에 항일시설물이 세워졌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지나온 과거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긴 어렵다할지라도 ‘백일’이 친일의 흔적임이 드러난 이상, 그대롸 놔둘 수는 없는 일”이라며 “제대로 된 역사를 안내하는 한편, 광주시와 광주시교육청 등 행정기관들이 나서 지명변경 등 개선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백일’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기 보다는 이 또한 역사로 기록해,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인근에서 발견된 일제 강점기 군사용 동굴 등과 연계해 역사 교육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2014-11-24> 광주드림
☞기사원문: 광주 서구 ‘백일’은 친일 흔적? ‘발칵’
☞뉴시스: ‘백일로’ 친일 인사 지명에 위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논란
☞연합뉴스: 광복회 “친일파 김백일 이름 딴 지면 지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