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과 무구(武具), 제작자의 친일 행적 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국회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이미 국립중앙박물관, 해군사관학교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부터는 “유물(또는 예술)로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라는 이유로 이관을 거절당했다.
전국에 설치된 이순신상은 얼마나 될까?
수없이 많은 이순신상 중에 국내 최초로 세워진 것은 창원시 진해구 북원로터리에 있다. 조각가 윤효중이 1952년 만든 이순신 동상이다. 그리고 1953년 통영 남망산공원, 1955년 부산 용두산공원에 연이어 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한 이순신상이 세워졌다.
이 많은 이순신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김세중이 제작해 1968년 광화문 앞에 세워진 것이다. 여수 오동도, 사천 노산공원, 아산 신정호, 통영 망일봉공원에 있는 동상도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전국에 있는 동상이나 영정 얼굴 중 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유명한 동상이나 영정은 대부분 친일 작가들에 의해 제작됐다는 사실이다. 장군의 영정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없어졌고, 1932년과 1933년 청전 이상범이 그린 영정이 각각 아산 현충사와 한산도 제승당에 봉안되었다.
이순신 얼굴로 기억되는 것은 월전 장우성이 1953년 그린 것으로 아산 현충사에 있는 그림의 인상이다. 세로 193cm, 가로 113cm에 달하는 이 대형 영정은 지난 1973년 10월 문화공보부에 의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월전은 모두 세 종류의 이순신을 그렸다. 이 그림들 이미지가 모두 차이가 있어 동일 인물이 그린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기도 했다.
월전의 작품 이전에는, 이당 김은호의 그림이 유명했다. 1949년 혹은 1952년에 그려져서 한산도 충무사 영단에 봉안되었던 그림이다.
갑옷을 입고 있는 이당의 그림은 1977년 정형모 화백이 그린 그림으로 대체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전되었다. 순종의 어진도 그렸던 이당은 해남, 순천 등 호남지역 이순신 관련 사당에 여러 점을 남겼다.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 용모는 단아하며 마치 수양하는 선비 같다”고 묘사했다.
이민서도 명량대첩비에서 단아한 선비로 묘사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선비 같다’는 표현을, 조선시대 특정한 인물을 묘사할 때 흔히 사용하는 상투적인 문구로 본다. 그래서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더 큰 문제는 유명한 동상이나 영정 제작자인 조각가 윤효중과 김경승, 월전 장우성, 이당 김은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다. 이것이 국회에서 철거되는 김경승의 이순신 동상이 시사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황무현(조각가)
<2014-11-27> 경남도민일보
☞기사원문: [멍석]이순신 동상과 영정